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 환자, 이 병원으로 이송하세요"…AI가 골든타임 길 열었다
AI가 환자 간별진단·검사항목 제안하고 처방전 작성도
'응급실 뺑뺑이' 사라진다…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 확대
"환자 의식 명료하고 혈압 140에 100, 맥박 105회, 호흡수 22회, 산소포화도 96, 체온 36.5도 측정됐습니다."

119구급대원이 환자의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소리 내 읽자 태블릿 화면 속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음성을 인식해 환자의 증상과 필요한 정보를 텍스트로 자동 입력하기 시작한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라는 환자 목소리가 들리자 AI는 곧바로 이를 '흉통'으로 변환해 입력했다. '팔 저림', '식은땀'과 같은 동반 증상도 자동으로 기록됐다. 구급대원이 '저장' 버튼을 누르자 AI가 질환의 중증도, 응급도를 평가해 'Pre-KTAS 2등급-심장성 통증'으로 분류했다. 구급대원이 그 자리에서 환자의 심전도를 촬영해 올리자 AI가 심전도 파형을 분석하고 'ST분절 상승 심근경색'으로 진단했다. 응급 혈관중재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같은 시각, 경북대학교병원 응급실 의료진의 모니터에 '시간민감성 응급환자(Fast Track) 발생' 알람이 울린다. 구급대원이 일일이 병원에 전화해 환자 수용 여부를 묻지 않아도 AI 시스템이 환자의 추정 진단과 병원의 실시간 의료자원 현황을 매칭해 최적의 치료가 가능한 인근 응급실 6곳에 수용 요청을 동시에 타전한 것이다. 병원 측이 '수용' 버튼을 누르자 조금 전 구급대원이 측정한 환자의 심전도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순환기내과 의료진이 빠르게 수술 준비를 마친다.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던 소위 '응급실 뺑뺑이'의 비극이 AI 기술로 해결되는 순간이다.
정부가 응급실 미수용으로 인한 환자 이송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대구·경북 지역으로 확대한다. 응급환자가 구급차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응급실에서 치료받는 전 과정에 AI를 도입, 환자 상태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치료에 최적인 병원을 찾아 이송한다.
보건복지부는 12일 대구 경북대병원에서 정은경 장관 주재로 '대구·경북 이송 지침 개정 관련 간담회'를 열고 AI 기반의 '대구·경북형 스마트 이송체계' 기술 시연회를 가졌다.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를 통해 경북대병원이 개발 중인 '세이버(SAVE-R)' 플랫폼은 멀티모달 AI 기술을 이용해 구급차에서 응급실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정보망으로 연결한다. 이송 병원을 추천할 때는 단순히 빈 병상 수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AI 분류 중증도, 필요한 최종 치료 내용, 각 병원 응급실의 혼잡도, 전문 치료팀의 가용 여부, 이송 거리, 환자의 과거 수진 이력 등이 종합적으로 계산된다.
류현욱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현재 응급환자 이송 과정은 병원 수용 여부를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는 구조라 시간이 지연되고 불안전한 환자 정보를 유선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합리적인 응급실 수용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세이버 플랫폼은 AI 기술을 적용해 구급대가 좀 더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동시에 병원 자원을 분석해 신속하게 환자에게 최적의 이송 병원을 추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전달된 정보를 바탕으로 병원에서는 미리 치료 준비를 시작하고, 결국 최종 치료 제공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다.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는 삼성서울병원의 '이지스(AEGIS)'가 환자 정보 수집과 진단, 처방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의사 결정을 보조한다. 우선 환자의 기본 정보와 함께 구급대가 연동해 준 구급일지, 바이탈 데이터, 간호 초진 평가 등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지고, 환자의 과거 의료 이용 이력과 건강기록 데이터인 '마이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호출된다. 환자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과거 병력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이지스 AI는 환자의 증상과 과거 병력을 분석해 응급실 의료진이 우선 확인해야 할 질환을 먼저 제시했다. 발열과 호흡곤란, 저혈압이 있는 72세 남성 환자의 경우 폐질환·고혈압·당뇨·감염 관련 병력을 우선 노출했고,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낮은 과거 백내장 수술 이력은 뒤로 배치하는 식이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질문하는 음성도 실시간으로 텍스트화됐다. '숨이 갑갑하다', '며칠 전부터 기침과 가래가 있었다'와 같은 문진 내용이 자동 기록됐고, AI는 이를 기반으로 응급실 초진기록 초안을 작성했다.
이어 AI는 패혈증 가능성을 높게 예측하며 우선 검토해야 할 간별 진단 후보와 검사·처방 세트를 안내했다. 의료진이 패혈증 항목을 선택하자 수액과 혈액검사·영상검사 등 초기 처방 목록이 자동으로 뜨고, 의사는 환자 상태에 맞게 몇 가지 내용을 추가·삭제하며 최종 처방을 결정했다. AI가 의료진의 판단을 대체하진 못하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정리하고 실수 가능성을 줄여 의료진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판단과 결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의료진이지만, 응급실에서는 몇 분 차이가 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기 때문에 AI를 통한 시간 단축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며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을 줄여 환자 상태를 관찰하는 데 집중할 수 있고, 그만큼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의 질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이들 AI 플랫폼을 통한 진단 일치율은 이미 90% 이상, 처치 일치율도 90% 수준에 올라섰다. 정부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이런 AI 전환(AX)이 구현된다면 병원 내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동시에 한정된 응급실 병상과 인력으로도 더 많은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대구·경북의 응급 이송지침 개정안도 논의됐다.
대구는 영남권 핵심 거점으로서 Pre-KTAS 1~2등급 중증 응급환자 발생 시 권역·지역센터 6곳에 동시에 수용을 의뢰하는 '다중이송전원협진망'을 이달 중 가동하기로 했다. 지역 내 수용이 어려울 경우 초광역 이송체계를 가동해 전국 단위로 이송 병원을 찾는다.
경북은 지리적 특성을 반영했다. 광활한 면적에 의료기관이 고르게 분포되지 않고, 산악 지형에 울릉도까지 포함된 경북의 여건상 헬기 이송이 핵심 수단이다. 중증 응급환자가 의료 취약지에서 발생하면 닥터헬기와 소방헬기를 활용하고, 119구급대가 이송을 지원한다. 두 지역 모두 광역상황실이 지역 내 대응이 어려운 환자의 이송 병원 선정을 지원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정 장관은 "앞서 호남권 시범사업 추진 결과 응급환자 사망자 수가 감소하고 지역 이송 체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됐다"며 "핵심은 지역 내 관계기관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송체계를 정비하고 합의된 이송 지침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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