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또 정청래 겨냥 “책임의 언어를”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X(옛 트위터)에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고 썼다.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결과를 “이겨야 하는 곳을 졌다고 하면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평가한 데 이어 여당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치적 책임’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여당은 주어진 권력으로 책임을 지는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이 중요하다”며 “집권 여당은 신념을 버리지는 않되 신념의 언어보다는 ‘책임의 언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또 “(여당은) 대결과 배제보다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반발을 최소화하는 ‘큰 그릇’ 역할을 해야 한다”며 “불가피하게 깨고 나가야 한다면 깨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 공감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현실과 이상 간의 균형감각도 강조했다.
일반적인 표현들로 채워진 말이지만 여권에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임 도전 포기를 압박한 것”(수도권 중진 의원)이라고 받아들이는 이가 많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여당이 여당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할 사람은 당 지도부, 특히 당 대표 아니겠느냐”면서 “(이 대통령이) 서울과 용인·성남 등 수도권 단체장 선거 패인이 정청래 지도부의 분열과 편가르기 정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딜레마…여당내 “2년차 대통령에 맞설 수 있나”
청와대 관계자도 “좀 더 포용, 통합하는 방향으로 선거를 치렀다면 서울과 대구시장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대체적 기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적극적 메시지가 근본적으로는 조기 권력 누수 현상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과거 대부분의 정부가 ‘당·청 갈등→선거 패배→새 지도부 또는 차기 대선 주자와 청와대의 갈등’ 순으로 레임덕을 맞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갈등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갈등하면서 레임덕을 피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당·청 관계는 부드럽지 않았다. 검찰 개혁 방법론을 둘러싼 엇박자가 계속됐고, 정 대표가 ‘전 당원 1인 1표제’ 등 전당대회 룰을 연임 도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할 때도 긴장은 고조됐다. 여권 관계자는 “보통 임기 3~4년 차에 당·청 갈등이 두드러지지만 정 대표가 연임할 경우 정부 2년 차부터 당·청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며 “이 대통령도 이 점 때문에 예민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시선은 정 대표의 연임 도전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직후에도 정 대표의 출마 의지가 꺾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 대표는 지난 10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전국위원장·시도당위원장 선출에도 ‘전 당원 1인 1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의결했고, 페이스북에 “의원총회 생중계”를 띄우는 등 자신의 강성 지지층에 부응하는 조치를 착착 진행했다. 같은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추가 발언을 자청해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재차 정 대표를 겨냥하면서 정 대표가 직면한 딜레마는 선명해졌다. 한 친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김 총리에 대한 신임을 드러냈는데 정 대표가 출마를 불사하면 ‘맞짱을 뜨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비정청래계로 분류되는 다른 의원은 “지지층이 기정사실로 여겨 온 연임 도전을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그냥 밀려나는 모양새”라며 “그런 뒤 다음 대선까지 별다른 정치적 기회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반대하는 당권 도전을 강행하다가 실패하면 여권 내에 정 대표의 설 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결국 집권 2년 차 대통령에게 맞서 이길 수 있느냐가 정 대표 고심의 마지막 포인트일 것”이라고 했다.
주말인 지난 13일과 14일 공개 일정을 잡지 않은 정 대표는 13일 강원도 낙산사를 찾아 개인시간을 가졌다. 민주당은 24일 최고위원회의와 26일 당무위를 열어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설치·구성 관련안을 의결한다.
한편 이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현지에서 화상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어 “참정권 침해에 대한 국민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다 인정하고 수용한다. 그런데 이를 악용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선동하는 세력들이 더 고개를 들고 있다”며 “선거 결과 조작 등을 운운하면서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국민들의 귀한 목소리를 모욕하는 반사회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윤성민·김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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