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붙은 ㄱ, ㄴ, ㄷ... 한글로 어떻게 노냐면요

김슬옹 2026. 6. 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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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글노리(놀이)'를 펼치는 한글 디자이너 한재준 작가

[김슬옹 기자]

지하철역 통로 벽에, 숲길 들머리에 자석 한글 낱자들이 붙어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ㄱ, ㄷ, ㅇ, ㅏ, ㅡ, ㅣ 같은 낱자를 이리저리 옮겨 제 이름을 만들어 보고는 웃는다. 이른바 '한글노리(한글놀이)'이다. 이 거리 미술의 주인공이 바로 1세대 한글 디자이너로 불리는 한재준 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1980년대 후반 공병우 박사의 한글문화원에서 한글 기계화와 디자인을 익혔고, 공병우 박사와 자신의 성을 딴 '공한체' 등의 활자꼴을 개발했으며,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한글 주제관을 총괄한 바 있다. 2024년 정년퇴임 뒤에는 아예 거리로 나섰다. 그를 지난 6일 인사동 전통 찻집에서 만나 '한글노리'로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꿈을 들었다.'한글노리'에서 '노리'는 '놀이'에서 왔지만 일종의 고유 브랜드 차원에서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라고 한다.

"세계 대도시서 성공할 자신있습니다"
▲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한글노리’ 시범을 보이고 있는 한재준 작가 @김슬옹 
ⓒ 김슬옹
- '한글노리'를 언제부터 구상하고 시작하신 건가요.
"결정적인 계기는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였어요. 그런데 그 바로 1년 전인 2008년에 '한글 스승전'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 나신 날이자 스승의 날의 뜻을 담은 전시였지요. 따지자면 한글 스승전이 먼저고,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꽃을 피운 셈입니다."

- 한글 스승전은 처음부터 직접 기획하고 전시까지 다 하신 거지요.
"기획자가 한 사람 더 있어요. 권혁수 선생과 공동 기획을 했고, 저는 총감독 역할을 맡았습니다. 배경을 말씀드리면, 파주출판도시의 이기웅 이사장님이 저를 찾으셨어요. 2008년에 세계 출판인 대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데, 세계 출판인들이 한국에 오니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을 한글로 확 뒤덮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자랑할 건 한글, 한글밖에 없다'며 도와달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예산을 여쭤보니 예상했던 것의 절반도 안됐어요. 정중히 거절했지요. 결국 나중에 그 이상을 도와주셨고, 회사를 가진 김영철 선생도 기꺼이 함께해 줬습니다. 돈은 못 벌었지만(웃음), 그렇게 전시가 이루어졌습니다."

- 그 전시로 '뜨셨지요'.
"2008년 한글 스승전 덕분에 제가 떴지요(웃음).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간부들을 데리고 전시장에 오셨어요. 70평 정도밖에 안 되는 굉장히 작은 전시였는데, 제가 안내를 해 드렸더니 둘러보시면서 '아, 여기 다 있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려니까 못 한다고? 공무원들이' 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무슨 말씀인지 감을 못 잡았어요. 공들여 만든 전시 동영상까지 보시더니 '여기 다 있는데 못 한다고?' 하시면서 저를 보고 '올해 한글날 행사도 도와주시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장관님, 이 전시는 하나의 모형에 불과합니다. 예산만 제대로 투입하면 이 콘텐츠를 키워서 뉴욕, 파리, 도쿄, 베를린 같은 세계 대도시에 가져가도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올해 한글날부터 좀 도와주면 내가 한 교수 해 달라는 거 밀어드리겠다' 하셨고, 그렇게 그해 한글날 경복궁 수정전에서 전시하게 됐습니다."

- 수정전이면 집현전 터 아닙니까. 거기가 처음이었나요.
"수정전 전시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수정전 앞마당에서 '한글 자석 붙이기'를 했는데, 한글놀이의 시초라고 하면 그게 시초인 셈이지요."

