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인 줄 알았는데"…순도 99.99% 금 쏟아진다는 도시광산[르포]
웨이퍼 등 산업 폐기물 원료 추출
용해·환원·압축 등 수차례 반복
탄소 최소화·안정적 자원 확보 등
재생자원 선순환구조 선도 업체
지난 11일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귀금속 리사이클링 전문 기업인 토리컴 내부 주조실. 1200도에 달하는 주조로의 문이 열리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붉은 액체가 세라믹 도가니에 담겨 나왔다. 걸쭉하게 흘러내린 액상이 주조용 틀에 채워지자 이내 붉은 빛은 자취를 감추고 황금빛 고체로 굳어졌다. 전자폐기물의 먼지를 털어내고 순도 99.99%의 완벽한 골드바(금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약 2억원에 달하는 무게 1㎏짜리 금괴는 거대한 광산에서 추출된 광물이 아니다. 고장 난 반도체 웨이퍼와 수명을 다한 인쇄회로기판(PCB) 등 국내 반도체·전자·자동차 산업 현장에서 배출된 폐자원들에 있던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산업 폐기물들이 엄격한 공정을 거친 뒤 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공정은 폐기물로부터 원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스크랩을 박리하는 물리적인 전처리 과정을 시작으로 금·은 등 원료별로 용매를 이용해 추출한다. 용매는 질산과 염산을 섞은 특수 용액 '왕수'를 통해 용해 과정을 거친다. 이후 아황산소다를 이용해 금만 고체로 환원한다. 이때 나온 황토색 고체 제품은 진흙과 비슷한데, 순도 95%의 금이다.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한 다음 압축하면 순도 높은 금이 된다.
LS MnM의 출자사인 토리컴은 30여년간 국내 폐자원을 원료로 유가금속을 추출하며 자원 순환 생태계를 지탱해왔다. 건식제련이 아닌 습식정련 방식으로 금·은·팔라듐 등 귀금속을 회수하는 것이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다. 고온의 열로 녹여 만드는 방식인 건식제련은 대규모 일괄 처리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주로 채광을 통해 나온 원료를 사용하는 데 적합하다. 습식정련은 100도 이하 낮은 온도에서 작업을 해 건식제련과 비교해 에너지 소모량이 적고, 정제 과정을 거치면서 제련을 하기 때문에 고순도 귀금속 회수에 주로 사용된다.
홍형기 토리컴 대표이사는 "국내 재생 자원의 선순환 구조 확보는 자원 재활용을 통한 탄소 배출 최소화, 해외 밀반출 통로 제거, 안정적인 자원 확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광산이 전무한 국가적 상황에서 자원 선순환 구조를 갖춘 토리컴의 경제적 가치는 단순한 재무 실적 그 이상의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토리컴은 2024년 5월 국내 최초로 100% 재활용 금에 대한 국제표준검증을 획득했고 지난해에는 은·팔라듐·백금 및 2차 소재로 인증 범위를 넓혔다. 올해부터는 수치제어 자동가공 장비를 도입해 더 다양한 형상의 제품을 정밀 가공하고 있다.
도시광산은 희소금속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다. 폐전자제품이나 산업폐기물에서 금속을 회수하면 채광 없이도 원료를 확보할 수 있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해 산업통상부는 2022년부터 리사이클링 원료를 순환 자원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고 기후환경에너지부는 제련기업·원료수집업체·중간처리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국내 리사이클링 원료의 불법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한 통관 절차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폐금속을 고철로 위장 신고한 뒤 금·팔라듐 같은 고부가가치 원료를 섞어 반출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 애써 모은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해외로 빠져나가면 도시광산 산업 자체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기술 생태계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아 있다. 도시광산은 원료 수집부터 전처리·제련·정제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기업이 협력해야 하는 산업이다. 대기업 한 곳의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중소 수집업체와 중간처리업체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전체 공급망이 돌아간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광산 관련 기술은 기업 한 곳에서 가진 기술력만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중소업체들의 전반적인 기술력 향상을 위해 산학협력과 중소업체 연구개발(R&D)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산(충남)=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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