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의 창] 인종차별은 단지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사태 심각성 모르는 형식적 사과

영어 단어인 'discomfort'의 뜻을 AI에 물어보니 명사로 '불편함' 또는 '가벼운 통증'을 뜻하며, 동사로는 '불편하게 만들다'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격렬한 통증(pain)보다는 미열, 뻐근함, 소화불량 같은 덜 심한 신체적 불쾌감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나 어색한 분위기에서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이나 불안감을 뜻한다고 했다. 뜬금없이 영어 단어 뜻을 찾아본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벌어진 한 인종차별 사건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2일 한국과 체코의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 경기가 열린 멕시코 할리스코 경기장에서 한국인 인플루언서가 셀프 촬영하던 도중, 뒤편에 앉아 있던 한 멕시코 남성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양손 검지로 눈을 길게 찢는 동작을 했다. 이른바 '슬랜트 아이(Slant Eye)'로 불리는 해당 제스처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다.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됐고 국제적 공분을 불러왔다.
논란이 커지자 멕시코 지역 매체 폴리티코는 멕시코 측량·지리공학자 협회장인 가해자의 신원을 밝혔고 결국 협회는 직위 해임이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또 해당 남성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해당 한국인 인플루언서와 전 세계 누리꾼에게 사과하는 영상과 글을 올렸다.
가해자의 해임과 사과문으로 문제는 일단락된 듯하다. 하지만 사과문을 보면 진정한 사과인지가 의심스럽다. 아니 이것을 심각한 일로 여기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광범위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며 후회하고 사과한다고 했다. 하지만 "불편을 초래한 것을 인정한다"는 그의 글은 사건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조차 못 하는 동양인에 대한 서구권의 뿌리박힌 편향적 태도를 느끼게 한다. 지식인이라 여길 수 있는 그조차 동양인을 향해 눈을 찢는 행위를 마치 장난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심지어 이로 인한 여파를 단지 '불편'이라고 치부하고 있지 않은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종 차별이 결코 해선 안 되는 '악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이런 행동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정작 가해자는 '악의 없는 가벼운 장난'이라며 자신이 결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스포츠는 국적과 인종, 언어를 뛰어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상 최고의 축구 축제라는 월드컵에서조차 인종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불편함을 초래한 것이 아니다. 뿌리 깊은 무의식적 차별 행위에 대한 신랄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무지는 수치로 남을 것이다.

조강욱 이슈&트렌드팀장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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