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양자와 결혼시키자” 日 여성 천황 논쟁에 숨은 뜻밖의 쟁점[이세계도쿄]
“인기 인정하지만 여론 좌우되면 천황제 흔들려”
“아이코, 남계 후손과 결혼해 대 이어야” 주장도
다카이치 정권, 여성 황족 잔류·양자 방안 추진
아소 다로 ‘외척 계략’ 의혹까지 번진 황위 논쟁

일본에서 여성 천황론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부쩍 치열해졌다. 그 중심에 선 아이코 공주(공식명 내친왕)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지지는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 나루히토 천황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가 인기를 얻을수록 ‘아이코 천황’ 대망론이 힘을 얻고 그에 저항하듯 반대론도 다급해진 분위기다.
“여성 천황이 왜 안 되느냐”는 여론과 “천황은 전통대로 남자가 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각자 논리를 갖추고 있지만 어느 쪽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평행선을 그리는 두 견해는 ‘외척 정치’라는 키워드에서 만난다. g흥미롭게도 양쪽 모두 이를 천황제를 오염시킬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지적하고 있다.
조금 앞서 지난달 중순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성 천황 찬성은 72%로 마이니치신문과 같은 수준을 보였다. 이 조사에서 어머니 쪽으로 혈통을 잇는 ‘여계’ 천황도 괜찮다는 응답은 74%였다. 여성 천황론은 후대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여계 천황 논의와 쌍을 이룬다.
여성 천황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남계 남자 계승’이라는 원칙을 바꾸면 천황제의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고대부터 천황에게 아들이 없을 땐 촌수가 아무리 멀어도 남계 혈통을 찾아 황위를 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 역사에 여성 천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즉위 사례를 포함해 모두 10대에 걸쳐 8명이 있었다. 다만 모두 남계 혈통이었다. 독신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상태에서 즉위했고 재위 중에는 결혼하거나 출산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의 자녀가 황위를 이은 ‘여계 천황’ 사례가 없었다.
남계 계승론자들은 이런 관행이 여계 계승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해석한다. 이들은 여성 천황들을 다음 세대 남계 계승자가 즉위할 때까지 공백을 메우는 임시적 존재였다고 본다.
황위 계승 문제를 다뤄온 프리랜서 언론인 구도야마 마사노부 기자는 지난달 비즈니스 잡지 ‘프레지던트’ 온라인판에 기고한 글에서 높은 여성 천황 찬성 여론을 언급한 뒤 “아이코 내친왕 개인에 대한 국민적 존경과 호감도가 그 숫자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흐름을 위험하다고 봤다. 황위 계승을 국민적 인기나 개인 자질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황실이 여론에 좌우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그래서 ‘아이코 천황’ 추대론이 위험하다고 본다. 아이코 공주 개인의 인기 때문에 황위 계승 원칙을 바꾸면 다음 세대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왜 이 가문이 천황이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학자 모모치 아키라 고쿠시칸대 특임교수는 2021년 5월 정부에 제출한 14쪽짜리 전문가 의견서에서 “한 번 시대의 요청에 맞춰 규칙을 바꿔버리면 다음에 시대가 변했을 때 또 규칙을 바꾸고, 그리고 그다음에도…”라며 “황실을 전통이나 권위로 삼는 근거는 서서히 약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모치 교수는 당시 총리관저에서 열린 황위 계승 관련 유식자(전문가) 회의에서 전문가 4명 가운데 가장 강하게 남계 유지를 고수했다. 역시 헌법 전문가인 다른 3명은 각각 ‘남계 여성 천황 허용’, ‘여성·여계 확대를 기본 방향으로 한 계승 자격 확대’, ‘여성·여계 천황 모두 찬성’ 입장을 냈다.
구도야마 기자는 아이코 천황 대망론이 1500년 이상 이어져 온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 황실의 형태를 크게 바꿀 수 있는 문제라며 “아이코 천황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계 계승론자들은 아이코 천황 즉위가 결과적으로 여계 천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긴장하고 있다. 아이코 공주가 천황이 된 뒤 일반 남성과 결혼해 자녀를 낳으면 아들이든 딸이든 황실 기준 혈통은 ‘여계’가 되기 때문이다.
남계 계승론을 옹호하는 규슈대 비교사회문화연구원 세 데루히사 교수는 “그때 여론이 뒷받침한다면 부계가 황통이 아닌, 아이코 천황의 자녀에게 황위 계승의 길이 열릴 가능성은 있을 것”이라며 “그 뒤에 직면하는 것은 황실 제도 존립의 ‘위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고 구도야마 기자는 전했다.

