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도 새로 뚫어야”…호남 반도체 공장설 커지는 우려

김경미, 김수민 2026. 6. 1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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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호남·충청권 투자 확대는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산업구조가 지방으로 확장되는 신호탄이자 국가 공급망을 완성하는 과정이다.”(이철우 경북도지사)
“반도체 공장 유치가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하는 만큼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

정부의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 구상과 맞물려 지방자치단체들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공장 유치 기대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광주와 전남 장성 일대에 조성 중인 ‘첨단 3지구’부터 새만금 국가산업단지까지 호남권이 유력 후보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수익성과 기반 시설(인프라) 등 현실적인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비수도권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해결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 반도체 산업을 남부권으로 분산하기 위해 광주에는 반도체 첨단패키징, 부산에는 전력반도체, 구미에는 소재·부품을 특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기업들은 호남 지역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 가능성에 대해 “확정된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지방 투자 계획의 세부 내용은 이달 말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공개될 전망이다.

박경민 기자

기업의 생산시설 이전이 쉽지 않은 이유는 반도체가 집적을 통해 최대 효율을 거둘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공정 생산시설(팹·Fab)의 경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과 밀접한 생태계가 중요한데 기존 수도권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분리할 경우 물류 비용이 늘어나고 공정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지역에 반도체 전공정이 아닌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 과정은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과정까지를 뜻하는 전공정과 ▶칩을 조립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최종 제품으로 생산하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패키징은 여러 칩을 조립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끌어올리는 고부가 창출 공정으로 최근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HBM 수요가 폭증하며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전공정과 후공정 역시 가까울수록 집적 효과와 물류 효율이 커진다는 점이다. 웨이퍼를 비롯해 패키징을 위한 각종 장비는 작은 진동과 온도 변화에도 예민하기 때문에 항온·항습, 무진동 운송망 등으로 각종 충격과 온·습도, 정전기 등 세부 조건을 제어하며 옮겨야 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난 달 충남 온양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전공정 작업을 마친 반도체 반(半)제품 180억원 어치가 파손됐다”며 “전공정·후공정 작업장을 오가는 반도체 수송 차량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운행하는 상황에서 후공정 공장이 멀어진다면 이 같은 사고 발생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완성된 제품의 수송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가벼우면서 비싼 제품인 반도체는 현재 수출 물량의 99%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항공 화물로 처리하고 있다. 호남 지역에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경우 이를 무안공항까지 연계하는 전용 고속도로와 철도 물류망이 필수다. 무안공항 역시 정기 화물편 배정은 물론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특수 물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첨단 패키징 공정을 운용할 숙련된 인력 확보도 난제다. 현재 업계에선 용인과 평택이 인재 유치의 ‘남방 한계선’으로 불릴 만큼 인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미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잡은 핵심 엔지니어들을 지방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직원들 사이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라고 하면 차라리 이직하겠다’는 반응이 다수”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그렇다고 당장 지방에서 인재를 양성해 투입할 수도 없다. 업계에선 신규 인력을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훈련하는 데에만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HBM 등장 이후 패키징 기술 난도가 크게 높아진 만큼, 관련 소부장 업체들이 함께 들어가 집적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지역 명문대와 연계한 반도체 계약학과를 대폭 확대해 오랫동안 정주할 수 있는 ‘현지 인재 양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지 패키징 생태계를 구축해 인재 유입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패키징 기업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는 현재 광주공장에 2035년까지 1조원을 단계적으로 투입하는 증설을 검토 중이다. 정부와 광주시는 첨단패키징 실증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광주과학기술원은 5년간 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가 용인 클러스터처럼 의미있는 산업단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태계 구축을 통한 인재 확보 등의 지원 사격을 해야 한다”며“무엇보다 기업이 최종 결정권자로서 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16일 서울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린 준감위 정례회의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호남 반도체 공장 투자가) 실제로 이어지게 되면 준감위의 논의 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권 논리에 좌우되지 않도록 유의 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미·김수민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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