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보다 눈물 터진 엄마, 아들이 안아주며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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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정 기자]
드라마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샘이 터졌다. 옆에서 함께 시청하던 아들이 깜짝 놀라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구, 우리 엄마도 힘드셨구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으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시청하던 중이었다. 수십 년 간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교단에서의 자괴감이 북받치는 설움으로 올라왔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나의 흑역사 1년.
특히 <참교육> 5화 속 초등학교 학부모의 '문자 갑질'을 다룬 에피소드는 허상이 아니다. 이 회차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의 고통을 다뤘다. 너무나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는 주제다.
그런 모진 문자 폭탄을 직접 받아본 적은 없으나, 옆 반 동료 교사가 당한 고통은 또렷이 기억한다. 밤낮없이 퍼붓는 문자 공세에 점점 시들어가던 후배의 얼굴을 어찌 잊을까. 그 똑똑하고 명랑했던 교사가 상식 밖의 학부모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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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스틸컷. |
| ⓒ 넷플릭스 |
"어른은 어른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아이들도 귀한 자식이지만 선생님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입니다."
이런 대사 앞에서, 20여 년 전의 교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숨과 고심으로 얼룩졌던 나의 6학년 교실. 당시는 '교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이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호흡이 가빠진다.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터라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었던 한 해였으니까.
당시 마흔 중반이던 나는 이사 후 집 근처 아파트 단지 내의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최고 학년을 맡게 된 책임감과 설렘의 양가 감정으로 기대에 부풀었다.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재미난 학급 운영을 꿈꾸며 교단에 선 발령 첫날, 나는 시뻘건 불구덩이에 들어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부 아이들이 몸을 건들거리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속 꽤 썩였을 아이들과 첫날부터 기싸움에 들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교사인 내가 아이들한테 질쏘냐, 싶었지만 오판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딴지를 걸며 교사의 수업권과 친구들의 학습권에 제동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전교에서 다루기 힘들다고 소문난 아이들이었다. 툭하면 고함을 지르고 싸움을 붙이는 터라 교실은 늘 불안감이 감돌았다. 아무리 능숙한 교사라 해도 그때그때 아이들을 구슬리는 수밖에 다른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천직으로 여기던 학교 출근 길이 즐겁지 않았다. 교실에 감도는 그 따가운 분위기가 두려웠으나 나는 씩씩한 척 대처했다. 주변에서는 병가나 휴직을 권했지만 도망치기는 싫어 꿋꿋이 버텼다. 수업 분위기를 흐려 놓는 통에 하루는 참다 못해 두 녀석을 남겨 놓고 혼을 냈다. 그 모습을 본 옆 반 교사가 나의 안녕을 위해 귀띔해 주었다.
"선생님, 학원 갈 아이를 남겨 혼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 난리 나요."
연락을 받고 달려온 두 학부모는 씩씩거리며 내 앞에 앉았다. 차가운 표정과 아이들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는 교실 상황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들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20년차 교사인 나를 훈계했다. 이미 중학교 수학까지 마쳤으니 교과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겠다며. '생활지도'도 집에서 알아서 하겠다는 요지였다. 그때 나는 고개를 돌려 벽면에 붙어 있던 '기본이 바로 된 교육'이라 적힌 표어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교실마다 똑같은 위치에 부착되어 있는 문구는 교육청에서 보내 준 것이었다.
나는 차마 보여주기 싫었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일상을 적은 교단 수첩이었다. 도저히 아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기행과 귀를 씻고 싶을 만큼 참혹한 욕설을 날짜 별로 빼곡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 기록을 마주하고 나서야 학부모의 기세는 한 풀 꺾였다.
"사춘기 애들이 다 그렇죠 뭐. 선생님이 이해해 주세요."
"아마 아이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이라고 텃세를 부린 모양이네요."
나는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면담 이후 교실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기대했던 평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공부하는 곳은 학원이요, 학교는 그저 친구와 장난을 치거나 일주일에 세 번 체육 활동을 하러 오는 곳이라 여겼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겠다는 나의 다짐은 무너졌고, 그저 무사히 졸업만 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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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여 년 전의 교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
| ⓒ flpschi on Unsplash |
"학교가 수난을 당하는 때를 피해 퇴직했으니 복이 많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실의 본질적인 문제는 똑같다. 다만 과거에는 교사가 수모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교단에 남아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법과 제도의 장벽에 막혀 최소한의 생활 지도조차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학교 문제를 교사 개인의 문제로만 돌려서는 해결이 안 된다. 교사와 학생 모두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드라마 <참교육>에 열광하는 걸까. 무너진 교실에 대한 깊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 아닐까. '교권 보호국'이라는 가상의 설정은 진정한 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현 제도상의 문제점을 바로 잡자는 경고이자 메시지였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학교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 놓고 공론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비록 학교는 떠났으나 '기본이 바로 된 교육'을 위해 걱정하는 마음에는 변함없다. 어쩌면 30대 학부모가 되었을 20여 년 전의 그 아이들도 자녀의 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을 지금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이 건네준 따뜻한 위로에 그동안 가슴에 꽁꽁 묻어왔던 얘기를 끄집어내니 속이 풀리는 듯하다. 나는 기대한다. 학교마다 교육을 잘 펼칠 수 있도록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한마음이 되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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