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이 와르르, 이 공무원이 탈세꾼 돈줄 말린 방법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6. 6. 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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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영화 <언터처블>로 본 영화 맥주 인문학

[윤한샘 기자]

"금주법을 폐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땐 어떻게 하시겠어요?"

길 건너에서 뛰어온 기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깐 멈칫하던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답한다.

"그땐, 한 잔 해야지요."

말끔한 정장, 훤칠한 키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의 이름은 엘리엇 네스. 그는 시카고 마피아의 대부,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해 재무부 금주국에서 파견된 연방조사관이다. 갑자기 들은 금주법 폐지 소문에 알 카포네를 체포하기 위해 보낸 치열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 탓일까. 그의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허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임무를 완수하고 가족의 품으로 향하는 네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경쾌했다.

1987년 개봉한 <언터처블>(The Untouchable)은 1930년 금주법 시대 하에 밀주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알 카포네와 그를 잡기 위해 투입된 네스의 활약을 다룬 갱스터 범죄 영화다. <미션 임파서블>의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연출에 케빈 코스트너(엘리엇 네스 역), 로버트 드니로(알 카포네 역), 숀 코네리(짐 말론), 앤디 가르시아(조지 스톤) 같은 전설적인 배우들이 등장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는 등,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이었던 엘리엇 네스의 자서전과 1960년대 TV 시리즈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총격전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장면에도 특수 수사팀 '언터처블'을 중심으로 뭉친 남자들의 브로맨스를 경쾌하게 풀어내며 당시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언터처블> 포스터
ⓒ UIP코리아
니어비어, 불법과 합법 사이

금주법 시절 시카고는 마피아들이 판치는 도시였다. 이들은 밀주를 판매하면서 지역을 장악하고 세력을 넓혀갔다. 많은 사람이 '금주법'하면 위스키를 떠올리지만 그 당시 밀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술은 맥주였다.

위스키는 맥주에 비해 단가가 높았으나 회전율이 떨어졌다. 반면 맥주는 부피가 크고 회전율이 좋아 높은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지역 펍에 독점적으로 맥주를 유통하면 정기적으로 상권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니어비어(near beer)라는 0.5% 미만의 알코올을 가진 맥주의 판매와 음용은 허가했다. 맥주에 열을 가해 알코올만 증발 시켜 만드는 니어비어는 지금의 무알콜 맥주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안호이저-부시의 베보, 밀러의 비보, 슐리츠의 파모 등, 다양한 니어비어가 출시되었지만 이것만으로 양조장을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양조 비용은 그대로지만, 맥주에 비해 가격이 낮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게다가 마피아들이 불법 맥주들을 제조 유통하면서, 니어비어는 펍을 유지하기 위한 간판으로 전락했다. 불법 맥주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유통되었다. 니어비어를 만든다는 명목 하에 양조한 맥주를 뒤로 빼돌리거나, 아니면 니어비어에 주사기로 알코올을 넣은, 소위 니들 비어(needle beer)를 판매했다.

불법 맥주를 만들지 못했던 안호이저-부시나 밀러 같은 양조장들은 맥주 사업을 축소하고 유제품, 아이스크림, 베이킹 사업 등으로 연명했다. 그나마 자본이 있었던 대형 양조장들은 어찌어찌 버텼지만, 이도 저도 못하는 수 천 개의 중소형 양조장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영화는 당시 시카고에서 밀주가 어떻게 유통되었는지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초반, 한 여자 아이가 손에 무언가 들고 펍으로 들어온다. 아이의 손에 있는 건, '뚜껑 달린 그릇'이다.

그라울러라 부르는 이 용기는 펍이나 양조장에서 당일 마실 맥주를 담는 데 사용되었다.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아이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맥주 심부름을 시키는 이 장면을 통해 맥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판매되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알 카포네 부하들은 이 펍에 자신들의 맥주를 판매하기 위해 들렀지만, 주인은 품질 문제로 거부한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갱들은 맥주 심부름을 온 아이와 함께 펍을 폭파시켜 버리는 잔인무도함을 보여주었다. 아니, 도대체 맥주가 뭐라고.

시카고 맥주전쟁과 '언터처블'의 탄생

1920년대 시카고는 밀주를 자금줄로 삼은 갱들의 도시였다. 이탈리아계 조니 토리오의 시카고 아웃핏과 아일랜드계 딘 오배니언의 노스사이드 갱이 도시를 남북으로 양분했고, 그 다툼의 중심에는 늘 맥주가 있었다. 불법 맥주의 유통권이 곧 세력이자 돈이었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로 한 신사협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오배니언이 토리오의 구역을 넘보다, 끝내 배신으로 그를 밀주 제조 혐의에 빠뜨렸다. 보복은 보복을 불렀다. 1924년 오배니언이 살해당하고, 이듬해 토리오마저 기습을 당해 권좌에서 물러난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건 겨우 스물여섯의 알 카포네였다. 시카고 아웃핏의 절대 권력자 뒤에서, 맥주는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1929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경찰로 위장한 자들이 노스사이드 갱의 창고를 덮쳐 안의 모든 사람을 기관총으로 학살했다. 일명 '성 발렌타인 학살'은 벅스 모란을 노린 암살이었으나, 그는 늦게 도착한 덕에 화를 면했다.

