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재개된 제주 대북협력사업...북은 왜 제주와 손 잡았나
교류와 화해 분리하는 북...왜 관계 개선으로는 연결하지 않을까

제주특별자치도가 의료기기와 산림방재 약품, 한라봉 묘목 등을 북한에 지원하며 16년 만에 남북교류 협력사업을 재개한 가운데, 이번 북·제주 접촉이 북한의 변화된 대남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박은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적대와 교류의 병행: 북·제주 접촉이 보여주는 북한의 대남전략'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면서도 실익이 있는 분야에서는 제한적 교류와 협력을 수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번 사례의 핵심이 단순히 제주도와 북한의 접촉이 성사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북한이 의료기기와 산림방재 약품, 한라봉 묘목 등 필요한 지원 품목을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이를 수용했다는 점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한 이후 기존 대남기구를 폐지·개편하고 통일 개념을 사실상 폐기했지만, 필요한 분야에서는 협력을 선택적으로 허용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연구위원은 이번 사례가 남북교류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의 변화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남북교류가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 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면, 최근 북한은 교류와 화해를 분리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필요한 물자와 협력은 수용하면서도 이를 정치적 대화나 관계 개선으로 연결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북·제주 접촉 역시 '교류는 가능하지만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 새로운 대남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폐기한 것은 교류 자체가 아니라 교류를 둘러싼 정치적 의미"라며 "현재 북한은 교류를 민족공동체 회복이나 통일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이익을 위한 외교·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북·제주 접촉은 북한이 교류를 중단한 것이 아니라 국가 통제 아래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이번 교류가 북한 당국이 아닌 조선장애자후원회를 창구로 추진됐고,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양돈·관광 분야 협력 가능성까지 논의된 점에 주목했다. 이는 북이 모든 남북교류를 거부하기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분야에서는 제한적 협력의 문을 열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남북관계를 평가할 때 단순히 교류 재개 여부보다 교류의 목적과 성격, 추진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며, 이번 교류 역시 곧바로 남북관계 개선이나 화해 국면의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실리적 접근이 과거 감귤 지원사업 등으로 상징되는 제주의 오랜 대북교류 경험과 맞물리면서 이번 협력이 성사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북한이 제주도를 협력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에는 20년 넘게 축적된 남북교류 경험과 상징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주는 감귤 지원사업과 대표단 교류, 평화포럼 등을 통해 북한과 꾸준히 교류해 온 대표적인 지방정부로, 북한 입장에서는 실무적 효율성과 신뢰도를 갖춘 협력 채널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감성적 요인보다는 교류 자산과 협력 경험 등 실리를 고려해 제주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도는 올해 북한에 신장투석기와 관련 소모품,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약, 한라봉 묘목 등을 지원하는 남북교류 협력사업을 추진했다. 해당 물품은 중국 대련항을 거쳐 지난 5월 4일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
이번 사업은 제주도가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감귤 4만8000톤과 당근 1만8000톤 등 총 6만6000톤을 북한에 지원하며 펼쳤던 이른바 '비타민C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제주의 대북 지원사업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 협력사업의 효시로 평가받았으나 이후 남북관계 경색과 대북 제재 등의 영향으로 중단됐다.
이번 협력사업은 제주도와 북한의 조선장애자후원회사 간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됐다. 지난해 11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만나 제주형 남북교류 협력사업 재개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중국 측 협조 요청, 제주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 기금사업 의결 등이 이뤄지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됐다. <헤드라인제주>
Copyright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