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쇼타임’ 이후…재계 총수가 달라졌다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이채원 매경이코노미 기자(lee.chaeweon@mk.co.kr) 2026. 6. 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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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숨 가쁜 일정을 마치고 지난 6월 9일 한국을 떠났다. 황 CEO는 이날 오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서 닷새간 이어진 강행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환영이 정말 훌륭했고 저와 가족 모두 진심으로 환대받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방한 성과에 대해 그는 “매우 좋은 미팅을 가졌고 매우 좋은 파트너십도 발표했다”고 했다. 재방문을 묻는 질문에 “제 삼겹살과 치킨 친구들도 휴식이 필요하다”며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했다.

그의 ‘쇼맨십’은 국내 재계 총수와 CEO PI(President Identity·개인 이미지 관리)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꿔놨다. 가령, 지난 6월 7일 서울 중구 우래옥에서 열린 황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오찬에는 양측 배우자가 동석했다. 같은 날 저녁 ‘2차 깐부 회동’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과 남편이 합류해 황 CEO의 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이사, 그의 약혼자와 ‘2세 만남’을 가졌다.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의 앞 글자)’ 일색이던 과거 재계 PI 전략에 비춰 이례적인 행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인프라 권력이 엔비디아에 집중된 구조 아래 젠슨 황 ‘쇼맨십’이 결합하면서 국내 총수들의 사업 전략도 협상과 엔터테인먼트가 버무려진 ‘딜테인먼트(Deal+Entertainment)’로 진화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AI 시대 CEO PI도 총수 개인 이미지를 넘어 기업가치와 시장 신호를 관리하는 전략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됐다는 평가다. 재계 총수들의 브랜드 전략 역시 홍보는 물론 IR·법무·전략이 결합된 고차방정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지난 6월 5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가졌다. (연합뉴스)
젠슨 황 쇼맨십이 바꾼 재계 풍경

한국 AI 산업계 총망라

‘AI 황제’답게 황 CEO 방한 일정은 한국 산업계를 총망라했다. 그의 동선이 곧 한국 산업계 AI 지형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난 6월 5일 입국 직후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가졌다. 6일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촬영했고, 7일엔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 시구자로 나섰다. 7일 하루에만 정의선 회장을 비롯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을 줄줄이 만났다. 저녁에는 7개월 전 방한 당시 찾았던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수뇌부와 다시 회동했다. 8일에는 SK서린빌딩에서 최 회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한 뒤 LG·현대차·네이버 사옥을 차례로 찾았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을 비롯해 AI·로봇 스타트업 경영진과도 만났다.

재계 총수부터 스타트업 창업자까지 그와 접점을 만들려 한 것은 젠슨 황 개인이 AI 생태계 편입을 상징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동과 발언, 사진 한 장까지 시장 신호로 소비되면서 황 CEO 방한 기간 국내 재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 잇달아 연출됐다.

(1) AI 아이콘, 젠슨 황

회동이 곧 AI 생태계 입장권

젠슨 황은 단순한 기술 기업 CEO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 그래픽처리장치(GPU), 로봇,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산업 혁신을 엔비디아가 주도하면서 그 역시 AI 미래 기대를 압축한 상징 자본이 됐다는 평가다. AI 패권 경쟁에서 CEO 개인 이미지가 기업가치와 산업 내 위상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CEO의 명성은 기업 브랜드와 시장가치를 끌어올리는 무형자산으로 평가된다. 최고경영자의 긍정적 이미지는 기업 신뢰도, 제품 프리미엄, 투자자 기대로 확산한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웨버샌드윅(Weber Shandwick) 조사에서 경영진들은 기업 평판의 45%, 시장 가치의 44%가 CEO 평판에서 온다고 봤다. 시장과 산업계에서는 사실상 황 CEO와의 만남을 ‘AI 생태계 입장권’으로 받아들인다. 그와의 회동 여부만으로 국내 기업 주가가 들썩인 것도 이 때문이다. CEO가 기업의 얼굴이자 핵심 커뮤니케이터로 부상하면서, 총수의 발언과 동선, 공개 행보는 기업 전략을 읽는 시장 신호가 됐다는 평가다.