- 그러고 나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꽃을 피우셨고요.
"광주는 세계에 알려진 비엔날레니까요. 그때 외국 디자이너가 자기 나라로 초청하겠다고까지 했어요. 말하자면 그 무렵부터 '한글의 진짜 가치를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파주에서 전시할 때 훈민정음 해례본을 나무판에 프린팅해서 걸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선생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지금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대로 본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우리는 국보니 세계기록유산이라고 말만 하지, 제대로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 가치를 제가 그때 절감한 겁니다. 이기웅 이사장님께도 그랬어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한글로 뒤덮을 사람은 저 말고도 열 명은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의 본질적인 가치를 알리는 일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본질 가치를 끌어내자, 그게 제 출발점이었습니다."

- 지금 거리에서, 지하철역에서 하시는 한글노리는 본격적으로 언제부터인가요?
"제가 2024년에 정년퇴임을 했으니 그 1년 전, 2023년부터 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무렵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예사가 '교수님, 청주에 직지가 있는 거 아시죠?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한글 숲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모시고 싶습니다' 하는 거예요. 언제 하느냐 물으니 '이번 한글날 시기에 하려고 합니다'라는데, 그게 7월 말이었어요. 두 달 만에 준비하라는 얘기잖아요.

저는 사업체도 직원도 없는 사람이라 그런 건 못 합니다.그렇게 말하려는데 아이디어 하나가 팍 스쳐 지나갔어요. '초정행궁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겠다. 좋은 기회다.' 세종대왕이 청주 초정에 머물며 요양하신 그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고민 끝에 하기로 했지요. 전시 자금은, 지원금을 빼고도 2천만 원 이상을 썼어요. 전시란 성공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니까요.(웃음) 거기서 벽에 한글 낱자를 하나하나 다 붙이며 놀았는데, 그게 자성이 있는 활자, 곧 '자력 활자'입니다. 청주는 금속활자 직지의 고장이잖아요. 지금은 디지털 폰트, 디지털 활자 시대인데, 저는 자력을 활용한 활자를 만든 겁니다. 그것도 자모 수를 확 줄여서요. 세종의 최소주의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자모를 더 줄여 보자, 최소주의 한글을 강조해야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 것 아니냐' 한 거지요."

- 지하철에서는 청구역에서 처음 하셨지요. 지나다니는 사람들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요.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데 청구역 작업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하면서 무너졌습니다(웃음). 다 제 손으로 하니까요. 나중에 철수할 때는 아내가 와서 도와줬어요.정년퇴직했으니 '광야로 나가자, 거리 미술을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청구역은 집에서 제일 가까우니 실현 가능성이 높았고, '여기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거지요. 지하 공간을 꾸리는 일이 다 스트레스더라고요. 그렇게 지하에서 1년 반을 하다가 지금은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요즘은 안산자락길 숲길에서도 합니다. 너무 좋아요. 공기도 좋고, 작업하다 보면 새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가고요. 아직은 사람들이 이게 뭔지 잘 몰라요(웃음)."

- 거리의 한글노리를 보는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자기 이름을 많이 만들어 보더라고요. 재밌다는 반응이 많고, 어른들은 '어렵다'고도 해요. 자모가 다 갖춰져 있는 게 아니라 줄여 놓았으니까요.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가 어디서든 시범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그걸 보고 힌트를 얻어서 '아, 저거구나' 하지요. 그래서 늘 가지고 다니는 자석 한글이 있습니다. 시간만 되면 이걸 꺼내 놓고 함께 놀자는 거지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지금 하고 있는 남산자락숲길 한글노리를 이어가면서, 더 많은 사람이 한글노리를 즐기게 하고 싶습니다. 페이스북 자기소개도 다 바꿨어요. '한글발전소에서 일하는 한글누리꾼 한재준입니다'라고요. '한글놀이꾼'으로 할까 하다가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누리꾼'으로 했지요. 한글로 누리를, 세상을 만들고 싶으니까요.제가 '한글발전소'라고 하니까 시인 친구는 <시 장난(시장놀이)> 시집을 냈고, 또 한 친구는 저를 직접 찾아와 '야, 한재준. 한글발전소 얘기 재밌더라. 나는 단청발전소라고 하고 싶은데 발전소를 써도 되냐' 하더군요. 쓰라고 했지요. 그래서 단청발전소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다 그런 발전소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내내 드는 생각은 '한글은 신바람'이라는 생각이었다.
▲ 청구역 한글노리, 한재준 페이스북에서((2025.5.15.) 
ⓒ 한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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