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위협, 美방관 속 ‘프랑스 핵우산' 모이는 유럽…핵무기 빗장 푼다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안보 공약 후퇴 우려 속에 유럽이 핵 억지 정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 유일의 핵보유국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핵우산’ 논의를 본격화하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현지시간) 핀란드가 수십 년간 유지해온 핵무기 금지 규정을 폐기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 의회는 이날 1980년부터 시행해온 핵무기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25표, 반대 61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핀란드는 국가 방위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자국 영토 내에서 핵무기의 수입·운용·공급·보유를 허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안티 하카넨 핀란드 국방장관은 이번 조치와 관련 “핀란드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 억지력을 핀란드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오랫동안 나토 가입을 꺼려온 핀란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안보 정책을 전환해 이듬해인 2023년 나토에 가입했다.

핀란드의 이번 정책 변화는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 차원의 핵 억지 구상과도 맞물려 있다. 핀란드 공영방송 Yle는 지난 4일 “프랑스가 핀란드에 자국의 핵 억지 구상 참여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한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가 제안을 받고 “해당 구상에 협력하는 데 매우 큰 관심이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 차에 접어든 지난 3월, 러시아를 유럽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하며 자국의 핵 억지력을 유럽 동맹국 보호에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각국이 참여하는 핵 억지 훈련을 확대하고, 필요할 경우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자국 전투기를 동맹국에 임시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기존 안보 체제만으로는 역내 안정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자 프랑스가 나선 것이다.
마크롱은 나아가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만에 핵탄두 증강 방침도 내놓았다. 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 약 540기의 핵탄두를 보유했지만 이후 자발적인 감축에 나서 현재는 약 290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의 핵 억지력이 현재와 미래에도 확실한 파괴력을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내 책임”이라며 “핵탄두 수를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럽이 핵무기 빗장을 푸는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유럽에서 발을 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국의 핵우산만으로는 안보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아시아와 서반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위기감을 키웠다.
일단 유럽 각국은 프랑스의 구상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핀란드뿐 아니라 인접국인 스웨덴도 전통적인 비핵·군축 노선에서 벗어나 프랑스와 영국이 추진하는 핵우산 구상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지난달 프랑스 주도의 핵 억지 구상에 참여 의사를 밝혔고, 폴란드는 프랑스와 핵 억지력 협력 및 연합 훈련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 정책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온 독일 역시 프랑스와 핵우산 확대를 위한 대화에 착수한 상황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덴마크, 그리스 등도 관련 협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역내 긴장을 완화하고 충돌을 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티 에라스토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는 이미 고조된 긴장과 위험을 더욱 키우고 러시아의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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