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이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모이는 이유

정도길 2026. 6. 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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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대축~서당 구간 13.4km... 5시간 45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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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길 기자]

넉 달 째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길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일까. 또 삶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태초에 생겨난 길이 단순히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면, 지금은 소통과 수단으로서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인생의 과정을 표현하는 넓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하며, 아직도 건강하다는 증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섬진강 미동마을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 정도길
전국에는 수많은 둘레길이 있다. 각 지역마다 특색을 살린 둘레길은 여행자의 입맛에 맞게 설계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특징이다. 지리산둘레길 역시 우리나라 제일 명산인 지리산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한 번 쯤 걸어보고 싶은 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매주 토요걷기 참여자의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동참하고 있다. 어떤 이는 시간 문제로 1박 2일 여정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 13일, 지리산둘레길 '대축~서당' 구간 토요걷기에 나섰다. 이 구간은 13.4km로 난이도는 중간 정도에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마을 골목길을 시작으로 숲길을 지나고 임도도 걷는다. 대축마을 문암송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보는 악양면 평사리 들녘은 풍요로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먹점재에서 미동가는 길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을 볼 수 있다. 2021년 2월 발생한 하동 미점리 구재봉 산불 현장을 지나치는 길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갓논(갓처럼 옹색한 작은 논)을 보면서 끈질긴 삶의 현장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하동 '3무' 들녘을 바라보며

대축마을에서 10여 분 오르니 문암정과 문암송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문암송은 소나무 씨앗이 문암이라는 바위에 뿌리를 내려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눈앞 멀리 형제봉 아래 산자락은 소나무 재선충으로 붉게 물든 모습이 안타깝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들녘은 풍요롭고, 넉넉하고, 여유롭다. 평사리는 전봇대, 전깃줄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없는, '하동 3무(無)' 들녘으로, 거치적 거리는 게 없어 사진 촬영에도 좋은 장소로 인기가 있다.
▲ 문암정 문암송과 문암정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는 평사리 들녘이 풍요롭다.
ⓒ 정도길
숲길로 접어드니 밤꽃에서 나는 향기(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밤꽃 향은 5~6월경 피는 밤나무 수꽃나무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다. 미점 갈림길에서 잠시 쉬어간다. 숲속 길에서 나오니 앞이 탁 트인 전망이 환상적인 풍경이다. 좌우로 길게 쭉 뻗은 능선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우측으로는 광양 제일 명산인 백운산이, 좌측 끄트머리는 암벽으로 된 억불봉이 주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산중턱으로 내려오니 섬진강이 눈앞으로 흐른다.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 자락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 째로 긴 강이다. 흔히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섬진강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해 옴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나는 섬진강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 눈시울을 적신다.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는 이 일대는 2021년 2월 21일 발생한 구재봉 산불로 큰 피해를 남겼다. 큰 나무는 볼 수도 없고, 키 작은 잡목과 잡풀만 무성한 모습으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 백운산 광양 제일 명산 백운산(우측 진한 봉우리 뒤 작은 봉우리)과 억불봉(좌측 끄트머리) 주능선.
ⓒ 정도길
대축마을에서 두 시간 조금 넘어 먹점마을에 도착했다. 먹점재는 하동읍을 오가는 고개로 옛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먹점재에서 1.5km 걸으면 구재봉활공장이고, 또 1.5km 오르면 구재봉(해발 773.7m)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구재봉 왕복걸음도 좋다.

