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이야기] "날 왜 낳았어" 폭발한 사춘기 아들 무장해제 시킨 남편의 한 마디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두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남편 입장에서 주말 부부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김지호 기자]
"엄마, 나 오늘 친구 집에서 잘 거야."
"지금 몇 시니?"
중학생이 되고 귀가 시간이 늦어져 저녁 9시를 귀가 시간으로 정했다. 그런데 아들이 오후 10시가 훌쩍 넘어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들어오더니 친구 집에 가겠다고 했다.
"늦게 들어와서, 친구 집 가겠다고? 엄마하고 했던 약속 잊었어?"
"엄마 나도 이제 중학생인데, 저녁 9시는 좀 이르지 않아?"
대답 없이 아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오늘 친구 집에서 자도 돼?"
"안돼, 앞으로 사전 허락 없이 네 맘대로 행동하는 거 허락 못 해."
아들과 말다툼을 하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금요일이라 지방에서 남편이 올라온 상황이었다. 아들이 수긍하면 짧게 대화를 끝낼 생각이었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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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의 사춘기를 바라보며(AI 생성 이미지). |
| ⓒ 오마이뉴스 |
유난히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아들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을 의식했지만, 이미 화가 난 감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주중에 아들에게 쌓였던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하고 있었다.
"엄마가 많은 걸 원해? 9시가 넘었는데 연락 한 통 없더니, 집에 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친구 집에 가서 자겠다고 통보하는 네 행동이 지금 잘했다는 거야? 기본만 지키자는 게 그렇게 어려워?"
거실 한복판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날 선 언쟁을 계속 이어갔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남편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이어서 아들과 아빠의 거친 대화가 시작됐다.
"너 그냥 나가, 나가 살아. 엄마가 안 된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이유가 많아."
"내가 맨날 그랬어? 주말이니까 오랜만에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데 그것도 허락 못 해?"
아들의 반격은 생각보다 거셌다. 유난히 거칠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낯선 아들 모습에 소파에서 엉덩이를 자꾸 들썩거리는 남편의 움직임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어, 이것저것 안 된다고 하면 나더러 어떻게 살라고."
"네가 지금 하는 게 뭐가 있어? 학원 다니기 싫다고 해서 학원 다 끊었지, 실컷 놀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여보, 다시 학원 보내."
"싫다고. 내가 싫다는데 아빠는 왜 그래."
"똑바로 알아둬, 엄마 아빠가 널 낳은 게 아니라 네가 엄마 아빠를 찾아온 거야. 우린 찾아온 너를 낳고 키우고 있는 거라고, 우릴 원망하지 말고 너를 원망해."
아들의 거친 숨소리와 남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일촉즉발의 순간, 소파 끝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있던 남편의 성난 말투에 아들도 겁을 먹었는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아빠의 심기를 건드렸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아들을 일으켜 욕실로 떠밀었다. 깊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편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남편도 나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조금 더 참았으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남편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고, 딸은 큰소리가 시작되자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욕실에서는 아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감정이 수그러졌는지, 욕실에서 나온 아들은 한결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아들, 아직도 너를 왜 낳았는지 원망스러워?"
"아니, 그건 그냥 말이 불쑥 나온 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했다고."
"근데 엄마는 마음이 아파, 엄마도 화낸 거 미안해.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어."
"엄마, 진짜 진심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엄마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아빠 오시면 일단 사과부터 하자."
아들은 속상했는지 또 훌쩍 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부모로서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감정이 나조차도 낯설었다. 그저 아들 손을 한번 잡아주고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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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와 아들 산책길을 거닐다. |
| ⓒ 김지호 |
나갔던 남편은 양손 가득 치킨을 사 와서, 난데없이 '안 아들' 타령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아들이 없어요. '안 아들' 먹고 나가라고 해."
남편의 의도를 파악하고 아들을 거실로 불렀다. 한바탕 거센 파도가 훑고 간 바다처럼 집안 공기는 잔잔했다.
"금요일엔 치킨이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들 안 한다고 하니까, 앞으로 우리 집엔 '안 아들'이 사는 거야. 여보, 당신도 맘 편히 가져, 괜히 '안 아들' 때문에 속상해하지 마."
남편 너스레는 한참 이어졌다. 코를 훌쩍이며 아빠가 내민 닭다리를 뜯던 아들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머물렀다.
모든 사건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해결하려는 나보다, 남편이 툭 던지는 몇 마디가 오히려 복잡한 아들의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그 순간을 곱씹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 했을 시간이 남편의 '안 아들' 타령으로 마무리됐다.
아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춘기 파도를 타고 휘청일지 모른다. 아빠가 없는 평일과 주말의 온도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아들의 온도, 사춘기의 성장통을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내 불안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아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싶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성장은 오직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고통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중에서
아들이 거친 파도에서 혼자 헤매지 않길. 현재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관심과 관찰이, 간섭이 아닌 사랑으로 전해 질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 하는 중이다.
"엄마, 나 수염 언제 깎아?"
"아빠 오시면 물어보고 정확히 배우고 깎는 건 어때?"
"싫어, 금요일 까지 못 기다려. 얼굴이 까맣다고, 아이들이 놀려, 그냥 혼자 깎아볼게."
아침부터 수염 때문에 옥신각신하다 출근했다. 나도 주말까지 남편을 기다리지 않고, 남학생 수염 깎는 동영상을 찾아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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