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다이닝 시대…압구정서 10년 버틴 스테이크집 비결은? [쿠킹]
매달 한 곳의 스테이크하우스를 찾아 그 집만의 고기 철학과 조리 방식, 공간의 결을 차분히 기록하는 〈스테이크의 정석〉을 시작합니다. 스테이크 전문가 김광중 셰프가 화제성보다 완성도에 주목해 스테이크 한 접시에 담긴 디테일을 짚어봅니다. 4회는 ‘저스트 스테이크’입니다.
④저스트 스테이크

스마트폰 속 화려한 플람베(알코올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조리 기법) 서비스와 희귀 식재료를 앞세우며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파인 다이닝들. 오늘날 대한민국 외식업계는 '비주얼'과 '퍼포먼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이 즐겁고 카메라 셔터가 바쁘게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비된 장면들이 실제로 미각의 기억으로 얼마나 오래 남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화려했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다시 떠오르는 식당은 결국 맛의 기준이 분명한 곳들입니다.
유행의 주기가 짧고 어제의 맛집이 오늘의 폐업 점포가 되는 냉혹한 압구정 골목에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스테이크 하나로 자리를 지켜온 곳이 있습니다. 투박한 인테리어에 그 흔한 SNS 마케팅도 없는 곳. 사실 이곳은 제가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 영감을 얻고, 요리사로서의 초심을 되새기기 위해 찾는 식당이기도 합니다. 이름 그대로 스테이크라는 본질에 모든 것을 건 곳, 바로 저스트스테이크(Just Steak)입니다.

도산공원 인근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담백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주변의 화려한 팝업 공간과 명품 브랜드 매장들 사이에서도 이곳은 마치 이탈리아 피렌체의 작은 식당처럼 소박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요즘 식당들이 공간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시키는 데 집중한다면, 이곳은 상대적으로 음식이 주인공인 구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방문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메뉴판을 펼치며 오늘은 어떤 맛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됩니다.
저스트스테이크의 우직함은 독보적인 포지셔닝으로 이어집니다. 대형 스테이크하우스들이 뉴욕 스타일이나 세련된 모던함을 추구할 때, 이곳은 일찌감치 '토종 드라이에이징 티본 전문점'이라는 선명한 정체성을 선택했습니다. 과거 건식 숙성 스테이크는 일부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스트스테이크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국형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문화를 넓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오리지널과 노포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세대에게 이곳이 하나의 기준점처럼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곳 맛의 뿌리는 자체 숙성고에서 진행되는 약 3주간의 에이징에 있습니다. 진공 포장 상태에서 고기를 숙성시키는 습식 숙성과 달리, 건식 숙성은 철저한 온도와 습도 관리 아래 고기를 공기 중에 노출한 채 숙성시키는 방식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겉면은 단단해지지만 내부에서는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며 깊고 농축된 감칠맛이 형성됩니다.
숙성이 끝난 고기는 사용할 수 없는 겉면을 상당 부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원가 손실이 적지 않습니다. 높은 원가율과 숙성 공간 유지 비용, 여기에 압구정의 높은 임대료까지 고려하면 독립 스테이크하우스가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맛에 대한 확고한 철학 때문입니다. 정육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은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인 볼로네제 파스타로 재탄생해, 깊은 풍미를 지닌 미트 파스타로 손님들의 식탁에 오릅니다.
아무리 좋은 숙성육이라도 굽기 과정에서 실패하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집니다. 이곳은 수줍음 많은 오너 셰프가 숙성부터 굽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합니다.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고기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합니다.

많은 레스토랑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는 조리 편차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오너 셰프가 모든 과정을 책임지며 그 문제를 최소화합니다. 단골들이 "중요한 날 실패하기 싫으면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충분한 레스팅을 거쳐 제공되는 티본 스테이크는 부드러운 안심과 진한 육향의 등심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구운 채소는 단순한 가니시를 넘어 고기의 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그 기다림마저 정성스러운 과정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저스트스테이크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자산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브랜드 충성도입니다. 과거 압구정 상권 내에서 매장을 이전했을 때도 단골 고객들이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온 사례가 이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단순히 상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스테이크를 경험하기 위해 목적을 갖고 방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신뢰는 화려한 광고나 마케팅이 아니라 오직 맛과 입소문으로 쌓아 올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20대 시절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이 부부가 되어 기념일마다 다시 찾고,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방문했던 자녀가 성인이 되어 또 다른 단골이 됩니다. 유행보다 본질에 집중한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포장이 내용물을 압도하고 맛보다 바이럴이 앞서는 시대입니다. 수많은 식당이 반짝 인기를 얻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집니다. 소비자는 처음에는 화려함에 이끌리지만 결국에는 기본이 탄탄한 곳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좋은 원육을 선별하고, 정성껏 숙성시키고, 정확하게 구워낸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원칙을 10년 넘게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스트스테이크는 그 어려운 일을 묵묵히 실천해 왔습니다.
현란한 수식어에 지쳐 스스로 정보를 검증하려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진정한 가치는 언제나 본질 속에 숨어 있습니다. 압구정의 작은 독립 스테이크하우스가 보여주는 우직함은 비단 외식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속도와 포장이 우선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일터와 삶에서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아름다운 고집입니다.
김광중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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