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승진하면 빨리 잘린다” 베테랑 경찰 ‘승포자’ 자처한 사정

김준희 2026. 6. 1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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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8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에서 열린 319기 졸업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검찰청 폐지…“중수청서 승진 노려볼까”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국가수사위원회 신설 등 수사기관 재편이 마무리되면서 경찰 내부에서 계급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오는 10월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경정급 간부를 중심으로 계급정년과 상관없는 새 조직으로 옮기거나 광역자치단체 산하 자치경찰 전출을 고민하는 경찰관도 상당하다. 아예 인생 2막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는 ‘승포자(승진 포기자)’도 나오고 있다.

13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공무원법상 계급정년은 치안감 4년, 경무관 6년, 총경 11년, 경정 14년이다. 일정 기간 안에 상위 계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연령정년(60세)과 별개로 퇴직해야 한다. 반면 국정원은 최근 3급(7년→8년)·4급(12→14년)·5급(18년→21년)의 계급정년이 연장됐다. 관련 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군은 장성급에만 계급정년을 적용한다.

김경진 기자


13만4000명 중 총경 0.53%…“승진=재취업 성공”


그러나 경찰은 1998년 제도 개정 이후 30년 가까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경정에서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50대 초중반에 옷을 벗어야 한다. 지난 2월 기준 전체 경찰 13만4236명 가운데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총경은 708명(0.53%)에 불과하다. 경정은 3285명에 달한다. 승진 경쟁이 치열하다. 20대 중후반에 경위로 입직하는 경찰대·간부후보 출신에게 ‘경정 14년’은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셈이다.

전남 모 경찰서장(총경) A씨(50대)는 “50대 초중반이면 자녀 대학 등록금 등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시기인데 강제로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구조”라며 “경정에서 총경을 달면 조직 내부에서 ‘재취업에 성공했다’는 표현까지 쓸 정도”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군·국정원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고 ‘100세 시대’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려는 사회적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경진 기자


“승진 경쟁→인사 청탁→수사권 독립 훼손”


현장에선 계급정년이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정치적 중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 청탁과 금품 의혹이 반복되는 배경에 극심한 승진 경쟁이 있다는 주장이다. 전북 지역 한 경정급 간부 B씨(40대)는 “지자체장·지방의원 한 명도 수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승진 과정에서 정치권이나 외부 인맥에 신세를 진 지휘부가 법과 원칙만 보고 수사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수사 경과(수사 전문 보직) 경정 일부는 중수청 이동을 검토 중이다. 익명을 원한 현직 수사과장은 “계급정년 부담이 없는 신설 조직에서 성과를 내 총경 승진 기회를 잡겠다”고 했다. 여성청소년과·지구대 등 비수사 경과 경정 사이에선 자치경찰 전출을 저울질한다. 전북자치경찰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이 파견 형식으로 자치경찰 사무를 수행하는 구조라 계급정년 적용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만약 계급정년이 적용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일부 간부는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개청 준비단이 출범한 지난 4월 30일,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모습. 연합뉴스


“승진 포기, 공인중개사·법무사 준비”


승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간부도 적지 않다. 전주 모 경찰서 소속 50대 경정 C씨는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에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 동료도 있다”고 했다. 이어 “능력이 있어도 승진하지 못하면 조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일부는 계급정년을 피하려고 일부러 승진을 늦추기도 한다. 빨리 승진하면 빨리 나가야 하니 ‘가늘고 길게 가자’는 식”이라고 했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북경찰청 소속 경장 D씨(30대)는 “경찰대·간부후보 출신은 일반 순경 출신보다 세 단계 높은 계급에서 시작해 인사·처우 면에서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데, 계급정년마저 연장되면 하위직 승진 기회는 확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경찰 11개 계급 중 계급정년과 무관한 경감·경위·경사·경장·순경은 13만118명으로 전체 13만4236명의 약 97%를 차지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승진 적체” 우려도…“유능한 간부 떠나면 경찰력 손실”


경찰청은 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계급정년 폐지는 조직 활력 저하와 승진 적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현직 경정 3명은 지난해 3월 “경정 14년 내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하도록 한 경찰공무원법이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찬반 논쟁을 넘어 경찰의 역량 강화와 수사권 독립 등과 맞물린 계급정년 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이상열 중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유능한 경찰 간부들이 계급정년 때문에 조직을 떠나는 것은 경찰력 손실”이라며 “다만 상위직 정년만 무조건 늘리면 하위직 승진 적체 문제가 생기는 만큼, 승진 최저 소요 연수 조정이나 시험·특진 확대 같은 보완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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