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복 때문에 교장과 교감이... 신도시 사립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
[안지훈 기자]
신도시의 한 사립 고등학교, 학생 수가 감소하며 학교 차원에서 학생을 충원하기 위한 전략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됐다. 재단 측은 더 이상 자유로운 학풍만으로 학생을 유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에 '이연조'를 새 교장으로 부임시켜 엄격한 규율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대학 진학률을 높이고자 한다.
기존 학풍에 익숙한 교감 '강정구'는 교장의 기조에 반발한다. 교감과 뜻을 같이 하는 학생부장 '천성일', 교감을 신뢰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면학 분위기를 바라는 학생회장 '김라엘'과 학생신문 편집장 '양준'까지 교장에게 반기를 든다. 작은 원칙 하나에서 시작된 학교 내 첨예한 대립을 다룬 연극 <원칙>은 학교라는 사회의 축소판을 통해 거대한 세계를 조명한다.
대립은 "운동장에선 체육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소한 교칙 하나에서 시작된다. 교장이 강하게 밀어붙인 교칙으로 인해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체육복으로 갈아입어야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학생들이 쉬는 시간 체육 활동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감은 융통성을 발휘하자고 제안하지만, 교장은 "원칙은 원칙"이라고 단호히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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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원칙> 공연 사진 |
| ⓒ 두산아트센터 |
물론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원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는 오래 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 연극에서도 원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불균형을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권력의 불균형은 곧 정보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고, 정보가 많은 사람이 원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유리하다. 뿐만 아니라 권력자는 과정과 절차, 나아가 의제까지 정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다시 말해 누군가를 논의에서 배제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극중에서 교장이 학부모 간담회라는 핑계로 학생들의 발언을 제한하는 게 대표적이다.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소수의 기득권을 옹호할 수도 있다. 교장에게서는 재단의 이익과 자신의 입지를 우선 순위로 고려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원칙은 분명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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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원칙> 공연 사진 |
| ⓒ 두산아트센터 |
원칙을 고수하는 주장과 융통성을 발휘하자는 주장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자면, 원칙 자체가 중요하다는 입장과 '어떤' 원칙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교감을 비롯해 교장의 원칙에 반발하는 인물들은 원칙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어떤' 원칙이고,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 따져보는 편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데, 다음의 대사는 핵심을 반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의사입니까, 마음이 따뜻한 의사입니까? 사회에 필요한 건 변호사입니까, 정의로운 변호사입니까?"
연극의 말미에 인물들은 관객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이때 관객 다수는 교감의 편에 선다. 그러나 관객들의 바람과 달리 <원칙>은 누군가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는다. 무엇 하나 말끔하게 해결되지도 않고, 인물들이 보기 좋게 화해하지도 않는다. 오직 아슬아슬하게 선을 오가며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연극이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장면은 가히 '연극적'이라 할 수 있는데, 교장과 교감이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배드민턴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바로 교감이 즐기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반면 조깅을 즐기는 교장은 교감의 배드민턴 제안을 늘 거절해왔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교장이 교감의 배드민턴 제안을 수락한 것은 상징적이다. 조깅은 혼자 하는 스포츠로 교장의 상태를 대변하고, 배드민턴은 누군가와 같이 해야만 할 수 있는 스포츠로 교감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마지막 배드민턴 장면으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교장에게서 변화의 조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원칙에 대한 또 하나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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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원칙> 공연 사진 |
| ⓒ 두산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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