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30년 아파트 재개발하면 인생 역전?…"대장주인데 꿈도 못 꿔요"[부메랑된 고밀아파트⑦]
개별 단지 정비 넘어 용도용적제·토지이용계획 등 재정비 필요
신도림역은 서울 지하철 1·2호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서울 시내 주요 역세권 가운데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편리한 교통 여건으로 경인로변 신도림동 일대 아파트는 구로구의 대장주로 꼽힌다. 철길 건너편 구로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에도 크고 작은 단지들이 저층 주택가 사이로 우후죽순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 아파트의 준공 시기는 대부분 1990년대 중후반에 집중돼 있다. 지은 지 오래된 대부분 단지가 그렇듯 이들 아파트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헬스장 등 신축 아파트에서는 기본이 된 커뮤니티 시설은 언감생심이다. 늘어나는 차량을 소화하지 못해 주차 공간 부족을 겪는 데다 노후 배관이 수시로 말썽을 일으킨다. 여전히 중앙난방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단지도 있다.

집은 낡아가는데…재건축도 리모델링도 답 없다
재건축 가능 연한인 준공 30년이 지났거나 임박했지만, 이들 아파트에선 재건축의 '재'자는 물론 대안으로 거론되는 리모델링 논의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사업을 추진해 보겠다고 나서는 주체도 마땅히 없다.
준공 시기가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와 별 차이가 없음에도 정비사업 무풍지대로 남은 이유는 각 단지의 현황을 보면 찾을 수 있다.
이들 아파트는 대부분 용적률이 제3종일반주거지역의 법적 상한인 300%를 꽉 채웠거나 오히려 이를 훌쩍 넘긴 상태다. 기존 용도지역이 유지된다면 재건축을 하더라도 실익이 거의 없다.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도 없다. 수직 증축의 경우 안전진단과 안전성 검사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넘어야 한다. 게다가 자재비 인건비 상승으로 주민들의 비용부담은 커진다. 하지만 사업을 통해 늘릴 수 있는 가구수는 제한적이어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
층수 높은데 개발 면적 좁아…'고밀개발' 이중 부메랑
신도림 일대 아파트처럼 용적률이 높은 고밀아파트 건설은 1990년대 중후반에 집중됐다. 부동산114가 서울지역 100가구 이상 일반아파트(주상복합 제외)를 대상으로 집계한 준공 시기별 평균 용적률을 보면 이런 현상은 뚜렷하다.
1990년 이전 준공된 아파트의 평균 용적률은 194.6%다. 10~15층 안팎의 중층 단지 위주의 아파트 건립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 수치는 1990~2000년에는 288.0%로 3종일반주거지역의 법적상한용적률 30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후 2001~2010년 입주 아파트에서 이 수치는 253.1%로 다시 내려간다.
199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은 고밀 개발 못지않게 단지 규모도 작다. 정비사업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200~300가구 규모의 소규모 단지가 주택가 사이에 지어지다 보니 규모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최근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는 조합원들이 기존 집 대신 신축 세대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개별 단지를 묶어 통합 리모델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고밀 아파트에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상당수 고밀 아파트들은 연접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나홀로 단지들이다.
시장에서는 1990년대 고밀개발 후폭풍이 도시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단순히 정비사업을 통한 개별 단지의 재생을 가로막는 데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는 주거지 슬럼화와 지역 간 격차를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비싼 강남권의 경우 증축을 통한 일반분양과 새 아파트 프리미엄에 따른 집값 상승분으로 비용을 상쇄할 수 있지만, 외곽지역 아파트들은 이같은 사업구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를 풀어낼 마땅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 상태다. 정비사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려면 용도지역 상향으로 개발 밀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은 역세권이나 주요 간선도로변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나치게 세분화한 용도지역을 단순화하고 개별 단지 중심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 전체의 공간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제외하면 비도시지역이 거의 없는 사실상의 100% 도시"라며 "용도지역별로 건축물 용도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현재 체계가 유효한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한된 토지를 극대화하는 게 곧 토지 이용계획"이라며 "개별 주택 관점을 넘어 지역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능을 담은 복합 용도의 건축이 가능하도록 도시계획의 경직된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두환 기자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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