황 CEO 방한은 이 효과가 극대화된 사례다. 그는 AI를 하나의 무대와 서사로 연출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황 CEO는 가죽 재킷, 대형 키노트, 공개 회동, 식사 장면, 즉흥 발언을 통해 AI를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와 이벤트로 바꿔낸다. 이 과정에서 황 CEO 개인의 명성은 엔비디아 기술력과 결합하고, 이는 파트너 기업 이미지와 주가로도 전이된다. 즉, 삼겹살 회동, 시구, 방송 출연, 공개 사진은 황 CEO 개인에게 축적된 AI 브랜드 평판이 파트너 기업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낳는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 ‘딜테인먼트’ 활짝

손익계산서는 엇갈려

젠슨 황 방한은 AI 시대 사업 전략이 ‘딜테인먼트’로 진화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딜테인먼트는 거래를 뜻하는 딜(Deal)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결합한 말이다. 과거 주요 대기업 집단 총수 간 회동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나 젠슨 황이 주도한 연쇄 회동은 공개 이벤트에 가깝다.

‘딜테인먼트’로 우리 산업계가 손에 쥔 손익계산서를 두고는 시각이 갈린다. SK텔레콤과 네이버는 AI 팩토리를 앞세워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LG와 현대차그룹은 피지컬 AI 영역에서 협력 가능성을 키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와 AI 인프라 핵심 파트너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업스테이지·트웰브랩스·로보티즈 같은 스타트업도 엔비디아 생태계와 접점을 확보했다.

다만, 화려한 ‘딜테인먼트’를 선물 보따리로만 볼 수 없다는 신중한 시각도 많다. 가령, 방한 기간 다뤄진 대부분 논의는 양해각서(MOU)나 구두 합의 수준이다. 법적 구속력이나 이행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엔비디아 쪽이 상당한 수확을 거뒀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한국은 GPU를 팔 시장이면서 제조·로봇·자동차·물류 현장에서 축적된 피지컬 AI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전자, 로봇 등 다양한 제조 현장이 고밀도로 모여 있고 자동화 수준도 세계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이 정도 규모와 고품질 산업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힌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한국은 지정학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고 글로벌 제조 공급망과 AI 반도체 생태계를 갖춘 드문 파트너다. 한국 기업들이 공들여 축적한 제조업 데이터를 엔비디아 플랫폼 위에 쌓으면 엔비디아는 이를 바탕으로 플랫폼 제국 아성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황 CEO가 한국 제조업과 피지컬 AI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산업계는 바라본다.

익명을 원한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와 현장 노하우를 제공한 한국 기업이 독자 플랫폼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 생태계 ‘하청 기지’로 밀려날 수 있다. 협력의 과실이 기술 내재화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AI 동맹은 기술 종속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3) 고차방정식 된 재계 PI

종합상황실 역할

과거 총수 PI는 공개 일정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메시지, 사진, 보도자료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방식에 가까웠지만, 젠슨 황의 두 차례 방한을 계기로 재계 PI 전략도 큰 변화를 맞닥뜨렸다.

