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읽씹’ 하나가 왜 이렇게 신경 쓰일까
거절 불안
박한선 지음
김영사, 424쪽, 2만2000원

스마트폰 화면 속 메신저의 숫자 ‘1’이 사라졌음에도 한참 동안 답장이 없을 때 혹은 며칠째 숫자조차 사라지지 않을 때 현대인들은 묘한 모멸감과 함께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책의 서두에서 흥미로운 뇌과학 실험 하나가 나온다. 한 사람이 자기공명영상(MRI) 기계 안에 누워 스크린을 본다. 두 사람과 가상의 공간에서 공을 주고받는 게임이 시작된다. 처음엔 공평하게 공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갑자기 나만 쏙 빼놓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한테는 공이 오지 않는다. ‘왕따’를 당하는 순간이다. 이때 뇌의 전측 대상피질(ACC)이 강렬하게 반응한다. 이곳은 원래 팔꿈치를 부딪치거나 발가락을 문지방에 찧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인간의 신체는 물리적 폭력을 당했을 때와 타인에게 거절당했을 때의 고통을 동일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마음이 찢어지듯 상처받았다”는 말은 단순한 시적인 은유가 아니다. 거절당하면 ‘진짜로’ 아프다.

진화인류학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정신의학과 진화인류학은 물론 문화와 종교의 렌즈를 통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해 왔는지 입체적으로 추적해 나간다.
정신의학은 거절에 대처하는 인간의 방어 기제들에 다양한 진단명을 붙여 왔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식당 메뉴조차 고르지 못하는 ‘사회불안 장애’, 거절당해 상처받기 전에 먼저 모든 관계의 끈을 가차 없이 끊어 버리는 ‘회피성 인격장애’,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려 상대에게 종속되기를 자처하는 ‘의존성 인격장애’, 그리고 감정의 극단을 오가며 타인을 파괴하거나 자신을 해치는 ‘경계선 인격장애’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다채롭다. 오만하고 건방져 보이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에서도 역시 기저를 파고들면 타인의 시선과 사랑을 그리워하며 거절의 공포를 감추려는 거대한 마음의 방어벽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진단명을 “복잡한 마음속 미로를 찾아가는 표지판”이라며 “이름이 있어야 부를 수 있고, 불러야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 거절에 대한 불안은 개인의 유별난 ‘성격적 결함’이나 ‘마음의 나약함’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뇌 회로에 깊숙이 각인된 보편적 취약성의 발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섬세한 거절 불안 회로를 진화의 과정에서 남겨뒀을까. 저자는 석기시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의 진화인류학적 공간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인류의 조상들에게 ‘집단으로부터의 소외와 거절’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맹수가 우글거리는 야생에서 홀로 남겨진 인간은 가장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성향은 생존에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인간이 공격성을 줄이고 협력과 공감을 발달시킨 과정의 이면에는 바로 ‘거절 불안’이라는 강력한 생존 본능이 있었다.
문제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바나에서 사자를 맞닥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여전히 수백만년 전의 원시적 시스템 그대로 작동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의 시선과 평가에 노출되는 현대 사회에서 사소한 ‘읽씹’ 하나에도 그 시스템은 끊임없이 오작동하며 비상벨을 울려댄다. 저자는 이 비상벨이 “당신의 뇌가 당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고, 비록 지금은 필요 없는 보호일지라도 한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저자의 ‘한국형 거절 불안’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고 흥미롭다. 동양의 관계 중심적 문화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평가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드러내는 단어가 바로 ‘체면(體面)’이다. 한국 사회에서 체면이 깎인다는 것은 단순히 민망한 수준을 넘어, 자신의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는 존재론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거절 불안을 체면이 깎이는 상황을 예감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는 감정적 예비 동작으로 설명한다. 반면 서구적 맥락의 거절 불안은 ‘능력주의’와 결합한다. 능력주의에서 실패는 게으르고 무능한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거절을 당한다는 것은 곧 ‘무능한 인간’이라는 낙인을 뜻하기 때문에 거절 불안은 자신의 쓸모와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공포스러운 감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늘날의 한국인은 두 가지 거절 불안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 전통적인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며 ‘체면’을 차려야 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스펙과 효용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면 당당하지 못하다고 지적받고, 고개를 들고 주장을 펼치면 버릇없고 유별나다고 배척당하는 모순의 덫에 갇혀 있다.
책은 흔한 자기계발서처럼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라” 같은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왜 내가 ‘읽씹’ 한 번에 이토록 가슴이 아린지, 왜 그토록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지, 그 깊은 뿌리를 응시하게 만든다. 거절 불안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만 역으로 인간을 깊은 성찰과 내적 성장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거절 불안과 함께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음을 인정하되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완벽한 나가 되려 발버둥 치는 대신, 충분히 괜찮은 나로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것. 성과주의가 요구하는 끊임없는 증명 대신 때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그저 존재할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세·줄·평★ ★ ★
·거절당하면 '진짜' 아프다
·거절 불안은 생존본능이었다
·저자의 박학함과 현란한 글솜씨에 경의를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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