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냉산 일대… 옛 이야기 품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경북 내륙의 중심 구미는 낙동강 주변 비옥한 땅과 웅장한 산세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과거는 선산읍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경제개발 계획 후 1970년대에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내륙 수출 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전했다. 구미의 진산으로 금오산(976m)이 꼽히지만 해평면과 도개면 일대에 걸쳐 있는 냉산(691.6m) 주변에도 볼거리·이야깃거리가 적지 않다.
냉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산자락 곳곳에 보석처럼 박힌 역사적 유물과 이야기의 내력이 천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유서 깊은 산이다. 후삼국을 통일했던 고려 태조 왕건 등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래서 ‘태조산’으로도 불린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이 산에 어가(임금의 수레)를 뒀던 데서 유래한다. 왕건은 925년 팔공산 전투에서 명장 신숭겸을 비롯한 여러 장수를 잃으며 견훤에게 패한 후 이 산에 숭신산성을 쌓아놓고 929년과 930년 잇따라 견훤의 후백제군을 대파한다.

산에 ‘태조산정’이 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 중 대구 팔공산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패한 뒤 이 산에서 재격돌 대승을 거두고 비로소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을 기념해 2004년에 건립한 정자다.
인근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있다. 이곳에서 보면 크게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는 물론 동남쪽 멀리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팔공산 유학산 금오산 황학산 등 내륙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가까운 곳에 일선리 문화재마을이 있다. 안동시 임동면 수곡(무실)리에서 400여년 터를 잡고 살고 있다가 임하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자 전국적으로 후보지를 물색한 끝에 1987년 이곳으로 70가구가 집단 이주한 전주 류씨 집성촌이다.
근래에 조성한 마을답게 반듯반듯하게 구획돼 있다. 직각으로 교차하는 골목 따라 고택이 즐비하다. 언덕에 큰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다시 흙담을 세우고 기와를 덮은 모습이 고풍스럽다.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안동 양반들이 일선리를 이주지로 택한 데에는 선산이 영남 사림의 본거지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선산은 야은 길재에서부터 하위지 이맹전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영남 학맥의 중심이었다. ‘조선 인재 절반은 영남에서, 영남 인재 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했다.

‘일선’은 선산의 신라시대 지명이다. 일선리에서 낙동강을 건너면 선산읍이다. 선산읍 원1리에 길재의 학덕을 기리는 금오서원이 있다. 금오산 아래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고 광해군 때 중건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던 때 고려에 대한 충을 의로써 행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여말삼은’(麗末三隱)이라 한다. 고려의 패운이 떠돌 무렵인 1389년 길재는 개경을 떠나 고향인 선산에 자리 잡았다.
그는 나사방에서 모여든 학자들과 경전을 토론했고 양반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후학을 길렀다. 시간이 흘러 인종 원년에 서원 건립이 주창돼 선조 5년인 1572년 금오산 자락에 세웠고 3년 뒤 ‘금오’라고 사액된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금오서원은 문루인 읍청루와 강당인 정학당, 사당인 상현묘가 위계에 맞춰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다. 정학당과 상현묘는 보물로 지정됐다. 서원 동쪽 남산실, 청아재, 금오정은 2017년 지어졌다.
낙동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도개면 월암리에서 월암서원을 만난다. 사육신 하위지와 생육신 이맹전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1630년 지방 유림이 창건한 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2010년 복원됐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 힘입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이들이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스토리를 풀어가는 핵심 배경이 되면서 관심이 커졌다.
하위지는 단종의 영월 유배 시기인 1457년보다 앞선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세조에게 발각돼 처형당했다. 이맹전은 단종 폐위 후 세조의 부름을 피하고자 스스로 눈멀고 귀먹은 척하며 고향 선산에서 평생 야인으로 살았다. 서원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절벽 위에 자리해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냉산 산악레포츠공원 즐길거리
일선리 인근 가야·신라 고분군

구미 냉산은 상주영천고속도로 도개나들목에서 가깝다. 산 입구 해평면 송곡리에 산악자전거와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구미산악레포츠공원’이 조성돼 있다. 천연·인공암벽등반장, 삼림욕장·산림체험장 등도 갖췄다. 산악레포츠공원에서 태조산정까지 임도가 이어진다.
일선리 문화재마을 인근에 낙산리 고분군이 있다. 3세기에서 7세기 중반 가야와 신라의 무덤들로 총 205기에 달한다.

고분군 가까이에는 주인을 구한 의로운 개의 무덤이 있다. 조선시대 해평면 신양리에 살던 김성발이라는 이가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길가에서 잠이 든다. 그 사이 들에 불이 났고 그가 기르던 개는 위험에 처한 주인을 위해 낙동강 물에 몸을 적셔 불을 꺼 주인을 살리고 죽는다. 술에서 깨어난 김성발은 개를 거둬 묻어줬다. ‘의구총’이다.
금오서원을 둘러싼 남산에는 금오서원 녹색길이 조성돼 있다. 3개 코스로 총연장 5.6㎞ 정도다.
선산 읍내에서 숙식할 수 있다. 한정식, 추어탕, 국밥집 등 다양한 식당과 옥성자연휴양림, 모텔, 여관 등을 이용하면 된다.
구미=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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