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에 '핫플'... 왜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렸을까

전사랑 2026. 6. 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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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가의 집' 개관... '물방울 화가' 집에 가다

[전사랑 기자]

 김창열 '화가의 집'
ⓒ 전사랑
한적한 평창동 마을버스가 모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30분마다 한 대 평창동 산자락을 순회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 지하철도 없는 '험지' 동네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려 있다. 조용한 동네를 전례 없이 '핫플'로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중에서도 가장 높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김창열 '화가의 집'이 개관했기 때문이다.
1988년 건축된 후 2021년 작고할 때까지 작가가 살았던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다. 이 공간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싶어 했던 화가의 뜻에 따라 종로구가 매입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물방울>, 1998.
ⓒ 전사랑
무더운 여름 날씨에 김창열의 <물방울>을 찾아온 관람객의 얼굴에도 땀이 흘러내렸다. 차로 가는 것도,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것도, 걸어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이곳에서 작가는 '동굴 같은 작업실'로 파고들었다. 작업실을 지을 당시, 그는 건축가에게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고 동굴과도 같은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고 한다. 이른바 '산꼭대기 동굴 같은 작업실'인 셈이다.
실제로 가 보니 보통의 건축주라면 통유리로 마감했을 공간을 벽으로 막았다. 다만 작업실의 천장 작은 구멍에서 빛이 떨어지는데, 화가는 이를 "물방울에 비치는 광채 같았다"고 표현했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웅크린 생명체처럼, 김창열 화백은 가장 영롱하고 순수한 결정체, '물방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김창열 화가의 집 전시 전경
ⓒ 전사랑
그의 '물방울'은 1972년 프랑스의 마구간에서 처음 발현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로 이주해 마구간에 기거하며 살던 가난한 화가 시절, 까맣게 칠한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김창열은 50년 동안 그 물방울을 담아내 왔다. 어두운 공간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며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 작가는 어쩌면 그 결정적 순간을 작업실에서 재현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왜 '물방울'이었을까? 그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 당시, "옛날에 달마 대사는 벽만 쳐다보는 수행 끝에 득도 해탈을 했다는데, 나는 미친놈처럼 물방울 그리기로 50년을 보냈는데, 세속 욕망에 사로잡혀...."라고 말했다. 수행하듯 작업을 하는데 득도도, 해탈도 하지 못했다는 노화가의 겸손한 한탄이었다.

이처럼 그에게 물방울 그리기는 수행 과정이자 치유의 과정이었다. 전쟁으로 인간 폭력의 끝을 경험한 그는 눈앞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자신의 인생은 거저 얻은 것이라고, 그래서 결코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
 <물방울>, 1980년대
ⓒ 전사랑
희생된 자들을 위한 제사

그의 아들 김시몽은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당시 다음과 같이 썼다.

사실 아버지가 전쟁, 망명, 고통을 직접적으로 그린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작업의 리듬 속에, 붓질의 호흡 속에 분명히 남아 있다..... 거의 정화에 가까운 집요함. 그의 그림 속에는 폭력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 아래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봉인되고, 봉합되고, 중화되어 있다..... 지워지지도, 말해지지도 않는 무거운 기억처럼. 그 폭력은 오직 인내의 회화 행위를 통해 조용히 다가가며 간신히 거리 두기를 유지한다."

작가도 1960년대 초기작에 <제사>나 <상흔>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기존의 차갑고 기하학적인 추상회화에서 탈피해 전쟁의 참상을 겪은 비극적 상황을 즉흥적이고 재료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엥포르멜 양식의 회화다. 이 시대 김창열 작품을 보면 전쟁을 겪은 월남 작가의 고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제사>, 1964.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전시 전경
ⓒ 전사랑
황갈색 표면에 구멍이 뚫렸다. 마치 총알이 박힌 것처럼, 그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작가의 1960년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소리 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나에겐 뭉크의 <절규>보다 김창열의 <제사>가 더 강하게 울린다. 10대에 월남해 한국전쟁을 겪고 수많은 동료와 친구, 가족을 잃은 그는 전쟁으로 무고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캔버스에서 '제사'를 지낸다. 마치 혼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상쇄하려는 듯, 고통을 꿀꺽 삼킨 작가의 절규가 들려온다.
화가의 동생 김창활에 따르면 친척의 무덤에서 김창열 화가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울 수 있는지 모를 정도로 하루 종일 울었다 한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못다 흘린 눈물방울을 그린 것일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울어주는 사람도 없이 희생된 영혼들을 위해 그는 작품을 통해 눈물을 흘려주는 것 같다.
 <눈>, 1999.
ⓒ 전사랑
<눈>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한지를 쌓고 그 위를 눌러 물방울이 떨어진 자리를 공간적으로 표현했다. <제사>에서 표현된 거친 표면과 흘러내리는 검은 피 같은 형상과 비교하면 <눈>은 전쟁의 상처와 기억이 물방울을 거쳐 승화된 자리다. 떨쳐 낼 수 없었던 전쟁의 트라우마처럼, 고통의 흔적처럼, 보드랍게 쌓인 눈 같은 표면에 물방울의 흔적이 남았다. 상처는 아물었으나 '흔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피는 물이 되었고 물은 공기가 되었다.

"내 그림의 주제가 수양이지 뭐"

김창열은 '어머니의 자궁 같은' 작업실에서 철저한 루틴을 지키며 수도승처럼 생활했다. 2021년 92세에 나이에 작고한 화가의 이 작업실과 프랑스를 오가며 만들어 낸 작품들은 오랜 정화작용을 거쳐 떨어뜨린 정수의 물방울 같다.
 김창열 화가의 서재. 책상엔 노자의 <도덕경>이 놓여 있다.
ⓒ 전사랑
화가의 집에서 내려오는 길, 동행인이 물었다. "왜 예술을 수행처럼 하는 걸까." 아들인 김오안 감독은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서 그 답을 찾았다.
아버지는 전쟁의 외상을 평생 지고 살아왔다. 또한 자신의 화실에서 마치 연금술사처럼.... 그가 본 모든 흐르는 피를 마침내 순수한 물의 원천으로 변형하기까지 평생 일했다.

예술이란 한 사람의 영혼을 담는 것과도 같아서 자신 외의 것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를 가장 순수한 물방울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지우고 비워내는" 수양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속 작업실에서 묵묵히 물방울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에서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곰에서 인간으로 변화한 단군신화의 어느 장면이 겹쳐 보인다. 피에서부터 정제해 낸 김창열의 물방울이 보는 이의 가슴에도 뚝, 뚝. 떨어지는 이유다.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
김창열 화가의 집
8월 23일까지
일반 5000원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편, <김창열>, 국립현대미술관, 2025.
김오안·브리짓 부이오 감독,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미디어랩, 2022.

https://youtu.be/0JoXcWLuCu0?si=5ttdsgFv1eyaHWMF
https://www.jongno.go.kr/mayor/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1618&menuId=388338&nttId=250542
https://www.wkorea.com/2021/01/21/김창열에-관한-사적이고-공적인-기억/?ut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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