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원짜리 변호사 시키는대로”…서초동 덮친 ‘AI 가스라이팅’ [AI가 바꾼 법정]

조수빈 2026. 6.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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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밀집한 서초동 법조타운의 트렌드는 ‘AI(인공지능) 대결’이다.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 측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며 제출하는 문서들이 실은 AI로 작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어떤 변호사는 심지어 AI가 쓴 문서를 그대로 제출한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특유의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원고와 피고 측 소송대리인이 AI로 작성한 서면을 가지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다. 챗GPT

‘시대에 적응한 변호사’의 척도는 AI를 얼마나 잘 쓰는지로 바뀐지 오래다. 변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AI 추천은 단골 대화 주제다. 한 달에 10만원~15만원 가량이면 슈퍼로이어나 엘박스 등 법조인 전용 AI를 구독할 수 있고, 5~6개 AI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엔 로스쿨 단계에서부터 AI 활용법 연구 동아리를 만드는 등 대비가 치열하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관계도 급변했다. 과거엔 의뢰인이 전적으로 변호사에게 의지했다면, 지금은 의뢰인이 변호사를 테스트한다. 아니, 정확히는 AI가 변호사를 테스트한다. 법무법인 희승 소속 전희정 변호사는 최근 의뢰인으로부터 A4용지 20장에 달하는 ‘피드백’을 받았다. 전 변호사가 쓴 서면을 AI에 돌려본 의뢰인이 수정 요청을 정리해 보낸 것이다. 전 변호사는 “AI와 대화하며 의뢰인의 생각이 한쪽으로 고착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전 변호사는 “의뢰인이 원하니 수정하겠지만 제가 그 수정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고 사전 고지한 후 의뢰인의 요청을 들어줬다.

상담 중 의뢰인이 AI의 얘기를 근거로 변호사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챗GPT

서초동 변호사 조모씨도 “서면 제출 전 의뢰인에게 확인을 받는데, 변호사가 쓴 서면을 AI에 돌려본 다음 의뢰인이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며 “변호사 입장에선 참 난감하다”고 했다.

AI를 써본 의뢰인이 돌연 상담을 취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이혼 소송을 하나도 모르니 꼭 좀 도와달라”던 의뢰인이 “나 혼자하면 된다”며 하루 만에 돌아서는 경험을 했다. 변호사 상담 전 챗GPT에게 소송 절차와 쟁점을 물어봤더니 궁금한 게 모두 해결됐다는 이유였다.

변호사에게 1회 상담만 받는 의뢰인도 늘었다. AI 발전으로 나홀로 소송이 용이해져서다. 변호사 상담에서는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잡은 후, 가장 중요한 서면 작성은 AI에게 시킨다. 변호사 업계에선 “선임 안 할 게 뻔한 ‘간보기 상담’이 늘었다”는 우는 소리가 나온다.

김영희 디자이너

온라인 상에선 ‘변호사 AI 프롬프트’가 활발히 공유되기도 한다. 지난해 유튜브엔 “2만원짜리 변호사 고용하는 법”이란 제목으로 변호사GPT를 만드는 영상이 올라왔다. 생성 AI에게 ‘법률 전문가’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게 법률 용어를 풀어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AI 프롬프트에 “당신은 기업 법무 전문 변호사로,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입력하는 것도 ‘꿀팁’으로 공유된다. ‘나홀로 소송’을 준비하면서 의뢰인도 늘었다.

AI 발전으로 의뢰인을 설득하는 과정이 더 어려워졌다는 토로도 나온다. 법무법인 이별의신 소속 신현준 변호사는 “가끔 ‘AI가 맞다는데 왜 아니라고 하냐’고 변호사의 판단을 수긍 못하는 의뢰인을 만나면 곤란할 때가 있다”면서도 “AI를 활용해서 의뢰인들이 본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건 긍적적 변화라고 본다. AI 활용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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