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부터 시작하는 결혼식, 예능이 따로 없네요

김형순 2026. 6. 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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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결혼식에서 본 태국의 결혼 문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동체의 잔치

태국에서 24년째 거주하며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갑니다. <기자말>

[김형순 기자]

"선생님, 결혼식에 꼭 와 주세요."

내가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학교 회장을 맡아 학생들을 이끌었고, 학교 행사에서는 태권도 시범으로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학생이었다. 신부 역시 같은 학교를 다녔던 태국 학생이어서 더 반가웠다. 졸업 후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에서 학생으로 만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제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인생의 다음 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예식장에 가서 한 시간 남짓 축하하고 식사를 한 뒤 돌아오는 모습이 익숙하다. 하지만 태국의 결혼식은 전혀 달랐다. 지난 5월 28일, 일을 마치고 결혼식이 열리는 태국 남부 짠타부리로 향했다. 하루 전날 도착해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어지는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결혼이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잔치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함 보내기'와 비슷한 '칸막 행렬'로 시작된 결혼식
▲ 태국 결혼식 칸막 의식 결혼 예물과 축복의 의미를 담은 쟁반을 들고 이동하는 칸막 행렬. 태국 전통 결혼식에서는 이 행렬이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첫 번째 공식 의식으로 여겨진다.
ⓒ 최정현
결혼식은 이른 아침 '칸막 행렬'로 시작되었다. '칸(ขัน)'은 쟁반이나 그릇을, '막(หมาก)'은 빈랑나무 열매를 뜻한다. 과거 신랑 측이 빈랑과 예물을 담은 쟁반을 들고 신부 집을 찾아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전통을 재현한 이날 결혼식에서도 신랑은 예물과 음식을 준비해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신부에게 향했다.

결혼식장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짧은 거리였지만, 그 의미는 결코 짧지 않았다. 신랑 측 친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한 나 역시 예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행렬에 참여했다. 신랑 혼자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걷는 이유는 결혼이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두 가문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과정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함 보내기' 풍습과도 닮아 있었다.

전통 음악이 울려 퍼지고 참석자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사회자가 "오히 오히 오히 오~"를 선창하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히이이이우~!"라고 화답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지만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박자를 맞추며 함께 웃고 있었다. 태국인들은 중요한 일도 즐겁고 유쾌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사눅' 문화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축제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한국의 결혼식에서는 신랑이 단정하게 입장하는 모습을 보는 정도지만, 태국에서는 신랑이 마치 영웅처럼 공동체의 응원을 받으며 신부에게 다가간다.

행렬이 끝나자 이번에는 '칸쁘라투'라는 독특한 의식이 이어졌다. 신랑이 신부에게 가기 위해서는 신부 측 친구들이 만든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금색 리본으로 길을 막고 노래를 시키거나 춤을 추게 하고, 사랑 고백을 크게 외치게 하기도 했다. 관문을 하나 통과할 때마다 신랑은 작은 봉투를 건네야 했다. 한국의 전통 혼례에서 함진아비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신부 측에서 발밑에 돈을 놓아주는 풍습과 비슷하다.

관문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태국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의 따뜻함과 유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했다. 신랑의 친구들은 신랑을 돕기 위해 함께 춤추고 미션을 수행했고, 하객들은 웃음과 박수로 응원했다. 엄숙한 의식보다 즐거운 놀이를 통해 결혼을 축하하는 모습에서 태국 사람들의 밝고 유쾌한 기질이 느껴졌다.

경단과 삶은 계란에 담긴 뜻
▲ 한국 태국 커플 결혼식 한국과 태국, 두 문화를 품은 결혼식. 신랑과 신부가 하객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
ⓒ 최정현
모든 관문을 통과한 뒤에는 양가 부모님 앞에서 정식 청혼을 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신랑 측 대표 어른이 신부 부모님께 예를 갖춰 청혼 의사를 전하고 예물을 소개했다. 양가 어른들이 예물을 확인한 뒤 결혼을 허락하는 순간, 앞선 웃음과 장난은 사라지고 모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축복했다.

이어진 '피티 탄 카놈 이'는 신랑 신부가 붉은 찹쌀 경단과 삶은 계란이 들어 있는 달콤한 전통 음식을 서로 먹여주는 의식이었다. 둥근 경단은 화목한 부부 관계와 가족의 결속을, 계란은 새로운 생명과 가문의 번영을 상징한다고 한다. 한국의 폐백이 부모 세대의 축복을 받는 의식이라면, 이 순서는 두 사람이 앞으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음식으로 표현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서로에게 한 숟가락씩 건네는 모습에는 사랑 뿐 아니라 책임과 배려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어진 차 예절은 한국의 폐백과 매우 비슷했다. 신랑 신부가 양가 어른들에게 차를 올리고 절을 하면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붉은 봉투를 건넸다. 오전 의식이 모두 끝난 뒤에는 현대적인 웨딩홀에서 본식이 진행되었다. 대형 스크린과 조명, 신랑 신부의 인터뷰, 샴페인 타워 행사까지 이어졌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태국 사회의 모습이 결혼식 안에도 자연스럽게 담겨 있었다.

어느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는 제자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인상에 남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반갑지만, 제자가 자신의 삶을 성실하고 독립적으로 꾸려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교사에게 또 다른 기쁨이다. 결혼식이 끝난 그날 저녁, 휴대전화에 '추억의 오늘' 사진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몇 년 전 졸업식에서 그 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학사모를 쓰고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딛던 졸업생과 결혼식장에서 만난 신랑의 모습이 한순간 겹쳐 보였다. 졸업식 사진 속 학생이 행복한 어른이 되어 다시 내 앞에 서 있던 그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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