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에 '핫플'... 왜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렸을까
[전사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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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열 '화가의 집'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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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방울>, 1998.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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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열 화가의 집 전시 전경 |
| ⓒ 전사랑 |
왜 '물방울'이었을까? 그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 당시, "옛날에 달마 대사는 벽만 쳐다보는 수행 끝에 득도 해탈을 했다는데, 나는 미친놈처럼 물방울 그리기로 50년을 보냈는데, 세속 욕망에 사로잡혀...."라고 말했다. 수행하듯 작업을 하는데 득도도, 해탈도 하지 못했다는 노화가의 겸손한 한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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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방울>, 1980년대 |
| ⓒ 전사랑 |
그의 아들 김시몽은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당시 다음과 같이 썼다.
사실 아버지가 전쟁, 망명, 고통을 직접적으로 그린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작업의 리듬 속에, 붓질의 호흡 속에 분명히 남아 있다..... 거의 정화에 가까운 집요함. 그의 그림 속에는 폭력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 아래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봉인되고, 봉합되고, 중화되어 있다..... 지워지지도, 말해지지도 않는 무거운 기억처럼. 그 폭력은 오직 인내의 회화 행위를 통해 조용히 다가가며 간신히 거리 두기를 유지한다."
작가도 1960년대 초기작에 <제사>나 <상흔>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기존의 차갑고 기하학적인 추상회화에서 탈피해 전쟁의 참상을 겪은 비극적 상황을 즉흥적이고 재료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엥포르멜 양식의 회화다. 이 시대 김창열 작품을 보면 전쟁을 겪은 월남 작가의 고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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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사>, 1964.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전시 전경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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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1999. |
| ⓒ 전사랑 |
"내 그림의 주제가 수양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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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열 화가의 서재. 책상엔 노자의 <도덕경>이 놓여 있다. |
| ⓒ 전사랑 |
아버지는 전쟁의 외상을 평생 지고 살아왔다. 또한 자신의 화실에서 마치 연금술사처럼.... 그가 본 모든 흐르는 피를 마침내 순수한 물의 원천으로 변형하기까지 평생 일했다.
예술이란 한 사람의 영혼을 담는 것과도 같아서 자신 외의 것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를 가장 순수한 물방울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지우고 비워내는" 수양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속 작업실에서 묵묵히 물방울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에서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곰에서 인간으로 변화한 단군신화의 어느 장면이 겹쳐 보인다. 피에서부터 정제해 낸 김창열의 물방울이 보는 이의 가슴에도 뚝, 뚝. 떨어지는 이유다.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
김창열 화가의 집
8월 23일까지
일반 5000원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편, <김창열>, 국립현대미술관, 2025.
김오안·브리짓 부이오 감독,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미디어랩, 2022.
https://youtu.be/0JoXcWLuCu0?si=5ttdsgFv1eyaHWMF
https://www.jongno.go.kr/mayor/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1618&menuId=388338&nttId=250542
https://www.wkorea.com/2021/01/21/김창열에-관한-사적이고-공적인-기억/?ut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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