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어가요" 투표소 문턱서 지워진 사람들, 여기 있습니다

박혜현 2026. 6. 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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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제약에 무효표 던지고, 투표 포기까지... 장애인 유권자들도 '문턱 없는' 참정권을 누릴 수 있어야

[박혜현 기자]

▲ 투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잠실본동 제4,5,6투표소에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생님, 저도 어른이 되면 진짜 투표할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소중한 한 표를 갖는단다."

선거철이 되면 나의 교실은 작은 선거관리위원회로 변한다. 발달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가르친다. 모의 투표용지를 만들어 인쇄하고, 정당의 마크와 후보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법을 연습한다. 기표소 모형 안에 들어가 도장을 꾹 찍고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네가 행사할 그 소중한 한 표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나는 귀가 닳도록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그 수업을 들으며 자신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될 날을 꿈꾸었다.

하지만 교실 문을 열고 나간 현실은 내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너무나 냉혹한 성적표를 내밀곤 한다. 내가 교실에서 그토록 공들여 쌓아 올린 사회통합의 가치가, 선거라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의 현장에서 단 몇 분 만에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집에서 거소투표나 하지, 왜 굳이 여기까지 왔어?"

투표소 문턱을 넘어서는, 장애인 유권자에게 날아드는 이 차가운 한마디는 비극의 서막에 불과하다. 선거 때마다 전국 각지의 투표소에서는 내 제자들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활동지원사의 손을 잡고 기표소로 들어가려다 앞을 막아서는 선거사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발달장애인 유권자는 동반 입실이 안 됩니다."
"신체 거동이 불편한 분만 도와드릴 수 있어요."

법원의 판결과 선관위의 지침에 발달장애인 역시 투표 보조를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현장에서는 무차별적인 거부 사태가 일어난다. 낯선 환경과 사무원의 고압적인 태도에 심한 불안감을 느껴 결국 투표를 포기하거나, 항의의 표시로 아무것도 찍지 않은 무효표를 투표함에 던지고 나와야 했던 당사자들의 눈물 섞인 증언은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단골 뉴스로 등장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비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한 투표소 안내문이 하나 잘못 배송되거나 행정 실수가 생겨도, 온 언론과 정치권은 일제히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렸다"며 난리를 친다. 그러나 수많은 장애인 유권자의 한 표가 현장의 무지와 편견으로 허무하게 무효가 되고 지워질 때, 우리 사회의 분노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똑같은 무게를 지닌 국민의 권리이건만, 누구의 권리 침해는 중대한 국가적 사건이 되고 누구의 침해는 사소한 해프닝으로 취급받는다.

나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휠체어를 탄 내가 투표소에 들어설 때의 풍경은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 임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고, 선거사무원들은 내 휠체어를 보며 자연스럽게 활동지원사의 동행을 안내한다. 신체상의 장애가 눈에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신체장애인을 향한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마주했을 때 발생한다. 선거사무원들의 눈에 발달장애인은 사지(四肢)가 멀쩡해 보이는, 그래서 타인의 조력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휠체어나 흰 지팡이처럼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도구가 없으면 장애를 장애로 인정하지 않거나, 지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얕은 인식.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가진 '편향된 장애 인식'의 본질이다.

장애인식개선은 민주주의의 기본값이다
▲ 무효 투표 집계하는 개표사무원 6·3지방선거일인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이 무효 투표를 집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겉으로는 평등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장애의 유형과 경중을 제멋대로 가르며 눈에 보이는 장애인에게만 선심 쓰듯 권리를 허락하는 잔인한 선긋기다. 글을 읽기 힘든 발달장애 유권자를 위해 후보자의 사진이나 정당 마크를 넣은 '그림 투표용지'를 도입해 달라는 오랜 요구에, 정부와 관계 기관들이 그동안 행정적 편의와 비용을 핑계 대며 유보하는 태도 역시 이러한 편향된 시선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이 모든 사태의 뿌리에는 우리 사회의 편향된 장애 인식 수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교육과 강연을 통해 전해야 하는 장애인식개선은 단순히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자"거나 "휠체어가 지나갈 때 길을 비켜주자"는 수준의 시혜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애는 고정된 하나의 모습이 아니며, 개인의 신체적 특징과 사회적 장벽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눈에 보이는 휠체어의 바퀴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지와 소통의 영역에서도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진짜 인식개선의 핵심이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은 시혜나 동정을 베풀기 위한 교양 과목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한 '생존의 교육'이자 '민주주의의 기본값'이다. 선거 현장의 공무원들과 사무원들이 단 한 시간만이라도 올바른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받고 장애의 다양성을 배웠다면, 투표 보조인이라는 지지대를 꺾어버리는 참정권 침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편리함과 효율성, 혹은 공급자의 시선에 갇혀 제도를 운영할 때 어떤 이들의 기본권이 소리 없이 지워지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휠체어를 탄 나의 한 표도, 발달장애를 가진 내 제자의 한 표도 그 무게는 단 1그램의 차이도 없이 동일하다. 다음 선거에서는 내 제자들이 투표소 문턱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눈에 보이는 장애든 보이지 않는 장애든 상관없이 모두가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당장, 우리 안의 편향된 시선부터 깨부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오늘도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교단에 서고,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장애인식개선을 외치는 진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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