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동안 아내로부터 들은 가장 아픈 말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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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여 일 동안 아내가 키운 암소 Chia Pet(치아 페드). 아내는 친근한 고향의 소 테라코타를 사다가 치아시드(Chia Seed)를 발아시켜 소의 몸에 붙여 하루에 몇 번씩 물을 주어 초록색 털을 키웠다. 녹색 생명을 키우는 것으로 정신과 육체의 불화를 화해보려 애쓴 듯하다. |
| ⓒ 이안수 |
전주 지선이 길을 가로막는다. 자칫 눈이 어두운 사람은 그 쇠줄에 얼굴을 부딪히기 십상이다. 발 아래에는 하수구나 통신구 맨홀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뚜껑이 없거나 깨진 경우이다.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하면서 규칙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그 구멍에 빠지면 골절을 피하기 어렵다. 가게나 주택의 차량 진입을 위해 인도의 단차를 절개해서 임의로 낮춘 곳에서는 계단을 헛디딘 듯 넘어지기 일쑤다. 이곳에서 인도를 걷는 일이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늘 앞서 걷고 아내가 뒤따라오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내를 앞세운다. 위험한 길에서 뒤따라오다 사고가 나면 내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구나 싶다.
늙음의 자각
작년부터 급격한 몸의 변화를 실감한다. 노화다. 몸은 점진적으로 늙어가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어느 한 기능이 소실되었을 때 비로소 노화가 눈앞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겨우 버티던 의치가 세 차례에 걸쳐 3~4개씩 빠져나가 씹는 힘을 잃었다. 그 결과는 체중 감량이었다. 올해 초부터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글씨를 읽는 일이 버거워졌다. 이제는 마켓의 가격표 숫자조차 식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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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악사카의 새벽. 새벽은 여전히 푸르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그 시간, 늙어가는 몸을 안고 다시 정신을 깨운다. |
| ⓒ 이안수 |
정신과 육체의 불화
정신을 담는 집이 몸이라면 그 집이 감옥이 아니라 여전히 안온한 가정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들은 모두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젊은 시절 남용과 만용이 그 출발점이었다. 길을 걸을 때 아내를 뒤따라오게 하던 습관을 바꿔 앞서 걷도록 한 것도, 내 몸의 불편함을 겪으면서 생긴 인식 변화였다.
몇 주 전, 글을 쓰고 있는 호스텔의 공유 업무 공간으로 와서 아내가 말했다.
"일어나 보세요!" 아침 명상을 마치고 내려온 아내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영문을 몰라 일어서는 대신 아내의 눈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매일 당신과 허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제야 부부 사이의 허그가 오래 잊혀 있었음을 알았다. 몇 해 전 내가 죽거나 아내가 먼저 떠난다면 가장 후회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떠오른 것이 '허그'와 '칭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실천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안고 함께 잠자리에 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늦은 밤까지 공부를 이유로 아내를 홀로 잠들게 했던 것이 일상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그제 새벽, 아내와 함께 눈을 떴을 때 아내가 말했다.
"내가 아프면 나를 한국으로 데려다 주세요."
아내와 함께한 47년 동안 내가 들은 가장 아픈 말이었다. 나는 내 몸이 늙고 있는 것만 알았지, 아내의 몸이 노화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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