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인 (6) 소설가 김동리에게 ‘외상 입학’ 청원한 문학 소년

박윤서 2026. 6. 1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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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살이 불안 속 기도로 버틴 삶
오영수 작품 독후감 내자 반응 일어
오 선생이 찾아와 추천할 뜻 밝히기도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생전 모습. 오른쪽 사진은 김동리 선생이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에게 남긴 휘호로 ‘청아(淸雅)’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국민일보DB


위험 인지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들이 지금까지 생존하며 발전할 수 있었을까. 위험에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신의 존재와 능력을 부정하다가도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망 진단을 받거나 수술을 하게 될 때 그들은 자기의 한계 앞에서 신을 찾게 된다.

나 또한 고향의 아버지 손에 이끌려 머슴살이를 가야 했다. 머슴이란 일이 그 자체로 어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유가 없는 일이다. 주인이 시키는 노동에 시간과 체력을 쏟게 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날 찾으러 서울로 오시게 되면 나는 다시 머슴으로 붙들려 가게 된다. 그것이 나의 고질적인 불안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기도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불안감이 없었다면 기도하는 일에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란 이처럼 얄팍하고 가볍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 법이다.

기도는 나 개인의 유일한 동아줄이었고 무기라면 무기였다. 그것에 의지해 나는 청소년기에 처음으로 인생이라는 배에 돛을 올린 셈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걸 의식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는 ‘이승만 대통령 82회 탄신 기념 전국 글짓기 대회’에 응모해 군내 수상을 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괴이한 대회임에 분명하지만 그 시대에는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뒤이어 국립경찰 창립 17주년 예산군 내 글짓기 대회에 참석해 1등을 수상했다. 이런 과거 경력을 지녔던 터라 대학에 진학할 때도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제자 중 두 학생이 문예창작과 학생이었는데 방학 중에 그들이 선생님을 뵈러 온 일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 제자들을 자랑하곤 하셨다. ‘나도 저 형들처럼 2년제 서라벌 예술대에 가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서울대 농과대에 재학 중인 앞집 형에게 ‘사상계’나 ‘현대문학’에 실린 소설을 읽곤 했었다. 그 가운데 오영수라는 작가의 ‘기질(氣質)’이란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농민소설이라서 그런지 나에게는 진한 감동을 줬다. 그 독후감을 ‘현대문학’ 편집부에 보냈다. 뜻밖에도 오영수 선생님이 답신과 함께 당신의 창작집 ‘머루’를 한 권 보내주셨다. 오 선생님의 글을 여러 번 읽고 나자 당신이 낚시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가 살던 곳이 예당 저수지와 매우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을 오 선생님께 알려 드렸다. 내 편지를 받으신 선생님은 나의 초청에 낚시하러 오시겠다는 답신을 보내오셨다. 그리고 진짜로 예당 저수지에 오셔서 낚시하시고 가난한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신 일도 있었다.

그때 오 선생님께 나의 소설 지도 선생님이 돼 달라는 부탁도 드린 일은 없었지만 나는 이미 그분의 문하생처럼 돼 있었다. 서울에서 지내면서 공장에서 쉬는 날 오 선생님이 사시는 성북구 쌍문동 산298번지로 찾아뵀다. 나는 여러 말끝에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고 서라벌 예술대에 문예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시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흔쾌히 “자네가 요청한 대로 김동리 선생께 편지를 써 줄 터이니 가서 의논해 보라”고 하셨다.

허위허위 돈암동 산 8-3번지로 찾아가 서라벌 예술대 문예창작과장 김동리 선생님을 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자네가 장학생? 거 신춘문예 당선이나 문예지 추천을 받은 일이 있는가. 그게 규정인데….”

“그것은 내년에 제가 당선하고 올 테니 외상으로 입학을 먼저….”

공돌이 주제에 ‘외상 입학’이라는 용어를 들은 김동리 선생께서는 아연실색하는 표정이셨다. “외상 입학이라고?”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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