모모치 교수는 2021년 유식자 회의 보고서에서 “여계 천황은 2000년에 가까운 ‘황실의 전통’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헌법 위반의 의심마저 있다”며 “여계 천황은 ‘만세일계의 황통’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위 계승에 관한 조항인 일본 헌법 제2조는 ‘황위는 세습되는 것이며, 국회가 의결한 황실전범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계승한다’고 돼 있다. 황실전범 제1조는 ‘황위는 황통에 속하는 남계 남자가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여성 천황도, 여계 천황도 인정되지 않는다.
아이코 천황 반대론자들은 여계 천황이 제도적으로 타당한지보다 일본 국민 사이에 ‘지금 천황은 정말 전통적 의미의 천황인가’ 같은 의문이나 별도 해석이 생기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황실의 정통성에 균열이 생기고 국민 여론이 갈라질 수 있다는 논리다.
예을 들어 여성 천황이 야마다라는 성을 가진 일반 남성과 결혼할 경우 누군가는 이를 ‘야마다 왕조’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도야마 기자는 이를 “역성혁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험”이라고 평가했다.
세 교수는 “지금의 천황은 진짜 천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의심이 국민 사이에 1㎜라도 생기는 것 자체가 황실 제도에는 치명상”이라고 말했다.

여성·여계 천황 반대론자들은 남계 계승 원칙을 버리면 황실이 배우자라는 변수를 통해 특정 가문이나 외부 세력에 휘둘릴 위험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세 교수는 “여계를 용인하는 시스템이 되면 근세 이전에는 천황의 ‘배우자 가계’가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될 우려가 있었다”며 “실제로 후지와라 가문 등 외척이 권세를 떨친 예가 있다”고 덧붙였다.
후지와라 가문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10세기 말~11세기 초 일본 조정에서 최고 권력을 잡은 귀족이다. 그는 자신의 딸 4명을 차례로 천황과 결혼시킨 뒤 딸이 낳은 아들을 천황으로 세우며 권력을 장악했다. 천황의 외가나 장인이 권력을 쥐는 ‘섭관정치’의 대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세 교수는 “남계를 지킨다는 것은 천황을 권력자 같은 ‘특정 누군가의 집안사람으로 만들어 두는 것’을 막기 위한 지혜이기도 했다”고 해설했다.
다만 후지와라 가문 사례는 남계 천황 체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또 지금 천황은 정치적 중립을 강하게 요구받는 위치로 헌법상 국정에 간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과거와 같은 외척정치가 그대로 재현되기는 어렵지만 황실의 상징성 때문에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는 ①여성 황족이 결혼 후에도 황족 신분을 유지하는 방안과 ②옛 미야케 남계 남자 자손을 양자로 맞아 황족으로 들이는 방안을 축으로 황실전범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들 방안은 남계 남자 계승을 전제로 한다.

표면상 목적은 안정적 황위 계승을 위한 황족 수 확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성·여계 천황 논의를 뒤로 미루고, 나아가서는 여계 천황 탄생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방안①이 관철되면 아이코 공주는 결혼 후 황실에 남을지 떠날지 선택해야 한다. 남는 경우 일반 국민인 남편과 호적이 나뉜다. 두 사람이 낳은 아이는 아버지 호적에 올라 일반 국민이 되기 때문에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
정부와 자민당은 해당 법 개정을 이번 국회 회기 말인 다음 달 17일까지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구성만 보면 성립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제 법안의 세부 설계와 각 당 합의 과정에서는 여전히 쟁점이 남아 있다. 양자안의 경우 그 자녀에게 황위 계승권을 인정할지를 두고 이견이 크다.
당장 자민당 출신 모리 에이스케 중의원 의장이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설명으로 파문이 커졌다. 그는 황족 양자를 맞는 경우에 대해 “그에게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황위 계승권을 갖는다”고 말했다.
