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생활 속으로, 민주동문회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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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12·3 내란을 진압할 때 무엇보다 주목받은 건 단연 깃발부대였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회장 노성철(연대83 정외과)은 여러 대학과 몇몇 고등학교의 이런 변화에 대해 "전국대학민주동문회는 서울 30개 대학을 포함 모두 88개 대학에 조직이 결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의지와 열정이 있다고 봐요. 이번 윤석열 탄핵 싸움에서 실제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원 수가 대폭 늘고 재학생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 큰 수확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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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민병래(작가)]
윤석열의 12·3 내란을 진압할 때 무엇보다 주목받은 건 단연 깃발부대였다.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이나 '응원봉을 든 오타쿠시민연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연맹' 등 많은 깃발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들 깃발이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 같은 전통의 조직과 조화를 이뤄 광장을 발랄하고 생기차게 만들었다. 이 대오에서 민주동문회라는 깃발도 나름 한 몫을 했다.
'민주동문회'는 70년대 박정희 독재시절 그리고 80~90년대 광주항쟁과 6월항쟁 등을 거친 세대가 만든 대학별 단체다.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에도 박근혜 퇴진 투쟁에 앞장섰고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진압하는 싸움에도 적극 나섰다. 청춘을 흘려보냈건만 여전히 민주화 투쟁의 현역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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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광주묘역에 선 외민동의 김종찬 회장 왼쪽에 서 있는 이가 김종찬 회장, 오른쪽이 성민동의 박종근 회장이다. |
| ⓒ 민병래 |
전국대학민주동문회 중 한국외국어대학의 민주동문회(이하 외민동)는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6년 5월 진행된 광주 순례에서도 재학생 포함 140여 명이 참석해 16·17 양일 동안 금남로를 달궜다. 외민동이 지금처럼 활발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2019년 정외과 80학번 김종찬이 회장을 맡으면서다. 때마침 코로나 시기라 그는 대외 활동 대신 움직임이 탄탄한 경희대민주동문회 등 다른 대학의 사례를 조사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김 회장은 2022년 5월, 82·83·85학번 후배 4~5명을 모아 본격적으로 외민동의 재건과 부흥을 꾀했다. 우선 회비 내는 회원을 모으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총학생회장을 한 85학번 함칠성이 90년대 학번과 가교 노릇을 하면서 회원 수가 크게 늘어, 2026년 5월 현재 회원이 800명을 넘었을 정도다.
조직의 세가 급격히 커진 데는 윤석열의 공도 크다. 외민동은 내란을 진압하는 광장으로 부지런히 동문을 불러냈다. 적게는 20명 많을 때는 100명 정도가 외민동의 깃발 아래 모여 매일 거리를 달렸다. 지금은 늘어난 회원 수에 맞게 전국을 6개 권역으로, 서울은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기획위원회·조직위원회·소통공감위원회 등 5개 위원회를 두어 산악회나 문화탐방 같은 여러 소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상근자를 두지 않고 위원회 체제로 운영하니 일상경비가 절약되어 지부·지회모임이나 동아리 지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연말에는 '따뜻한 동행'이라는 특별회비를 걷어 동문자녀의 장학금이나 투병 중인 동문을 돕고 있는데 2025년에는 무려 4000만 원이나 걷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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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내란을 진압할 때 광화문에서 외민동의 모습 가운데 빨간 손팻발 '윤석열파면, 평화를 구하자' 글귀를 들고 있는 이가 김종찬 회장이다(챗지피티를 이용해 다른 깃발들은 지웠습니다). |
| ⓒ 민병래 |
외대 못지않게 민주동문회가 활발한 대학으로 부경대학교가 있다. 부경대민주동문회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국립부경대가 1996년 7월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가 통합하여 출범했기에 민주동문회도 이에 발맞춰 2002년 통합을 결의했다. 모르던 사람들이 한울타리에 모였으니 한 몸이 되는 게 숙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경대민주동문회는 소모임 활동에 공을 들였다. 영화, 노래 등 다양한 모임이 있지만 대표적인 동아리는 산악회다. 처음 '입산금지'에서 지금은 '비정상산악회'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다. 무릎이 안 좋은 나이니 봉우리에 집착하지 말고 둘레길을 걸으며 우정을 나누자는 뜻이다.
부경대민주동문회나 부경대 역사에서 박근혜 탄핵 투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6년 11월 3일 부경대 교수 140명과 민주동문회가 함께 본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과 헌정질서 파괴의 책임을 지고 하야하라"라고 시국선언을 했다. 그날 비로소 군사독재 시절 내내 숨죽이며 지내던 수산대, 공업대의 분위기를 떨쳐버렸고 민동과 재학생의 연대도 끈끈해질 수 있었다.
변청숙 부경대민주동문회 사무국장에 따르면 민동과 재학생의 연대는 2024년 9월 싸움을 계기로 더 단단해졌다고 한다.
