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자랑 끝, 이제 전력망 싸움"…美 AI 변동성에 韓 기자재 뜬다
"AI 다음 격전지는 실물경제와의 융합"
"정부가 초기 수요자 돼 신시장 마중해야"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의 패권 경쟁이 단순히 인공지능 모델의 성능(알고리즘) 싸움을 넘어 이를 구동할 전력 인프라, 산업 데이터, 제도적 기반을 선점하는 '체급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기관인 우드매킨지의 크리스 사이플 부회장은 1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주최로 열린 '글로벌 AI 전환과 산업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 전력 품질과 부하 대응 능력이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사이플 부회장은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폭발 중인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존 전력망 운영 방식과 발전설비 안정성에 감당하기 힘든 변동성 리스크를 주고 있다"며 "AI 시대의 전력 경쟁력은 전기를 얼마나 많이 공급하느냐를 넘어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품질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북미 전력망의 대격변이 한국 기업들에 거대한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고 짚었다. 초고압 변압기와 케이블 등 전통 전력기자재의 대미 수출이 장기 호황을 맞이할 뿐 아니라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백업유닛(BBU) 등 데이터센터의 전력 변동성을 완화하는 첨단 솔루션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사이플 부회장은 "한국이 AI 데이터센터 전력 안정화 패키지를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아 공격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인프라 붐과 맞물려 주요국들은 이미 AI를 개별 기술이 아닌 데이터센터, 산업 데이터, 규범을 포괄하는 거대 산업 기반으로 보고 국가적 육성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기술에 국방·안보 공공 조달을 결합해 시장을 키우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오는 8월 'AI 액트' 시행으로 글로벌 표준 제도를 선점 중이다. 대만은 반도체 제조와 전력·냉각 생태계를 묶어 공급망 거점이 됐고, 일본은 자국 클라우드 기업을 밀어주며 인프라 자립도를 높이고 있다.
김민기 KAIST 경영전문대학원장은 한국이 이들 주요국이 포진한 글로벌 인프라 시장을 뚫기 위해선 '한국형 AX 전략'이 시급하다고 봤다. 김 원장은 "해외 규제를 단순히 따라가기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제조 현장의 강점을 살려 공정, 품질, 보안을 아우르는 '산업형 AI 기준'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의 역할 변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김 원장은 "정부가 핵융합, 양자, 첨단 바이오 등 민간이 단독 투자하기 힘든 국가 전략 분야의 '초기 수요자'가 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민간의 기술개발과 투자를 촉진하고 AI 기반 신산업 시장을 앞당겨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들 역시 AI 경쟁의 실행 기반 구축을 위해 한목소리를 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한국형 신성장동력의 출발점은 세계 최고인 우리 제조 현장의 암묵지를 학습 가능한 데이터 자산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산업 데이터를 공유하는 거버넌스 정비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김진수 한양대 교수는 "전력을 적기에, 청정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전력망 포트폴리오와 조달제도를 통합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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