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주의 혁신의 길] 난립한 정부위원회, 투명한 국정 자문체계 재설계해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정부가 정책을 발표할 때 흔히 붙는 문구다. 이 표현은 과학적 의사결정의 보증수표처럼 사용된다. 그런데 정작 누가 무엇을 자문했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때로 자문은 공직사회의 책임을 분산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정책 자문에 가려진 불편한 민낯이다. 그 자문이 작동하는 무대가 바로 위원회다. 위원회가 너무 많다는 지적은 진부할 정도다. 2025년 기준 법령에 근거한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는 581개다. 행정위원회 41개, 자문위원회 540개로 대부분 개별 부처 소속이다. 이 숫자만 봐도 위원회 과잉론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 진단은 정곡이 아니다. 위원회 수를 줄이는 게 해법이라면, 진작에 해결되어야 했다. 역대 정부마다 위원회 정비를 외쳤지만 지난 20년간 법정 위원회 숫자는 연간 600개 내외로 유지되었다. 위원회는 군더더기가 아닌, 현대 국정이 필요로 하는 정책 지식의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인공지능, 에너지 전환, 공급망 재편. 이런 과제는 장관이나 공무원의 직관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위원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을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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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위원회만 600개 안팎
임시위원회는 수천 개 추정
정책 결정 과정 투명하지 않아
자문활동 등록제 등 검토해야
」
![[사진 Gemini]](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15/joongang/20260615001339719visk.jpg)
규모조차 파악 안 되는 임시위원회
문제는 581개 법정 위원회 바깥에 훨씬 더 큰 규모의 임시 위원회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기본계획이나 미래전략을 만들 때, 사업과 과제를 기획하고 운영할 때, 기관 운영을 살필 때마다 위원회가 꾸려진다. 수립위원회·기획단·작업반·점검단·평가단·검토위원회 등 정부는 다양한 명칭의 위원회를 통해 외부 지식을 빌린다. 이러한 임시 위원회는 수천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나, 행정기관위원회법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어 전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위원회가 많다는 진단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정작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정책이 결정되고 있었다. 이 불투명함이 만드는 문제는 단순 행정 비효율이 아니다. 더 심각하다. 전문성이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밀실의 영향력으로 전락할 수 있다. 특정 산업 규제나 연구개발 예산 배분을 결정하는 위원회에, 그 결정으로 직접 이익을 얻는 이해관계자가 독립 전문가의 이름으로 참가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정부가 어떤 권고를 받아들이고 어떤 권고를 거부했는지 설명할 의무도 없다. 전문가는 자문하고, 관료는 그 지적 권위를 빌려 결정하고, 책임은 어느 쪽에도 선명하게 귀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누가 전문가를 고르는가. 그들은 어떤 질문에 답하는가. 이해 관계자가 전문가의 탈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정부는 자문 결과를 수용하거나 거부한 근거를 투명하게 설명하는가.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남는가. 이 질문들을 외면한 채 위원회 숫자를 줄이는 것은 민낯에 분칠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위원회 개혁의 방향은 억제가 아니라 재설계다. 국가적 자문 활동 전체를 투명하게 관리할 새 판이 필요하다. 행정의 유연성을 보장하되 공개와 책임의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선례가 있다. 미국의 연방자문위원회법(FACA)은 1972년부터 명칭 불문하고 연방기관이 설립하거나 활용하는 모든 자문 조직의 공개, 기록, 균형 구성 의무를 부과해 왔다. 집행력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자문 과정을 공적 관리 대상으로 규정한 원칙은 유효하다. 독일의 경제자문위원회 사례는 더 규범적이다. 위원회가 보고서를 제출하면 연방정부는 8주 이내에 의회에 공식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어떤 권고를 받아들였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를 설명할 법적 의무가 있다. 제도의 형식을 수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을 공적 책임 구조 안에 두는 원칙을 배우자는 것이다.

위원회 정보, 공개로 전환해야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정부 자문 활동 등록제’다. 국가 전략, 기본계획, 대규모 재정사업, 규제 개혁을 위해 외부 전문가나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다면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기구의 명칭, 운영 기간, 참여자와 그 소속, 회의 횟수, 주요 안건과 자문 내용, 최종 산출물, 사용 예산 등. 현재는 각 기관 홈페이지의 보도자료나 정부 안건, 보고서별로 매우 제한된 정보만 공개하며, 비공개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정보는 국민이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공개 데이터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등록 데이터가 쌓이면 자문 참여자의 이해충돌 패턴이나 특정 집단의 과대 대표 여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투명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더 나은 정책 학습의 기반이다.
둘째, 참여자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은 전문가·이해관계자·시민대표가 모두 민간위원으로 묶인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문가는 사실관계·위험·불확실성·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해관계자는 자기 부문이 받는 영향과 요구를 말해야 한다. 시민대표는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공익적 가치를 따져야 한다. 셋 모두 국정에 필요하나 서로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 경계가 흐려지면 이해관계자가 전문가 행세를 하거나, 전문가가 관료의 결정 책임을 덮는 방패로 쓰인다. 시민 참여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대표 몇 명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정책의 실질적 영향과 선택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 그것이 진짜 시민 참여의 출발점이다.
셋째, 정부의 답변 의무다. 자문 결과가 나오면 정부는 설명해야 한다. 어떤 권고를 받아들였고, 어떤 권고를 왜 거부했는지. 지금은 이 의무가 없다. 자문보고서는 제출되고 사라진다. 답변 의무가 생기면 달라진다. 전문가는 근거를 공개하고, 정부는 그 근거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설명한다. 이 과정이 기록되고 공개될 때, 자문은 결정의 들러리가 아니라 책임의 근거가 된다.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는 문구로 정책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관행은 끝내야 한다. 누가 자문했는지, 무슨 이해관계였는지, 정부가 그 결과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새로운 정당성의 기준이다. 이제 위원회 개혁의 과제는 양적 관리를 넘어, 투명한 국가 자문체계의 재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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