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머리카락과 자라난 수염... 어떤 인물들일까?

이정현 2026. 6. 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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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 김창옥 뮤지엄 토크를 다녀와서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정현 기자]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역할과 일들 속에서 바쁘게 살았다. 매일 두 아이들을 돌보며, 짬짬이 쓴 글로 새 책 원고를 넘기고, 틈틈이 여러 강의들을 했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체력까지 달려, 마치 배터리가 3% 정도 남은 휴대폰처럼 방전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그런 내게 도움이 될 거라 느꼈는지,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온 신랑이 내게 넌지시 "서울미술관에 김창옥 교수님이 오시던데, 당신이 좋아하는 분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마치 다시 급속 충전기와 연결된 기분이 들어 정보를 찾아보았다.
 김창옥 교수 도슨트 강의
ⓒ 서울미술관
유명 강사인 김창옥 교수님이 미술관에서 도슨트가 되어 뮤지엄 토크를 한다니 무척 흥미로웠다. '사라진 머리카락과 자라난 수염'이라는 강의 타이틀과 어딘가 익살스러운 포스터에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알람까지 맞추어 예매에 성공을 한 뒤, 신랑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된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사라진 머리카락과 자라난 수염'

강연을 듣기 전, 전시장을 먼저 둘러보았다. 평소 미술관에서 잘 보기 힘든 동판화의 원판과 판화 작품들이 있었고, 이후 목판화 작품과 회화 작품 등이 이어졌다. 회화 작품에서는 그림마다 마치 도인처럼, 자연 속 정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양한 작품에 대한 여운과 의문을 안고 강연장에 들어섰는데, 마침 강연의 주제가 '머리카락은 점점 사라지고, 몇 가닥의 수염은 계속 기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창옥 교수 도슨트 강의
ⓒ 서울미술관
내가 참여했던 2회차 강연장에는 50여 명의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김창옥 교수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일제히 반가움의 박수를 터트렸다. 몇 년 전부터 TV나 유튜브에서 자주 보았던 분이라, 익히 유머와 입담은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뵈니 1분에 한 번씩 웃음이 나왔다. '유머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웃음과 동시에 깊은 통찰을 주는 강연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김창옥 교수님은 당신이 이 전시가 너무 좋아서 5번이나 보러 왔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김상유 작가님이 교사라는 안정적 직장을 내려놓고 화가가 된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에는 동판화를 하시다가 눈이 안 좋아지자 목판화를 하셨고, 목판화를 하시다가 어깨 등 관절이 안 좋아지자 회화를 하셨다는 일화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좋아하는 것을 해나가는 힘이 느껴졌다.
 김상유 전시회
ⓒ 서울미술관
그는 김상유 작가의 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간이 갈수록 머리카락은 점점 줄어들지만, 수염은 계속 나 있는 것에 주목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수염을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상징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몇 가닥 되지 않더라도, 구불구불하고 볼품없더라도' 자신 안의 진정한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가슴에 닿았다고 한다.

강의가 없을 때는, 유명 강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제주도에서 옻칠 작업을 하시며 수염도 깎지 않는다는 말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내가 맡은 역할들을 넘어 오롯이 자신의 본모습대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닳지 않는 사람'

강연을 다 듣고 나서, 다시 전시장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전시의 주제가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둘러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목사님, 신부님, 스님, 연예인 등의 답이 눈에 들어왔다.

강연자였던 김창옥 교수님은 "삶을 캔버스로 삼아 시간 위에 색을 쌓아 올린 사람은 쉽게 닳지 않는다. 그에게 닳음은 상처가 아니라 쌓아온 시간의 층이 깎이며, 그 안의 깊고 고운 색이 드러나는 일이다"라는 글을,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님은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수많은 소리와 소음, 흔들리는 말들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깊고 단단한 중심을 지켜내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미술관을 나서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마치 높은 상공에 떠 있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처럼 아래로 몸을 잡아 끄는 중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가까이 갈수록 현실에서 나에게 주어진 여러 역할들과 책임들이 다시금 어깨 위로 묵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전처럼 그것이 무겁거나 버겁게 느껴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작가님의 그림을 거울 삼아 바라보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은 여러 생각들은 비워지고, 뿌리 같은 수염이 돋아났기 때문인 듯하다.
전시 정보 :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시 일정 : 2026.04.01(수) - 2026.08.17(월)
전시 장소 : 서울미술관 제1전시장
관람 시간 : 매주 수-일(월,화 휴관) 오전 10:00-18:00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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