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화의 중재자,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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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는 의식이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
| ⓒ 연합뉴스 |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10일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북·중 정상회담의 의미를 짚어보고,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6년이 지난 지금, 이 선언의 유효성을 함께 논의했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북미 대화의 중재자, 한국에서 중국으로
- 중국 시진핑 주석이 8일 북한을 방문했어요. 2019년 이후 7년 만인데 정상회담 어떻게 보셨어요?
"지난 몇 년간 북·중 관계가 얼어붙어 있었는데, 작년에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북미가 중국을 빼놓고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을 중국이 우려했어요.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중국이 북한 달래기로 태세를 전환했고, 전승절 시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했죠. 그때부터 북·중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방문 이후 계속 답방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이번 평양 정상회담이 예기치 못한 일은 아니에요.
4월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분위기가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원하는 것들을 주고받는 논의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했거든요. 주목할 부분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시진핑 주석과 북한 얘기도 했느냐고 물었는데 했다고 인정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에게 불리한 얘기면 인정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인정했다는 건 북한 관련해서 긍정적인 얘기가 나왔다고 추측할 수 있는 거죠."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히 알았을 가능성이 있어요. 북한이 미국을 상대할 때 중국이 끼어드는 걸 달갑지 않아 한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을 수 있죠. 중국도 북한 문제로 미국과 갈등이 심해져 동북아가 불안정해지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미국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불안한 이중적인 태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방관하지 않고 직접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북미 협상에서 중국에 불리한 내용이 나오지 않도록 관여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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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 ⓒ UPI=연합뉴스 |
"그렇죠. 근데 최근에는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서 중국과 북한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아요. 북한에는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중국에는 북미 협상이 자기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양쪽 다 필요성을 느끼는 거죠."
- 시진핑 주석이 7년 만에 북한에 간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북측에서 와달라고 한 것도 있고, 미국과의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에 북한을 관리할 필요도 있었을 거예요.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북한에 전달해 줬을 가능성까지도 봐야죠."
- 그렇다면 북미 대화의 중재자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갈까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중국만큼의 힘이 없고,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를 중재자로 인정해 주지 않아요. 우리 외교 안보 당국자들도 그걸 강하게 밀어붙여 돌파할 배짱이 없다 보니 8년 전 문재인 정부 때 한국을 중재자·조정자로 활용해 보려다 실패한 후로 북한도 미국과 직거래하는 게 낫다는 인식에 한국의 역할을 전혀 인정하지 않죠. 한국은 미국 눈치만 보고 있어서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공항에 나가 영접하는 등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었어요.
"7년 전 시진핑 주석이 왔을 때도 직접 공항 영접은 했어요. 얼어붙었던 북·중 관계가 많이 풀렸다고 볼 수 있죠.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중국 쪽에서 경제적인 것이든 다른 것이든 당근을 제시한 게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봐요. 이번 실무 협상에서 북측은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실리를 얻는 데 중점을 둔 것 같고, 중국은 북미 협상 외에도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나갈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려는 것 같아요. 지금은 러시아와 북한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그게 안 되니까, 그런 부분도 논의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발전 최우선주의, 북한은 이란과 달라
- 그런데 유엔 제재가 있잖아요. 중국도 유엔 제재를 지켜야 하잖아요.
"러시아는 이미 유엔 제재를 인정 안 한 지 몇 년 됐고, 중국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북한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제재를 철저히 지키다가 관계가 나아지면 슬금슬금 구멍을 뚫어줘서 북한이 필요한 것들을 가져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하죠."
-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거 같은데.
"언론에서는 비핵화 논의가 없었던 것이 대단한 일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전문가는 비핵화 얘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했어요. 트럼프 정권 당국자들조차도 북한이 그사이에 핵 능력을 너무 키워놔서 하루아침에 비핵화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일단 핵을 더 만들지 못하도록 동결만 해도 성공이라고 봐야 하고, 그다음에 서서히 핵 군축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거죠."
- 단계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있나요?
"저는 옛날부터 불가역적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이 불가역적으로 경제 발전의 길을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어요. 북한이 경제 발전의 길로 가서 철도, 고속도로, 조선소 등 전국에서 공사가 이루어지고 외국 기업들이 진출하는 상황이 되면, 굳이 핵무기로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을 협박할 필요가 없어지잖아요. 북한이 시장 경제의 단맛을 보게 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 다음, 서서히 당근을 제시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단계적 비핵화를 하도록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 근데 지금 이란 같은 경우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미국 공격 받는다고 김정은 위원장은 생각할 거니 경제 발전해도 핵 포기 안 할 것 같거든요.
"이란이 공격받은 건 핵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수십 년간 이슬람 혁명을 외부로 수출하려 해서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 UAE 같은 이슬람 국가들까지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또 미국과 계속 적대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미국이 이란을 위협적이고 골치 아픈 존재로 봐온 게 근본적인 이유죠. 북한은 다르게 볼 수 있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경제 발전 최우선주의로 나가고 있는 만큼, 북한의 경제 발전을 도와주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미국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미국이 굳이 북한을 공격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 시진핑 주석 방북으로 중국이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세요?