충격적인 건 이 학살에도 카포네가 끝내 체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연루 증거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 대낮의 학살에 분노한 연방 정부는 재무부 금주국 수사관 엘리엇 네스를 시카고로 파견한다.
 영화 <언터처블> 스틸컷
ⓒ UIP코리아
영화 <언터처블>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경찰과 언론까지 돈으로 매수한 카포네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그런 네스 곁에, 더러운 돈을 거부해 은퇴할 나이까지 순찰이나 도는 정직한 경찰 짐 말론이 다가온다.

말론의 조언으로 영입한 젊은 명사수 조지 스톤, 재무부가 파견한 회계사 오스카 월러스까지 합류하며, 그렇게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한 정예팀 '언터처블'이 탄생한다.

"그들이 칼을 뽑으면, 우리는 총을 뽑아야 하네. 그들이 우리 조직원 한 명을 병원에 보내면, 우리는 그들 조직원 한 명을 영안실로 보내야지. 그게 바로 시카고의 방식(The Chicago Way)일세!"

시카고 유니언 스테이션

영화와 달리 실제 역사에서 네스를 뺀 세 사람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다. 실제 네스 팀의 임무는 카포네의 양조장을 부숴 밀주에서 나오는 돈줄을 말리는 것이었다. 그는 첫 6개월간 양조장 6곳과 증류소 19곳을 타격했고, 마지막까지 시카고 아웃핏에 약 900만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그러나 카포네를 감옥에 보낸 건 금주법이 아니었다. 1931년 네스가 조직원 68명과 함께 그를 금주법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재판은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증거는 교묘하게 은폐되었고, 매수된 경찰과 공무원이 뒤를 봐준 덕택이었다. 결정적으로 카포네의 발목을 잡은 건 회계 장부였다.

연방정부는 투 트랙으로 움직였다. 네스가 양조장을 부숴 물리적 타격을 주는 동안, IRS(미국 연방 국세청)의 프랭크 윌슨은 자금 흐름을 추적해 탈세를 입증했다. 맥주가 키운 제국을, 맥주가 남긴 장부가 무너뜨린 셈이었다.

영화도 이 사실을 비튼다. 재무부가 보낸 회계사 오스카 월러스가 장부로 탈세 혐의를 잡지만, 그는 암살 당하고 만다. 위기의 순간, 말론은 카포네의 회계사가 밤 12시 기차로 마이애미로 달아난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를 법정에 세우면 카포네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었다. 카포네는 말론마저 살해하지만, 말론은 죽기 직전 그 정보를 가까스로 네스에게 넘긴다.

그렇게 클라이맥스, '유니언 스테이션'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회계사를 기다리던 네스와 조지, 그런데 그 앞에 한 여인이 갓난아기의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오르던 와중, 총격전이 터져버린다.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유모차. 네스가 갱과 싸우랴 유모차를 잡으랴 정신없는 순간, 번개같이 나타난 조지가 마지막 계단에서 유모차를 받치고, 네스의 "쏴(Take him)" 한마디에 회계사는 언터처블의 손에 들어온다.

이 장면은 1925년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학살'을 오마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드 팔마 감독은 유모차 속 아기를 버리지 않았다. 포템킨의 아기가 생사를 알 수 없는 비극으로 남는다면, 언터처블의 아기는 두 남자의 만화 같은 활약 속에 방긋 웃는다. 안도와 희망을 품은 채.
 전함 포템킨 오데사의 계단
ⓒ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처럼 카포네는 1931년 탈세로 11년 형을 받았고, 1934년 알카트라즈로 이감된 뒤 매독 후유증으로 48세에 비참하게 죽었다. 아이러니하게 네스의 말년도 좋지 못했다. 영웅으로 떠올랐던 그는 1942년 음주운전 뺑소니로 추락했고, 빚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유일한 희망이던 회고록 <언터처블>의 출간 직전, 195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4세. 책은 사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평생 정의를 구현한 영웅이었으나, 정작 제 삶은 구원하지 못한 쓸쓸한 말년이었다.

"맥주 한 잔 마시기 좋은 날"

1932년 금주법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운 루스벨트가 당선되었다. 1933년 4월 7일 0시. 금주법이 종료 되자 양조장과 펍 앞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펍은 사이렌을 울리며 맥주 판매를 시작했고, 한 손에 맥주를 든 사람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올드 랭 사인'을 합창했다.

"지금이야말로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좋은 때인 것 같군요." - 루스벨트, 금주법 폐지 서명을 하며

백악관에도 맥주가 배달되었다. 워싱턴 DC 양조사들은 루스벨트에게 감사의 맥주를 보냈으며 안호이져-부시도 첫 버드와이저를 마차를 통해 백악관으로 전달했다. 그 날은 금주와 대공황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미국 사회가 맥주 한 잔으로 일상과 웃음을 찾은 날이었다.

금주의 반대말은 맥주였다. 탐욕과 금욕, 극단은 늘 무언가를 '손댈 수 없게' 만들기 마련이다. 유일하게 '손댈 수 없는' 건, 하루를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시간이 아닐까? 우리 인생과 맥주 사이의 중용을 위해, 건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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