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선박 용접하고, 용광로 설비 점검…제조 현장 바꾼 AI

지난 12일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조선소. 거대한 선박 바닥 블록 위에서 로봇 두 대가 철판과 보강재가 맞닿은 이음새를 따라 움직이자 하얀 용접 불꽃이 튀어 올랐다. 배 밑바닥의 골격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옆에 선 입사 1년 차 작업자는 로봇의 움직임을 지켜보다 한 구역 작업이 끝나면 장비를 옆 구역으로 옮기는 역할을 했다. 현장 관계자는 “과거 5~10년 차 숙련자 2명이 하던 작업을 이제는 로봇 1대가 해낸다”며 “기존 숙련자보다 생산성이 70% 정도 높아졌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소의 용접로봇은 제조 현장에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어떻게 도입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2023년부터 용접로봇을 도입한 현대중공업은 작업자 1명이 로봇 6대 이상을 운용할 수 있는 자율이동형 전동레일 로봇을 오는 10월 도입 목표로 개발 중이다. 선박 블록을 들어 올릴 때 필요한 부품인 러그 제작 공정도 상당 부분 자동화됐다. 전량 수작업일 때는 6명이 하루 100개를 만드는 데 그쳤지만, AI·로봇 기반 자율제조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인력 1~2명으로 하루 440개를 생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윤대규 자동혁신부 상무는 “이 모든 것을 디지털 트윈(가상 모형)으로 구현해 관리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도 품질 검사까지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제조 현장이 AI 전환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중국의 거센 추격이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1월 발표한 ‘AI 플러스 제조업’ 계획에서 2027년까지 산업용 AI 에이전트 1000개, 선도기업 1000개 등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윤 상무는 “조선업은 대량 생산 체계가 아니라 자동화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AI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통상부도 ‘M.AX(Manufacturing AX, 제조 AI 전환)’ 정책으로 제조 현장에 AI 확산을 추진 중이다. 1000여개 기업·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꾸려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 2030년까지 100조원 이상의 AX 관련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철강 현장에서도 AI와 로봇 도입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11일 찾은 경북 포항제철소 제2고로에선 4족 보행 로봇이 고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통로인 풍구 주변을 점검하고 있었다. 풍구 표면 온도는 200~300도에 달해 사람이 하루 한 번 점검하기도 어려웠지만, 이제 로봇이 하루 12차례 돌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 포스코는 이 밖에도 원료 운반 컨베이어벨트의 소리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 징후를 미리 잡는 예지보전 로봇, 1500도 안팎의 쇳물 온도를 재고 시료를 채취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등을 개발하고 있다.
같은 날 둘러본 포항 에코프로비엠에서도 자율이동로봇(AMR)이 고온과 분진이 많은 설비 주변을 오가며 사람이 하던 점검을 대신하고 있었다. 양극재 공정의 핵심 설비인 소성로는 리튬·전구체 등의 원료를 고온에서 구워 배터리 양극재로 만드는 긴 터널형 가마다. 내부를 사람이 직접 볼 수 없어 공정 관리가 쉽지 않았지만, 회사는 터널 내부 센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품질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일각에선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지만, 제조업 현장에선 고위험 수작업이 가능한 숙련자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문제를 해소할 대책이 AI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AI 전환은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 중국의 인력·원가 공세에 맞서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며 “사람이 애초부터 하기 어렵고 위험했던 작업을 대신함으로써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포항·울산=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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