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로 한국어 배우는 외국 친구... 이 질문에 말문이 턱
세계 젊은이들과 함께 유기농사를 짓습니다. 세계 속에 한국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는지 나름 최전선에서 관찰해왔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한국, 새로운 한국의 모습을 다시 만납니다. <기자말>
[조계환 기자]
"수고했어요."
농사 일 마치고 들어가며 서로 인사를 한다. 소리만 들으면 한국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다들 외국인이다. 조금 기분이 묘하다.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들이 팜스테이 하러 농장에 많이 찾아온다. 유창하게 한국어 '말하기'는 못해도 '듣고 이해하기'는 꽤 잘하는 친구들도 많다.
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을까? 한국어 배우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침 지난 5월부터 농장에 머물고 있는 외국 친구 세 명이 모두 한국말을 잘 해서 물어봤다. 왜 한국어를 배우게 됐고, 배우면서 어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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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를라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되풀이하며 읽었다고 한다. 마늘쫑을 뽑고 있다. |
| ⓒ 조계환 |
카를라(Karla, 21세)는 덴마크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1학년 교육과정인 '김나지엣(gymnasiet)'을 막 졸업하고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전공은 생명공학이다.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도 있고,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한다.
카를라의 음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쉬는 시간에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거야'를 연습해서 불러보라고 추천해주었다. 몇 번 들어보더니 한국어 가사를 금방 따라하며 노래를 불렀다. 20대 초반인 카를라가 특히 공감하기 쉬운 가사인 듯하다.
"언니의 절친이 한국계 가족 출신이라 함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언젠간 한국 여행을 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한글은 2주 정도 공부하니 완벽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예상보다 너무 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카를라는 14세부터 2~3년 정도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다. 한국어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언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동시에 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읽기, 쓰기, 듣기 연습이 담긴 여러 권의 책을 사서 독학했다. 공부하면서 실제로 연습할 기회가 없어서 좀 답답했단다. 특히 조사나 문장 구조가 무척 어려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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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들과 봄배추를 수확했다. 말이 잘 통해서 일하기가 쉽다. |
| ⓒ 조계환 |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점이 한국어에서 제일 좋아하는 점 중 하나에요. 덴마크어하고는 많이 달라요. 덴마크어에도 영어로 쉽게 번역할 수 없는 감정 표현들이 있지만, 한국어 만큼 많지는 않아요.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카를라는 농사일이 처음이라 팜스테이를 시작했을 때 농사에 적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특히 5월 중순 갑작스런 더위가 찾아왔을 때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힘들어했다. 북유럽 사람에게 처음 겪는 한국의 더위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카를라는 금세 적응했다. 이제는 김매기, 수확하기, 농산물 포장, 토마토 관리 등 농사일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산이 없는 덴마크와 달리 한국은 산이 많아서 좋아요. 농사일 하며 보게 되는 풍경이 아름다워요.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좋은 건 음식이에요. 특히 김치가 너무 맛있어요."
카를라는 지금 한창 빛나는 20대 청춘이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 많은 시기다. 이번 한국 여행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제 막 부모님의 울타리를 넘어 성인으로 넘어가는 카를라의 앞날에 밝은 날들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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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 마늘을 수확한 뒤 기념으로 파트리시아가 마늘 화관과 부케를 만들었다. 마늘 화관을 쓰고 웃는 모습이 정말 마늘 아가씨 같다. |
| ⓒ 조계환 |
파트리시아(Patricia, 23세)는 영국 런던에서 나고 자랐지만 폴란드 사람이다. 부모님이 폴란드 사람이고 폴란드어와 영어를 사용한다. 생물학을 전공했고 농사와 정원 가꾸기 등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여름 제일 더웠던 시기에 한 달을 머물다 갔는데, 올해 다시 백화골에 방문했다.
"한국의 역사, 언어, 그리고 일상 문화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전통 문화와 현대 생활이 공존하는 모습이 흥미로워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특히 <나의 해방일지>를 여러 번 다시 봤습니다.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 공부하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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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장에서 처음 만난 카를라와 파트리시아는 함께 생활하며 진짜 언니 동생처럼 친해졌다. |
| ⓒ 조계환 |
실제로 파트리시아는 일하면서 종종 "짜증나요"라고 말하곤 한다. 진짜 짜증 내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웃으면서 농담할 때만 하는 말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나이나 관계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문법이 맞아도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요. 상황에 따라 어떤 표현이 자연스러운지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도 같은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폴란드어도 상황, 어조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하거든요. 언어를 비교하며 공부하는 즐거움이 커요."
파트리시아는 농사일을 참 잘 한다. 지난해에도 잘했는데, 1년 동안 런던에서 다양한 일을 해서인지 더 일머리가 늘었다. 한번은 완두콩을 같이 수확했는데, 같은 시간 동안 나보다도 더 많이 수확해서 깜짝 놀랐다.
"한국 여행하면서 제일 놀랐던 것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안전하다는 것이에요. 런던에서는 밤에 여자 혼자 거리를 걷는 것은 상상도 못하거든요."
파트리시아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폴란드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더 공부하고 여행도 많이 하고 싶다고. 일단 지금보다 10배 더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도록 공부해서 내년에 또 농장에 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트리시아와 한국말로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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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랄리는 벌써 5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어 한국말을 잘한다. 유기농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농사 공부를 하고 있다. |
| ⓒ 조계환 |
"2017년 처음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우연히 한국에 대한 영상을 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틀만에 한글을 다 공부했고, 2018년 봄 한국을 여행하며 간판들을 읽고 다니다 보니 한국어 실력이 늘었습니다."
코랄리는 오래 한국 생활을 한 만큼, 한국말을 꽤 잘한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다시 농장에 찾아왔는데, 1년 동안 한국의 여러 농장에서 일을 하고, 육아 도우미 등 다양한 일들을 거치면서 한국말도 많이 늘었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시험을 위해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 아니고,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농촌에 머물면서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코랄리 역시 긴 하루를 마친 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말이 좋다고 했다. "화이팅!(영어지만 한국에만 있는 표현)"이나 "힘내세요"라는 말도 좋아한다. 이런 말들은 영어로 번역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두 전달하기는 어려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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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늘을 수확했다. 올해 봄 날씨가 좋아서 마늘이 크게 잘 자랐다. |
| ⓒ 조계환 |
"한국에서 처음으로 농사일을 해 봤는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보다 훨씬 저한테 잘 맞았어요. 한국에서 내년 봄까지 여러 농장에서 자원 봉사를 한 뒤에 내년에는 캐나다로 돌아가 농부가 되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캐나다에 돌아가 유기농 농부가 되고 싶다는 코랄리에게 배추와 무, 마늘, 양파 농사를 추천했다. 요즘 캐나다에서도 김치가 무척 인기가 있다고 한다. 코랄리가 캐나다에서 멋진 농부가 되어 김치도 만들고 한국 문화도 즐기며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농장에 생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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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이 되면서 농장 곳곳이 짙녹색으로 변해간다. 카를라, 파트리시아, 코랄리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작물이 쑥쑥 커가고 있다. |
| ⓒ 조계환 |
오늘은 어떤 친구가 왜 '한째, 둘째'라고 하지 않고 '첫째, 둘째'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턱 막혔다. 많이 생각해본 뒤 한참 뒤에야 대답해줄 수 있었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어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관심을 갖고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외국인 친구들 덕분에 우리말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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