무엇보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함께했던 ‘1차 깐부 회동’은 재계 PI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두 총수는 젠슨 황과 공개 회동을 통해 대중적인 친밀감을 얻은 것은 물론, 미래 사업 전략에 대한 비전과 리더십도 재평가받았다. 당시 회동을 지켜본 재계에서는 적지 않은 자극이 됐다는 후문이다. 신사업 리더십으로 승계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재계 3·4세 총수 입장에서는 AI 인프라 최상위 기업 리더와 밀도 있게 회동하고 협력 논의를 하는 장면만으로도 리더십 재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황 CEO의 이번 방한으로 눈길을 끈 곳은 LG그룹이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피지컬 AI’라는 미래 사업 키워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초에는 ‘CES 2026’에서 LG전자가 선보였던 홈로봇 ‘클로이드’도 다소 박한 평가를 받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곡예 수준의 동작을 선보이는 중국 로봇과 보스턴다이내믹스 아틀라스에 비해 LG 로봇은 이동 방식과 작업 속도 면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젠슨 황 방한을 계기로 이런 이미지는 쑥 들어갔고 시장에서도 피지컬 AI를 구 회장 체제 신사업 트로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외 노출이 드물었던 구 회장이 삼겹살 회동에서 막내 역할을 하듯 고기를 구운 장면은 인간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할 기회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살코기와 비계를 분리하는 장면이 온라인상에서 회자됐지만 이를 큰 흠결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현장에서도 “근데 저 아세요” “여기 와서 아시게 된 것 아니냐”는 식의 농담을 던지며 비교적 자연스럽게 대응했다는 평가다.

다만, 젠슨 황식 쇼맨십 아래서는 관리 사각지대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양날의 검으로 평가된다. 최초 회동 장소는 물론 2차 장소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모든 동선이 노출되므로 돌발 변수 통제가 난제다.

IR·법무·전략 기능까지 동원되면서 재계 PI가 실시간 ‘종합상황실’을 방불케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령, 홍보팀은 현장 노출과 온라인 반응을 살피는 한편, IR팀은 주가 급등락과 빗발치는 투자자 문의에 대비한다. 법무·공시 조직은 협력 논의가 확정 계약이나 실제 매출로 오해되지 않도록 공식 문구를 다듬는다. 전략 부서는 엔비디아와 접점이 회사의 중장기 AI 전략 안에서 어떻게 정렬되는지 설명할 논리를 만드는 식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과의 회동이 실제 수주나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PI에 과도하게 매몰돼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주객전도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시대 새판 짜는 CEO PI

CEO 브랜드가 곧 기업 평판

AI 시대 CEO PI는 기업 이미지를 관리하는 보조 기능을 넘어 사업 전략의 일부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산업 경계가 재편되는 국면에서는 CEO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메시지를 내고, 어떤 미래 사업을 직접 설명하느냐가 기업가치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PI의 힘은 노출 자체보단 보유 역량·실제 성과와 통합될 때 극대화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젠슨 황 방한의 후광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력과 사업 비전을 주도적으로 보여줘야 AI 시대 ‘주연’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 PI도 사업 전략

과거 재계 총수나 CEO PI의 목표는 안정감이었다. 노출을 절제하고 메시지를 정제해 사법·재무·평판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다.

AI 시대 CEO PI 문법은 다르다. CEO PI는 하나의 경영 전략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다. 젠슨 황 방한이 이런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AI 시대처럼 산업 경계가 재창조되는 국면에서는 CEO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업가치 신호로 이어진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PI가 총수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가까웠다면, 지금 PI는 기업이 만들고자 하는 미래 산업을 CEO가 직접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물론 국내 총수들이 젠슨 황을 그대로 벤치마킹하기는 어렵다. 국내 대기업 총수 상당수는 창업주가 아니라 3·4세 경영자다. 자칫 혁신가 이미지보다 특권층 이미지나 승계 논란이 먼저 주목받을 수 있다. 서 교수는 “젠슨 황은 엔비디아를 직접 키운 창업주이고 성장 서사를 갖고 있어 쇼맨십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며 “한국 총수들은 자칫 오너 리스크가 먼저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각 기업마다 통합적인 PI 전략 수립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총수 개인 브랜딩을 넘어 사업 전략·비전과 연결되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종 교수는 “AI 시대 CEO는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술 패러다임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2) 쇼비즈 넘어 실질 성과로

