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동화사 가시면, 이 현판들을 찾아보세요

김명희 2026. 6. 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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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기념관 개관 앞둔 동화사... 한국 역사 곳곳 의미 되새길 수 있는 곳

[김명희 기자]

 동화사 봉서루 (사명대사) 영남치영아문 현판
ⓒ 김명희
동화사는 팔공산에서 가장 큰 절이다. 대웅전, 삼존불, 금당암 극락전과 쌍탑, 당간지주, 비로암 비로자나불과 삼층석탑, 승탑, 옛 출입구 암벽의 마애불, 사명대사 영정 등 국가 지정 보물이 한둘이 아니다. 일주문인 봉황문도 보물이다. 세계 최대 석조 불상으로 이름 높은 '통일 대불'도 있다.

동화사는 유명한 불교 사찰이지만 단순 종교 시설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의 중요 단면을 증언하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실학의 단초를 연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영조 때 이곳에서 역사상 최초로 인쇄 준비를 했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영남 지역 승병 군대의 본부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봉서루 뒤편의 '영남치영아문' 현판이 바로 사명대사 관련 유물이다. 치영아문의 '치(緇)'는 승복을 말하고, '영(營)'은 군대의 본부를 뜻한다. '아문(牙門)'은 관공서의 출입문이다. 즉 영남치영아문은 영남 지역 승군 본부 출입문이다.

사명대사 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있는 동화사

동화사는 대웅전에서 염불암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사명대사 기념관 건축을 마치고 곧 개관할 예정이다. 그동안 영남치영아문 현판과 사명대사 영정이 동화사에 서린 임진왜란의 역사를 말해주었지만, 사명대사 기념관이 문을 열면 동화사는 더욱 한국사의 사찰로 거듭날 것이다.

동화사는 1908년 산남의진 우재룡 선봉장이 군대를 이끌고 주둔했던 구한말 의병 유적지이기도 하다. 동화사에서 피체된 우재룡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투옥되었다가 1910년 '합방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이제 나라가 망했으니 의병이 아니라 독립군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우재룡은 경주(지금은 울산 북구) 박상진, 영주 채기중, 예산 김한종 등과 의기투합해 광복회를 창립한다. 광복회의 활동은 3.1운동과 의열단의 초석이 되었다. "의병 항쟁과 독립군 투쟁의 가교(국가보훈부 '이달의 독립운동가' 설명 표현)"로 우재룡 지사를 소개하는 안내문이 동화사 어딘가 게시 되면 더욱 금상첨화겠다.
 동화사 사명대사 기념관
ⓒ 김명희
한편, 동화사 대웅전 왼쪽 건물의 현판이 교체되었다. 지난 13일 오랜만에 동화사를 찾았다가 '심검당'이 '법화당'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다. 놀란 마음에 한 스님께 여쭈었는데 자세히 답변을 주셨다.

"지금까지 법화당 현판이 붙어 있던 건물의 본명이 심검당이고, 심검당 현판이 붙어 있던 건물의 본명이 법화당이라고 큰스님께 들었습니다. 심검당이 독립 운동 유적인데 실제와 어긋남이 없도록 현판이 바르게 붙어 있어야 옳다고 하시면서 두 건물의 것을 바꿔서 달았습니다."

심검당은 1919년 3월 28일 동화사 청년 승려들이 독립만세 운동을 기획했던 현장이다. 학승들은 동화사 아래 백안동에서 시위를 벌이려다 사람이 많은 대처가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같은 해 3월 30일 덕산정시장(현 대구 중심부 반월당 관덕정 일원) 장날에 맞춰 그곳에서 궐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3월 29일 덕산정시장 인근에 있는 동화사 포교당 보현암으로 가서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를 했다. 이윽고 이튿날인 30일 장터로 가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준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순식간에 군중이 불어나 3천 명에 이르렀다. 대구독립만세 시위 중 최대 규모의 운동이 되었다.
 심검당
ⓒ 김명희
심검당은 그 시위가 태동한 곳이다. 현판이 적소에 맞게 붙어 있는 것은 당연하고, 107년 전의 옛일을 옳게 복원하여 동화사가 이번에 현판을 옮겨단 일은 상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때마침 석가탄신일 연등이 찬란하게 달려 있어서 특히 심검당이 아름답게 보였다.
 동화사 대웅전 옆 건물에 '심검당'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며칠 전에 가보니 '법화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은 아직 '심검당' 현판이 걸려 있던 때의 현 법화당의 모습이다.
ⓒ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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