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일본 읽기] 체질 바꾼 일본 증시

1989년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 경제가 적어도 증시에서는 확실한 체질 개선에 성공한 모양새다. 한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닛케이225 지수는 7000선이 무너지며 비관론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증시는 구조 개혁의 성과에 힘입어 당시 최저점 대비 10배 가까이 상승하며 6만5000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압도적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없음에도 이 같은 주가 상승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일본 증시의 부활은 특정 스타 기업의 독주가 아니라 아베노믹스 이후 도쿄증권거래소가 주도한 증시 밸류업과 시스템 혁신에서 비롯됐다. 일본 당국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에 구체적 개선 계획 공시를 요구했고, 상장 유지 기준과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시장 규율을 강화했다. 일본 정부는 더 나아가 소형주 중심의 ‘그로스 시장’을 대상으로 2030년까지 상장 5년 내 시가총액 100억 엔을 달성하도록 하는 등 전방위적 추가 개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보여준 증시의 체질 개선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 시장을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워런 버핏도 미쓰비시 등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대거 늘렸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는 한편 기업 경영과 투자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는 최소화했다. 이런 정책 기조가 장기적 자본 유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셈이다.
다만 초일류 반도체 및 빅테크 기업이 아직 없다는 점은 일본 증시의 한계다. 아날로그 제조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는 안정적 배당을 보장하지만, 미래의 파괴적 혁신을 이끌 성장 동력으로는 부족하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 증시의 다음 과제는 자본시장 개혁의 성과를 AI·반도체·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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