조상들의 고된 삶이 느껴지는 논

점심시간에는 이날 팀을 이끈 팀장 집으로 초대 받았다. 부부가 함께 걸은 주인장은 먹점마을이 좋아 6년째 정착하고 있단다.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주인장이 내놓은 매실차와 키위, 참외 그리고 수박으로 후식을 즐겼다. 74세라는 주인장에게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하니, 둘레길 걷기가 건강에 한 몫을 다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집 앞으로 펼쳐진 백운산 주능선이 장관이다. 나도 이런 곳에서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신촌재 신촌재는 먹점마을과 신촌마을을 넘나드는 고개다.
ⓒ 정도길
거대한 흔들바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주변으로 서어나무가 숲을 이룬다. 우리나라 산림은 대부분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데, 이 지역에서는 서어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전라 지역 대부분 구간에서 서어나무가 주를 이루는 모습이다. 4시간을 걸어 넓은 공터로 조성된, 오르막 마지막 지점인 신촌재에 닿았다. 신촌재는 먹점마을과 신촌마을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신촌재에서는 구재봉 2.0km, 분지봉 0.5km 거리다. 이제부터는 종착지까지 내리막길로 힘들지 않게 편히 걸을 수 있어 좋다. 울창한 숲은 폭 넓은 임도 하늘을 가렸다.
▲ 갓논 갓처럼 옹색하고 작은 논이라는, 갓논에서 조상의 고단한 삶의 흔적을 느낀다.
ⓒ 정도길
산 아래 숲 사이로 종착지인 서당마을 우계저수지가 보인다. 이제부터 신촌마을까지는 숲이 가려 멀리 보이는 산자락 풍경을 볼 수 없다.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마을 가까이로 접어드니 갓처럼 옹색하고 작은 논이라는, '갓논'에 벼가 심겨 있다. 다랑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조상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돌멩이로 된 야산을 깎고 다듬어 논을 만들고 식량을 조달하는 터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이는 지금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선조들의 고된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 우계저수지 우계저수지 뒤로 보이는 움푹 팬 골짜기를 넘어 뒤돌아 온 길을 회상해 본다.
ⓒ 정도길
신촌마을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이 마을은 북쪽으로 구재봉을 경계로 악양면에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분지봉을 경계로 하동읍과 접해 있다. 마을 앞 우계천은 구재봉에서 발원한 물이 연중 마르지 않고 흐른다. 정자에는 둘레길 스탬프가 있을 법한데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구간에는 스탬프 찍는 곳이 없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원래는 대축~삼화실 구간(16.7km)인데, 오늘 걸은 대축~서당 구간(11.4km)은, 본 구간이 길다보니 줄여 걸었기 때문이란다. 즉, 다음 구간에 나머지 구간을 포함해 걷는다는 것이다. 스탬프 찍는 기분도 다음 번으로 미뤄야 했다.

함께 격려 박수를 나누며

신촌마을에서 종착지인 서당마을까지는 약 3.0km 거리다. 이날 걸은 구간은 큰 힘이 든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마쳤다는 생각에 긴장감도 풀어지고 지루한 느낌마저 든다. 맞은편에서 대여섯 명으로 보이는 둘레길 팀이 오르막을 걷고 있다. 시간도 거의 오후 세 시가 돼 가는데, 신촌재를 넘어 이 구간 종착지인 대축마을까지 걷기는 무리가 아닐까 싶다. 하기야 꼭 구간 시작점에서 끝까지 걸을 필요는 없다. 하루 두 구간을 걷는 사람도 있고, 한 구간 반을 걸어 중간에 마치는 것도 선택일 뿐이다.
▲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고 있다.
ⓒ 정도길
우계저수지에 닿았다. 이 저수지는 구재봉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둬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저수지 중간에는 섬이 자리하고 있는데, 소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다. 이 섬은 당초부터 있던 섬이 아닌, 조형물로 설치했다고 한다. 이왕 인공적 조형물을 설치하려 했다면, 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저수지 둑에서 걸어 온 길을 뒤돌아보니 산 능선 움푹 팬 곳이 까마득히 멀리 보인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느낌이란, 인생의 뒤안길과도 똑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출발지인 대축마을에서 종착지인 서당마을까지 13.4km를 5시간 45분 동안 걸었다. 내리쬐는 햇볕은 피로감을 더해 준다. 회원들은 힘든 몸을 이끌고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격려 박수로 인사를 나눴다. 다음 주는 비교적 걷기 쉬운 서당~하동송림공원 구간이 예정돼 있다.
▲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대축~서당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
ⓒ 정도길
● 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총13.4km, 5시간 45분)
대축마을(09:28) ~ 미점갈림길(10:10) ~ 미동마을(10:30, 2.7km) ~ 먹점재(11:20, 1.8km) ~ 먹점마을(11:35, 1.0km) ~ [점심시간(11:40~12:40)] ~ 신촌재(13:20, 1.9km) ~ 신촌마을(14:15, 2.7km) ~ 서당마을(15:13, 3.3km) / 13.4k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 사진은 동의를 받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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