욕망이 팔복 만날 때 창조의 힘 나온다

현대인은 욕망의 홍수 속에 산다. 더 많이 가지려는 충동, 지배하려는 욕망, 우월감과 시기심이 일상 곳곳에서 꿈틀거린다. 스마트폰 알림 하나에도 이런 정념(강렬한 욕망)이 요동친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을 억누르거나 외면할수록 오히려 더 깊이 사로잡힌다는 데 있다.

세계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2002~2012)를 지낸 신학자 로완 윌리엄스는 신작 ‘영혼의 참된 자유’(복있는사람)에서 인간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가 안내하는 길은 뜻밖에도 1500년 전 사막 수도사들이 걸었던 좁은 길이다. 4세기 이집트 수도 공동체에서 시작된 초기 동방 그리스도교는 인간 내면을 파괴하는 욕망의 실체를 누구보다 깊이 탐구했다. 윌리엄스는 이 오래된 지혜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며 영혼을 옭아매는 여덟 가지 정념을 예수님의 팔복과 하나씩 짝지어 제시한다.
초기 교부들의 가장 선명한 통찰은 욕망을 죄악시해 짓밟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해하라는 요청이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와 요한 카시아누스 같은 사막 수도사들이 세속을 떠나 거친 광야로 들어간 궁극적 목적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철저한 고독과 침묵 속에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의외였다. 내면의 거짓 자아와 환상을 먼저 깨뜨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교만 무기력 분노 탐식 탐욕 색욕 시기 절망의 여덟 정념을 인간 내면의 지도처럼 정교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여덟 정념의 뿌리가 결국 하나”라며 “자신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의존하는 존재임을 망각하는 데서 모든 정념이 자란다”고 진단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할 때 분노가 터지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좇을 때 탐욕과 색욕이 자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타인의 행복이 곧 내 결핍처럼 느껴질 때 시기가 싹트고 실패를 돌이킬 수 없다는 환상에 사로잡힐 때 절망이 찾아온다.

이 책의 핵심은 여덟 정념과 팔복의 짝 맞추기에 있다. 팔복은 욕망을 억압하는 율법이 아니라 왜곡된 욕망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초대다.
교만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으로 응답받는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착각을 내려놓고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자유가 열린다. 고통을 외면하고 감각을 마비시키려는 무기력에는 ‘애통하는 자’의 복이 대응한다. 세상의 상처를 정직하게 아파하는 연민이 오히려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타인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는 분노에 맞서는 것은 ‘온유한 자’의 복이다. 온유는 타인에게 충분한 공간을 내어주는 용기다. 탐식이 내면을 거짓 만족으로 채우려는 욕구라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은 그 굶주림을 이웃의 안녕과 정의를 향한 열망으로 바꾼다.
탐욕은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려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이 그에 맞선다고 말한다. 자비는 통제권을 기꺼이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색욕이 타인을 수단 삼는 것이라면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은 모든 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을 뜻한다.
시기는 타인의 몫을 빼앗긴 것처럼 느끼는 감각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은 경쟁을 넘어 타인의 번성이 나와 공존할 수 있음을 신뢰하라는 초청이다. 마지막으로 절망은 현재의 실패가 영원하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은 세상의 법칙이 최종 결론이 아님을 증언한다.
현대 교회에서 영성 훈련이 자칫 개인의 심리적 평안을 추구하는 도구로 축소될 때 저자는 “참된 영적 훈련은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둘러싼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이웃과 피조물 전체를 향해 열린 자유로운 자아가 태어난다.
저자는 인간의 욕망을 무조건 소멸시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념의 에너지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뒤틀린 형태로 본다. 이 에너지가 팔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환될 때 욕망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의 힘이 된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