"시진핑 주석 방문으로 중국이 두만강을 통해 동해로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 반대급부로 북한에 4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해준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철도·항만 건설과 중공업 투자도 거론되고 있고요. 이렇게 되면 제가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 우리가 남북경협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중국이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구경꾼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우리 경제권에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 부시 정권과 국내 보수세력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 결국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 너무 많이 변해, 6·15 때 방식 더는 안 통해
- 15일이면 6·15 남북 공동선언 26주년입니다. 26년 지나다 보니 6·15 남북 공동선언은 그냥 옛날의 이벤트 같은 느낌도 있는데 아직 유효할까요?
"김대중 대통령님 살아계실 때 6·15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 '6·15 정신을 되살리자'는 구호를 썼었는데 이제는 그 시대가 지나갔어요.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도 살아계실 때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남북 문제를 해결해야지, 그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우려하셨는데 그게 정확히 현실이 됐어요.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히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이에요. 민족이나 통일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두 개 국가를 말하고 통일이란 말을 아예 지우는 결정을 했거든요. 우리가 적극적인 외교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고 동북아 평화를 이루자던 6·15의 정신은 계속 이어나가야 하지만, 6·15 때 북한을 다루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북한이 너무 많이 변해버린 거죠."
-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론을 말하잖아요.
"법적으로 두 개 국가를 공식화하는 건 헌법 문제로 불가능하지만, 호칭을 조선과 대한민국으로 부르고 사실상 두 개 국가를 인정하는 건 필요해요. 이미 UN 동시 가입할 때 서로를 인정한 거고, 남북 정상회담 때마다 공식 문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으로 표기까지 했잖아요. 이제 와서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해 봐야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안 돼요. 법적 공식화는 못하더라도 사실상 인정하는 모습은 보여야 해요. 김정은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거냐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협상은 상대가 있는 거고 상대가 더 이상 북한이나 북측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우리 마음대로 호칭을 정해서 부른다고 협상에 도움이 되는 건 없어요."
"처음엔 국제 경기라 마지못해 오나 보다 생각했어요. 근데 북측 인사 얘기로는 그 팀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팀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의미가 없지 않다고 봐요. 실제로 우승하고 돌아가니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만나서 격려해 주더라고요.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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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여자축구 선수들이 두 손을 들어 환호하는 가운데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6.6.2 |
| ⓒ 연합뉴스 |
"북측 관련 인사들이나 중국 쪽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와요. 남북 관계에 변화가 있고 남쪽과 접촉할 가능성이 꽤 있다는 거죠. 다만 2018년처럼 예술단이 방문하고 정상회담을 하는 요란한 이벤트가 다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에요.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요. 접촉이 있다면 비공개로 당국자 간 비밀 접촉 정도일 거예요. 북한은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로 보지 않고, 필요할 때 만나서 거래할 수 있는 관계로 보거든요. 그쪽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만나서 그 부분을 논의하게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 거죠."
- 그렇게 하는 게 우리에게 좋을까요?
"좋고 싫고를 떠나서 북한이 예전 같은 남북 교류를 원하지 않으니 우리가 그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어요. 민간 차원의 교류나 문화·예술 교류는 앞으로 거의 힘들다고 봐야 해요. 경제 협력이 잘 돼서 분위기가 좋아지면 조금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걸 먼저 앞세우는 건 불가능해요.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자유화를 통한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전두환 정권 시절 3저 호황으로 경기가 좋아지자 정권은 지지가 높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먹고살 만해지고 외부에 개방되면서 민주화 요구가 거세져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잖아요. 김정은 위원장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걱정할 거예요. 경제 자유화로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 있는데,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이 드나드는 건 덜 걱정스럽지만 한국 사람들이 와서 자유로운 문화를 퍼뜨리는 건 굉장히 위협적이라고 보고 있을 거예요."
- 그럼, 예전처럼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같은 경제 협력은 어려울까요?
"개성공단은 우리 기업들이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큰 이익을 봤지만, 북한 측은 자기들이 그렇게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 합의했을 때는 첨단 산업과 다국적 기업이 들어오는 국제 공단을 상상했는데, 그 부분은 실패했잖아요. 그러니 과거 수준의 개성공단을 다시 하자고 하면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지금 북한이 생각하는 미래 산업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 같은 고도화된 산업이거든요. 북한을 대할 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요."
- 그러나 반도체 같은 건 북한에서 불가능하지 않나요?
"어려운 공정은 못 하겠지만 쉬운 공정은 할 수 있어요. 조선도 큰 배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선박 수리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고요. 북한이 사회주의식 경제를 거의 포기했다고 보는데, 헌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사회주의 부문을 빼버렸어요. 형식적인 변화가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하겠다는 태도예요. 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내수 부양을 위해 돈 있는 사람들에게 자금 출처를 묻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쓰라고 권장하고 있어요. 북한 측 인사에게 들은 말인데, 시진핑 주석이 자산가나 기업을 압박하는 걸 비판하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쓰게 놔두고 기업 활동도 풀어줘야 경제가 산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해요.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얘기죠. 사회주의 포기 정도가 아니라 최고 수준의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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