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에서 타는 타임머신, 의미가 남다릅니다

김이삭 2026. 6. 1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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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을 품고 있는 광양역사문화관에서 배우는 뭉클한 역사... 정병욱 가옥 재현까지

[김이삭 기자]

 광양역사문화관(옛 광양읍사무소)
ⓒ 김이삭
매년 봄마다 우리 곁을 찾아오는 섬진강 따라 피어난 매화나무 군락, 광양의 밤을 지키는 제철소와 이순신대교의 환한 불빛. 이 모든 것이 포항, 당진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철 도시인 전남 광양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걸맞게 터미널 근처에 자리한 5일장(1, 6)의 타지에서 장사하기 위해 찾아오는 상인들의 모습은 다른 지역의 문화가 우리 동네의 문화와 잘 어우러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다. 오래된 것과 동시에 숱한 곡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는 고장의 역사가 잘 묻어나는 곳이 바로 광양읍이다. 시간 내어 둘러볼 만한 명소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16일,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광양 오일장이 열린 시기에 맞춰 광양읍을 방문했다.
반전미 그 자체 동네 카페
 금자 카페
ⓒ 김이삭
여행의 시작은 5일장 맞은편에 자리한 농협 건너편의 어느 동네 카페에서 첫 단추를 끼웠다. 사장님은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작은 잔에 물을 따라 주며 기다림을 덜도록 돕는다. 그 다음, 바로 앞에서 로스팅한 원두로 추출한 필터 커피를 내주는 곳이다. 시원한 냉수와 더불어 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드립 커피로 승부를 보는 곳, 바로 금자 카페다.

이름부터 친숙하기 이를 데 없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의 외할머니의 성함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문을 연 지 올해로 만 3년 된 이곳은 본래 미용실을 카페로 개조 했단다. 그래서인지 한 눈에 봐도 동네에 흔히 볼 법한 철공소 아니면 카센터를 연상케 하는 회색빛의 벽과, 문에 달려 있는 빨간색 줄을 당겨서 여닫고 드나들 수 있도록 구성한 게 눈에 띈다. 그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레트로 감성 가득하면서도 특색 있는 느낌을 받기 충분해 보였다.

금자카페의 커피는 원두 가루를 직접 분쇄하여 필터로 추출해서 내리는 드립 커피를 주로 내세운다. 더구나 에티오피아·과테말라부터 베트남까지 원두의 원산지가 다양하다. 영업 시간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라고 한다.

쌍사자 석등부터 정병욱 가옥까지

광양역사문화관 자리는 조선시대 육방의 업무 처리 장소였던 '작청'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42년, 광양읍사무소가 들어서면서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비록 여순사건과 6·25 전쟁 등 격동기를 거치며 두 차례나 건물이 훼손되었지만, 단조로운 건물의 형태와 정면 중앙의 현관은 그대로 남아있다.

2007년에 광양역사문화관으로 탈바꿈한 옛 광양읍사무소는 한국전쟁 당시 불탔다가 다시 수리한 지붕의 대들보를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객들에게 역사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입구에는 역사적으로 상징성을 지닌 장소에 걸맞게 거대한 돌상 하나가 중앙 로비에 놓여있다. 비록 복제품이긴 하나, 국보 103호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광양역사문화관(옛 광양읍사무소)
ⓒ 김이삭
광양이 자랑하는 국보를 필두로 광양의 역사부터 4개의 산성, 매천 황현 선생을 비롯하여 광양에서 나고 자란 여러 역사 인물과 의병, 독립운동가에 대해 조명하는 자리, 그리고 광양읍성에서 출토된 말뚝을 포함한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을 지나면 또 하나의 공간이 등장한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보존된 정병욱 선생의 옛 가옥이다. 진월면 망덕리에 소재한 정병욱 선생의 집 외형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구석기시대부터 쭉 역사를 되돌아보다가 실제 가옥에 도착한 느낌을 준다. 역사적인 의미도 같이 되새겨볼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유고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의 원고를 그의 친구였던 정병욱이 목숨처럼 간직하며 숨겨준 덕분에 광복 후인 1948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터였다. 그 의미는 더더욱 깊게 다가올 따름이다.
 광양역사문화관(옛 광양읍사무소)
ⓒ 김이삭
한 세기 만에 문을 연 광양 서울대 남부학술림 관사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에서 '남의 나라'로 표현된 육첩방(다다미방). 시에서 언급된 육첩방이 어떤 것인지 느껴볼 수 있는 곳이 광양에 있는데, 지난 2024년 개방된 서울대 남부학술림 관사다.

이 관사는 원래 일제강점기 무렵인 1919년, 지리산과 백운산의 생태 연구를 위해 설립된 동경제국대 소속 남부연습림의 직원들을 위해 지어졌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로 넘어갔고, 2015년까지 실제 직원들의 숙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방치되었으나, 시민들의 개방 요구로 국유지였던 이곳을 시에서 임대하여 리모델링을 거친 끝에 문을 열었다. 관사는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두 가옥 모두 적산가옥 특성 상 일본 특유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옛 광양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관사
ⓒ 김이삭
 옛 광양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관사
ⓒ 김이삭
 옛 광양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관사
ⓒ 김이삭
일제강점기엔 사실상 군수와 동급이었을 만큼 영향력이 컸던 임장이 사용했던 1호 관사는 리모델링된 부엌과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특히 일본 가옥에서 흔히 볼 법한 부쓰단(불단)과 도코노마를 통해 관리자 스스로 위엄과 격식을 드러낼 수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또한 아마도라 일컫는 덧문도 그대로 남아서, 유사시 블라인드 치듯 집을 보호하며 자연 재해에 대비하려는 모습까지 세심하게 잘 드러나 있다.

다음으로 일반 직원들이 사용했던 2호 관사는 1호와 다르게 많이 고쳐지지 않은 곳이라, 적산가옥만이 지니는 기운이 드러난다. 먼저 화장실이 옛날에 사용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지어질 당시 남아있는 상량문을 방 한 편에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데, 자연과 어우러진 목조 건물의 특성 뿐 아니라 근현대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본 기행문은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isak4703/52)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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