전문가들은 총수나 CEO PI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도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젠슨 황 방한을 계기로 국내 기업은 후광 효과를 누렸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다소 부진했다는 시각도 많다. 강함수 에스코토스컨설팅 대표는 “기업 간 회동이 반드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기업 철학, 소통 능력, 신뢰를 보여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며 “다른 기업도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 더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교수는 “PI는 가능성의 영역인 반면, 계약은 숫자의 영역”이라며 “PI를 ‘마케팅 퍼널(Marketing Funnel)’ 최상단의 노출 단계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깔때기’라는 뜻의 마케팅 퍼널은 잠재 고객이나 파트너의 관심을 유입시켜 신뢰 형성, 검토, 계약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단계별 전략 모델이다. CEO PI로 구축한 시장의 관심과 신뢰를 기업 브랜드와 사업 전략으로 연결하고 이를 협력 논의와 실증 사업, 구매·계약으로 전환하는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황 CEO식 PI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엔비디아의 전략을 직접 설명한다.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 전략을 제시하고 제품 전문성과 고객에게 제공할 가치를 술술 풀어낸다.

최영미 이화여대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 특임교수는 “황 CEO는 투자자·고객·언론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과 비전을 적극적으로 전달해 CEO PI를 회사 브랜드로 이미지화한 사례”라며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PI는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사업 전략 설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3) 조연 아닌 주연 돼야

젠슨 황 방한은 AI 시대 PI의 위력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한계도 드러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PI는 평판 등 무형자산을 축적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사업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업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PI는 사상누각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방한을 계기로 피지컬 AI 서사를 강화한 LG·현대차·SK와 달리, 게임 업계에서는 ‘젠슨 황 들러리만 선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강함수 대표는 “CEO들도 이런 이벤트 후 비전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지 않는다면 조연이 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자사 비전, 정체성, 전략 방향 등을 대중과 시장에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주도적 PI의 핵심 요소는 실제 역량이 뒷받침된 전문성과 진정성이라고 진단한다. CEO가 평소 관심도 없던 분야를 이벤트로 소비하면 대중은 곧바로 눈치챈다. 반대로, 기업이 오랫동안 준비한 기술 투자, 조직문화, 인재 전략과 CEO 메시지가 맞물리면 신뢰가 쌓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각 기업이 가진 기술적인 경쟁력이 인정돼야 PI가 진정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진정성과 소통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PI가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교수는 “국내 기업이 대체 불가능한 AI 시대 공동 주연이라는 점을 PI 메시지에 명확히 녹여내야 한다”며 “국내 CEO가 아시아 시장이나 특정 산업을 대표하는 리더로 글로벌 빅테크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PI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탰다.

인터뷰 | 성민정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前 한국PR학회장)
“관리·연출보단 진짜 캐릭터가 성공 열쇠”
성민정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성민정 교수 제공)
성민정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국내외 주요 기업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과 PI (President Identity) 전략을 자문해온 전문가다. 성 교수는 “소셜미디어(SNS) 확산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쇼맨십과 결합한 PI 등장을 계기로 가공되지 않은 진정성이 PI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진단한다.

Q. 과거 PI 전략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SNS를 통한 비의도적 노출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신문·방송 등 제한된 매체를 통해 총수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었다. 회사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골라 전달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다르다. CEO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가 SNS를 통해 바로 퍼진다. 우연히 목격된 장면이나 CEO 가족까지 모두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통제되지 않는 노출이 많아졌다.

Q. PI 자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점은.

A. 과거 총수들이 SNS를 직접 하겠다고 나설 때 두 가지를 질문했다. CEO 본인이 직접 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본인이 하다가 부적절한 내용을 올렸을 때 실무진이 CEO에게 직언할 수 있는가. 국내 기업 조직 문화에 비춰 오너의 SNS에 홍보팀이 개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중은 홍보실이 대행하는 계정에는 배신감을 느낀다. 뒷감당이 어렵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하지 말라는 권고를 많이 했다. PI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Q. 황 CEO식 PI는 무엇이 다른가.

