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의 시작 ‘예그린악단’… 이름도 김종필이 지었다

장지영 2026. 6. 13. 00:1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nd 문화]
오화섭 교수 작명설 설득력 낮아
JP가 1961년 창단… 명맥 이어져
60년 전 ‘살짜기…’가 뮤지컬 시초
1962년 1월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예그린악단 창단 공연 '삼천만의 향연'. 국민일보DB


올해는 한국 뮤지컬 탄생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뮤지컬협회나 학계에서 1966년 10월 예그린악단의 ‘살짜기 옵서예’ 공연을 한국 뮤지컬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그린악단은 원래 ‘문화재건계획’의 하나로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주도해 1961년 12월 창단됐다. 정부가 기업들에 후원을 요청한 뒤 김종필과 가까운 장태화 오일기업상사 사장이 실질적인 준비를 맡았다. 그리고 1962년 1월 창단 공연 ‘삼천만의 향연’을 시작으로 1년간 6차례의 정기 공연을 올린 뒤 해산됐다. 예그린 악단은 정치적 상황 변화와 재정난으로 여러 차례 해체와 재창단을 겪다 1973년 국립극장 소속 국립가무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77년 1월 세종문화회관에 이관돼 서울시립가무단이 됐다가 1999년 지금의 서울시뮤지컬단이 됐다.

예그린악단이 뮤지컬을 선보인 것은 1차 창단과 해산의 과정을 겪고 1966년 재창단되면서다. 당시 김종필 공화당 의장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평론가 박용구(1914~2016)가 대사 없는 가무극 대신 ‘한국적 뮤지컬’을 예그린악단의 방향으로 정했다. 이때 참여한 창작자들과 배우들은 이후 한국 뮤지컬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게 된다.

악단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했던 ‘옛과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예그린악단의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그동안 김종필이 악단을 창단했지만, 작명은 오화섭(1916~1979) 연세대 영문과 교수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교수는 영미 희곡을 매끄러운 우리말로 번역해 현대연극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종필은 2016년 발간한 회고록 ‘김종필 증언록’에서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미래를 열어가자’는 뜻을 담아 자신이 직접 지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그동안 학계나 뮤지컬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재창단된 예그린악단에 배우로 입단한 강대진 전 서울시뮤지컬단장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다들 오 교수가 작명한 것으로 알았다. 나는 황운헌 예그린악단 문예부장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황운헌도 1966년 예그린악단이 재창단될 때 참여한 인물로 1961년 첫 창단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 교수가 작명했다는 문헌상 기록은 1976년 기사에 처음 나오는데, 이 역시 악단이 만들어진 지 15년 뒤의 일인 만큼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창단 당시 오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처지였음을 고려하면, 그가 악단의 이름을 지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 교수는 1960년 10월 북한에서 간첩으로 내려온 매부를 만나고 신고하지 않아 불고지죄로 구속됐다. 1심 선고유예와 항소심 무죄를 거쳐, 1961년 10월 대법원에서 다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오 교수는 판결이 나올 때까지 대학 강단을 떠나 시골에 머물렀다.

예그린악단은 1961년 12월 창단식을 가졌으나 실제로는 적어도 그해 10월부터 단원들을 뽑아 훈련해 온 것으로 확인된다. 5·16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재판받던 오 교수에게 새로 창단한 악단의 작명을 맡겼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다만 오 교수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직후 활동을 재개했는데, 1962년 1월 예그린악단의 창단 공연에 대해 호의적인 리뷰를 신문에 실었다.

김종필이 2016년 펴낸 회고록 표지. 이 책에 예그린악단 창단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국민일보DB


김종필은 예그린 악단이 북한의 피바다 가극단에 맞서기 위해 창단됐다는 학계의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1951~1952년 미국 유학 시절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봤던 화려한 악단의 모습이 좋았다”면서 “전통 민요를 현대화하고 한국의 민족예술을 국제화해보겠다는 문화적 야망의 발로였다”고 강조했다. 김종필이 미국 유학 시절 관람한 것은 지금도 화려한 춤과 음악으로 유명한 ‘로켓’쇼로 추정된다. 피바다 가극단은 1970년대 등장했기 때문에 예그린악단 창단 당시와는 관련성이 떨어진다.

올해 한국 뮤지컬 탄생 6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한국뮤지컬학회가 창립 학회를 열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뮤지컬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지만, 자료 부족이 문제로 제기된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는 “초창기 자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중요 국면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면서 “정확한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공적 차원의 뮤지컬 자료 아카이빙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