"2024년 11월, 윤석열 정부의 악행에 분노해 당시 부산 지역 12개 대학에서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부경대에서만 학내 정치활동은 안된다는 학칙을 들먹이며 학교 당국이 탄압에 나섰어요. 재학생들이 이에 항의해 1인 시위도 하고 총장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농성에 참여한 1학년생이 짜장면이 생각난다고 말했어요. 이 소식을 민동 단톡방에 올렸더니 전국의 많은 동문이 성금을 보내와 농성 기간 내내 후배들의 밥과 간식을 해결해 줬어요. 농성을 푸는 11월 9일, 민주동문회에서 후배들을 맞이하러 갔는데 학교 측에서 경찰을 불러들여 학생들이 연행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민주동문회는 즉각 교문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고 이 소식을 들은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에서 규탄 성명을 냈습니다. 전국민주동문회에서도 연대 성명과 지지 현수막을 걸어줬고요. 이 싸움 끝에 비민주적인 학칙을 개정하고 재학생과 민주동문회의 관계가 탄탄해졌습니다. 덕분에 2024년 12월, 윤석열 탄핵 투쟁에서 부경대 재학생과 동문들의 함성이 부산서면 일대에 울려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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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8일 열린 대전고민주동문회 창립대회 |
| ⓒ 대전고민주동문회제공 |
고등학교 동문 사이에서도 최근 민주동문회를 결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경동고와 대전고가 그 사례다.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곳은 경동고다. 민주경동 부회장을 맡고 있는 28회 김익동은 기수별로 이루어진 고등학교 단톡방이 극우화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진즉에 민주경동이란 단톡방을 만들었다. 행동으로 나선 건, 이태원 참사를 겪고서다. 서울시가 분향소 운영까지 막을 때,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는 생각에 회원들과 단체 조문을 했다.
그 후 윤석열의 내란 때 민주경동의 깃대를 들고 동문을 모아 광장을 내달렸다. 윤석열 탄핵 이후에는 4·19묘역과 5·18묘역 순례를 정기행사로 잡았다. 일상활동도 다채롭게 꾸려가는데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윤경로(전 한성대총장) 회원 주도로 세미나도 하고,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리뷰하는 시간도 가졌다. 김익동은 현재 활동하는 회원 중에 가장 고령이 80줄에 접어든 23회 선배인데 앞으로 50대, 40대 동문을 끌어안겠다는 구상이다.
대전고 민주동문회는 57회 박종성이 동기 3~4명과 함께 박근혜 탄핵 시위에 동참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이들은 각종 집회에 동참했고, 2023년 대전고57회민주동문회 깃발이 만들어졌다. 깃발을 들게 된 이들은 촛불행동 집회는 물론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시위에 동참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던 날 여의도로 집결했다. 약 30명의 동기가 소통하는 단톡방도 만들었고, 이런 사실이 선후배들에게 알려졌다. 그리하여 2026년 3월 8일 3·8의거 기념회관에서 선후배를 포함하는 대전고민주동문회를 정식으로 결성했다. 이날 대전고총동문회장도 나와 축하했고, 민청학련동지회 공동대표 송운학 동문이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열정이 여전하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회장 노성철(연대83 정외과)은 여러 대학과 몇몇 고등학교의 이런 변화에 대해 "전국대학민주동문회는 서울 30개 대학을 포함 모두 88개 대학에 조직이 결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의지와 열정이 있다고 봐요. 이번 윤석열 탄핵 싸움에서 실제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원 수가 대폭 늘고 재학생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 큰 수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교민주동문회와도 연대해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고 건대항쟁이나 1996년 연세대통일축전 같은 과거사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또 좋은 소모임 사례를 공유해 민주동문회를 기억과 생활 공동체로 만들겠습니다"라는 전망도 제시했다(노성철 회장은 연대의 재미있는 소모임사례도 귀띔해 줬는데 이름하여 연민당, 연세민주당구회이다. 연민당은 윤석열의 내란을 진압할 때, 집회 장소 부근 당구장에서 게임을 하고 집회에 참석했다가 뒤풀이를 당구장에서 했다. 싸움도 즐겁게 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격언을 실천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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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민주재단준비위원장 권정호 그는 <불평등한 한미SOFA개정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
| ⓒ 민병래 |
- 민주동문회에서 재단법인을 만드는 건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추진하는 배경이 무엇인가.
"민주동문회는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숨진 열사를 추모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역할을 해왔다. '빛의 혁명'에서 보았듯 광장에선 노병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재단은 민주동문회의 이런 정신을 더욱 단단하게 앞으로 20~30년 이어간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 현재 민주동문회의 틀로도 하고 있지 않은가?
"각 대학 민주동문회의 회원 대부분이 60대 이상이며 50대 밑은 드물다. 이는 200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장년, 청년세대로 우리 사업을 이어가려면 버팀목이 필요하다. 사람도 중요하지만, 기금이 튼실하면 사람과 재단이 어우러져 오래도록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 기금은 얼마가 목표이고 진행 정도는 어떤가?
"5억이 목표다. 성대동문들이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으로 수백 명이나 투옥되었다. 지금 과거의 집시법,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민주화에 기여한 정의로운 활동으로 인정되면서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쁘게도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선고가 나오면서 형사민사보상이 잇따르고 있다. 동문들이 판결금의 5%를 자발적으로 기부한다. 그 외 학번별, 과별, 개인별 참여가 이어져 2026년 5월 현재 1억 2천 정도가 모였다. 2026년 모금을 완료하고 2027년에는 닻을 올릴 작정이다."
- 앞서 더 풍성하게 사업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예를 들면 어떤 사업을 할 건가.
"열사정신을 잇고, 동문 자제나 재학생을 향한 장학사업은 지속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금을 바탕으로 '성균관대 학생운동사' 편찬 같은 아카이브 사업에 공을 들이려 한다. 이는 성대와 관련된 기록에 한정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담는 일이라면 누가 추진하든 되도록 지원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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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내란을 진압하는 투쟁에서 성민동의 모습 광화문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
| ⓒ 민병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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