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지 말고 "거제 야호"…90년대 휩쓸었던 갸루가 돌아왔다 [日요일日문화]
패션·라이프스타일 등 묶어 부르는 하위문화
레트로붐 맞춰 韓日 양국 유행
"거제, 야호~"
요즘 일본 관광을 가서 갸루 메이크업을 받거나 갸루들의 옷차림을 따라 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등, 갸루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갸루는 아마 KBS의 개그콘서트에 나오던 '갸루상'일 건데요. 갸루에도 갸루상같은 갸루부터 아이돌 같은 갸루까지 많은 종류가 있답니다. 이번 주는 일본의 갸루문화에 대해 들려드릴게요.

갸루는 원래 '걸(girl)'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했습니다. 1980년대 버블경제 시절 일본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는 디스코장에서 높은 힐을 신고 바디콘을 입고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죠. 이 시기를 상징하는 젊은 여성들을 '이케이케 갸루(イケイケギャル)'라고 불렀습니다. 소위 말하면 경제 호황 속에서 화려한 소비와 유흥을 즐기던 '잘나가는 언니'와 같은 단어죠.
버블경제가 붕괴한 뒤, 우리가 아는 지금의 형태의 갸루가 1990년대 도쿄 시부야를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금발 염색, 짙은 화장, 교복을 변형한 패션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이 차림의 선구자는 가수 아무로 나미에였는데요. 갈색 머리, 태닝 피부, 미니스커트, 부츠 스타일을 따라 한 '아무라(アムラ?) 열풍'이 불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유로 비트 음악에 맞춰 춤추는 '파라파라 댄스'도 유행하기 시작하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도쿄 시부야109는 갸루 문화의 성지로 자리 잡게 됩니다. 당시 인기 있는 갸루 점원이 입은 옷은 전부 동날 정도였고, 갸루 전문 잡지인 'egg' 등은 거의 필독서였죠. 눈을 과장되게 크게 만드는 즉석 사진 프리쿠라, 다마고치 등도 가루들의 소비를 통해 전국적인 유행으로 번지게 됩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는 얼굴을 검게 태운 '강구로', 그리고 이를 더 과장해 눈을 흰색 아이라인으로 마구 칠한 '야맘바' 갸루가 등장하며 갸루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 대표적인 하위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개그 프로그램의 '갸루상'의 이미지와 비슷한데요. 이때부터 갸루의 피부는 점점 더 까맣게, 옷차림새는 더더욱 난해하게 변해가는 듯했으나, 갸루 문화에도 한 차례 혁명이 일어납니다. 바로 2000년대 등장한, 아무로 나미에를 뒤이을 제2의 갸루, 가수 하마사키 아유미죠.

2000년대에 들어서자 제2의 갸루 카리스마 '하마사키 아유미'의 대히트로 인해 하얀 피부와 탈색한 금발이 갸루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으며, 그간 태닝에 긴 속눈썹 등을 고수하던 어두운 스타일과 전혀 다른 밝은 스타일의 '시로갸루(白ギャル)'가 탄생했습니다. 이때부터 갸루 문화는 거대한 소비 시장이 됐는데요. 갸루 잡지 모델이 착용한 의류와 액세서리는 즉시 품절됐고, 갸루 추종자들이 하마사키 아유미의 앨범 판매량을 대폭 끌어올렸죠. 2010년 기준 갸루 관련 시장 규모가 9000억엔(8조5824억원)을 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갸루들이 쓰는 말투인 '야호', '초베리바(超 베리 배드·매우 별로다를 뜻하는 말)' 등은 이른바 '갸루어'로 불리며 같은 문화 추종자들의 결속감을 높였습니다. 일본 언어학자 중에서는 이 갸루어를 아예 '시부야 사투리'의 일환으로 보는 사람도 있답니다.
레트로에 부활한 갸루…누구나 갸루가 될 수 있다하지만 201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집니다. 바로 우리나라 K-POP과 한국식 '얼짱' 메이크업이 건너가면서 점차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죠. 그렇게 전통적인 갸루 문화가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갸루 문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대표 잡지 'egg'도 2014년 휴간에 들어가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들어 갸루 문화가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공통으로 관측되는 현상인데요. 필름 카메라, 옛날 디지털카메라, 루즈삭스 등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문화를 그리워하는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갸루도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는 Y2K 패션, 한국식 메이크업을 섞은 것을 레이와 시대에 등장한 갸루라며 '레이와 갸루'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해요.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최근 갸루를 단순한 패션을 넘어, 삶의 자세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뚜렷한 주관, 솔직함, 긍정적인 사고가 바로 '갸루 마인드'라고 해요. 심지어 최근에는 갸루 문화 단체 'CGO닷컴'이 생겼는데요. 최고경영자를 뜻하는 'CEO'를 갸루로 대체해 만든 단어입니다. 이들은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회의 등에 파견돼 조직문화 혁신을 이루는 일을 맡고 있어요. 수평적인 관계에서 의견을 내도록 하는 '갸루식 브레인스토밍'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번 갸루 붐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하위문화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화장법이나 패션은 좀 달라졌어도 '눈치 안 보고 내 스타일을 고수하겠다'는 갸루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으니까요. 혹시 요즘 일이 잘 안 풀린다면, 잠시 파라파라 댄스를 춰 보는 건 어떨까요. 저도 이번 주는 '바이바이'를 뜻하는 갸루어로 인사드릴게요. 바이비(バイビ?)!
도쿄(일본)=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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