A. 문화가 달라 PI 차이가 발생했다고 본다. 미국은 CEO 개인이 자기 의견과 성격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황 CEO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 CEO이기 전에 개인으로서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평소 행보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며 화제를 만든다. 반면, 전통적으로 국내 총수 이미지는 권위적이고 철저히 정제된 모습만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Q. AI 시대에서 달라진 PI 전략은.

A. GEO(생성형 엔진 최적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GEO는 생성형 AI가 브랜드와 콘텐츠를 인용하도록 설계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CEO가 어떤 사람인지 질문하면 AI가 어떤 정보를 기반으로 답하는지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레거시 미디어(기성 언론)와 공식 기록의 중요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AI가 참고할 만한 신뢰도 높은 정보가 필요하다.

Q. 성공적인 PI의 조건은.

A. 진정성과 일관성이다. 요즘 대중은 보도자료로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실제 생활과 연결되지 않는 장면은 금방 어색하게 느낀다. 온라인에서 바로 검증이 이뤄진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간미 있는 행보나 자연스러운 일화가 반복되면 그것이 이미지로 굳어진다. 미래 PI는 관리나 연출의 영역이 아니다. CEO 본인의 실제 성향과 기업 이미지가 통합되는 진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채원 기자)

정치테마주 누른 ‘깐부株’ 열풍
네이버·LG전자·현대차 ‘어질어질’
선거철 단골손님이던 정치테마주마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방한 이슈에 주도권을 내줬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후보 인맥이나 지역 연고를 앞세운 종목은 힘을 쓰지 못했다. 대신 엔비디아와 협력 가능성이 거론된 네이버, LG전자, SK텔레콤 등으로 단기 자금이 빠르게 이동했다.

금융투자 업계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젠슨 황 방한을 전후로 국내 증시 변동성이 대폭 확대됐다. 지난 5월 29일 황 CEO가 이해진 의장과 만나 인공지능(AI) 인프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뒤 네이버 주가는 단기간 급등했다. 네이버와 엔비디아는 지난 6월 8일 글로벌 AI 팩토리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네이버 주가는 황 CEO가 출국한 지난 6월 9일 25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황 CEO가 출국하자 주가는 2거래일 동안 20% 가까이 빠졌다.

LG·SK·현대차그룹 주요 종목도 황 CEO와 총수 간 회동 기대감에 주가 변동성이 커졌다. LG전자와 SK텔레콤은 지난 5월 28일 대비 6월 9일 정규장 종가 기준 각각 10%, 1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1.1%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선전했다는 평가다. 황 CEO와의 협력 확대 기대가 주가 상승을 이끈 요인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들 역시 주가 변동성 확대는 피할 수 없었다. 가령, LG전자는 지난 5월 29일과 6월 1일 연달아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이후 5거래일 동안 50%가량 하락했다. 직전 상승분을 거의 다 반납한 것이다. 현대차도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협력 기대로 주가가 급등해 지난 6월 1일 75만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로 전환해 6월 10일 60만2000원으로 마감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젠슨 황 방한이 국내 증시 변동성만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황 CEO가 야구 시구 때 입은 두산 유니폼을 두고 ‘하필 증시 하락을 뜻하는 ‘Bears’를 입었냐’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됐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기대감과 실적을 철저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I 팩토리 구축이 실제 장비 발주와 운영 매출로 이어지는지, 로봇 협력이 양산과 납품으로 연결되는지, 클라우드 사업이 기업 고객 확대로 이어지는지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김두언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1차 깐부 회동이 AI 팩토리와 반도체 중심의 이벤트였다면, 이번 2차 회동은 피지컬 AI와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이벤트”라며 “AI가 데이터센터 안에만 머물던 시대를 지나, 공장·자동차·로봇·가전·물류·클라우드로 내려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동현 기자)

[배준희·조동현·이채원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4호(2026.06.17~06.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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