중도개혁연합 소속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는 9일 “각 당은 황족 수 감소에 제동을 거는 논의에만 집중해 왔다”며 “갑자기 의장의 해석으로 덧붙이듯 논의를 진행한다면 참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양자를 받아들이는 제도 설계 과정에서 그런 내용이 포함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일단 지난 10일 여야 전체회의에서 해당 방안은 모두 ‘입법부의 총의’(합의안)로 정리됐다. 정부는 조속히 법안 작성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야마시타는 결혼 후 황실에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의 책임을 여성 황족 본인에게 지운다는 점, 남을 경우 가족 안에서 황족과 일반 국민으로 신분이 갈리는 구조를 낳는 방안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황실과 내각·국회 사이에 골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구라시게 아쓰로 마이니치신문 객원 편집위원은 지난 7일자 ‘선데이 마이니치’에서 헌법 제1조를 들어 “남계 양자론은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도,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일본 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이 지위는 주권이 있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돼 있다.
노다 전 총리는 옛 미야케 후손이 지금은 ‘보통 국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양자로 황족이 된 일은 역사상 없었다”며 “그것을 굳이 한다면 헌법 14조가 금지하는 ‘문벌에 의한 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라 다케시 메이지가쿠인대학 명예교수는 “남계 양자안이 통과되면 아이코 공주는 천황이 되지 못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 경우 오히려 국민 여론이 갈라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정략결혼 논의는 시대에 맞지 않을 뿐더러 당사자 의사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황 일가에 불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천황제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가와니시 히데야 나고야대 교수는 “현재 진행되는 논의에서는 가장 중요한 아이코님의 의사가 고려되지 않는 듯 보인다”며 공주의 아버지 나루히토 천황과 할아버지 아키히토 상황 모두 연애결혼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황실 내에서도 불편한 기류가 감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궁내청 관계자는 주간신초에 “청 안에서는 불쾌감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며 “다름 아닌 상황후님(아키히토 상황의 부인이자 아이코 공주의 할머니) 역시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끼고 계신다”고 전했다.
그는 “폐하와 황후님도 딸인 아이코님의 마음을 존중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가능하다면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속에서 연애결혼을 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신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천황은 ‘입법부의 총의’ 도출 다음날인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황실의 모습과 활동의 기본은 항상 국민의 행복을 바라며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황족 수 확보 방식에 관한 논의에서도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이나 제도에 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온 천황으로서는 이례적 발언이었다. 세간에서는 이 발언을 정부의 황실전범 개정 방향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아소 부총재 자신은 다른 당에 정권을 내주며 1년도 안 돼 물러난 단명 총리였지만 일본 정치권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 못지않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이다. 아베 전 총리 사망 후에는 그가 총애한 다카이치 총리의 후견인 역할을 대신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고 총리에 오른 배경에는 아소 부총재의 역할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옛 미야케 양자안을 포함한 황실전범 개정 논의가 아소 가문의 ‘외척 부상’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소 부총재의 여동생 노부코가 1980년 쇼와 천황의 조카와 결혼한 황실 인사이기 때문이다. 남편 도모히토 친왕은 2012년 사망했다. 노부코는 지난해 9월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비가’라는 별도 황실 가문(궁가)으로 독립해 당주가 됐다.
모토키 전 편집장은 노부코 궁가가 남계 양자를 받아들인 뒤 아이코 공주와 결혼시키는 시나리오를 제기했다. 향후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황위에 오르면 아소 가문은 천황의 부계 가문으로 황실과 직접 연결된다. 모토키 전 편집장은 이를 ‘계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후지와라 가문의 섭관정치 사례를 언급하며 “아소씨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아소 부총재가 천황가를 등에 업고 아소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논픽션 작가 구보타 노부오는 지난 13일 경제 매체 ‘다이아몬드’ 온라인판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 근대사를 돌아보면 당시 권력자들이 천황의 권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아소 부총재 등 보수 정치인들이 ‘남계 남자’와 ‘옛 미야케 양자안’을 고집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주장이다.
구보타는 “옛 미야케라는 일반인이 양자로 황족에 복귀하고 그 아들이 천황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여러 문제가 예상된다”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천황의 정치 이용’ 문턱이 크게 낮아진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컨대 ‘옛 미야케 출신 천황’의 가족이나 전 직장 상사, 친구 등이 그 지명도를 이용해 돈벌이를 할 수 있다”며 “천황이 나온 궁가와의 연결을 과시하는 정치인이나 기업도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 다카무라 가오루는 선데이 마이니치에 “우리 일본 국민은 애초 천황제에 대해 확실한 지식도 관심도 갖지 않은 채 막연히 지나쳐 오다 오늘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황실전범 개정을 경계하면서도 다시 한번 논의에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수고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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