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는 이지스운용 매각…관건은 돌고 돌아 '가격'

이민우 2026. 6. 1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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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칼라일도 물러서…힐하우스로 도돌이표
가격 두고 이견 계속…매도자 협상력↓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와의 협상이 장기화한 가운데, 매각 측이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그룹에도 인수를 타진했지만 결국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과의 갈등, 힐하우스의 중국계 자본 논란, 입찰 공정성 잡음 등 여러 변수가 불거졌지만, 결국 이번 거래의 핵심은 가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칼라일도 물러나…길어지는 매각전

12일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칼라일은 최근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를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인수하지 않기로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칼라일 아시아에서는 이지스를 아시아 부동산·인프라 운용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뉴욕 본사 차원에서 투자 승인을 끌어내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협상자인 힐하우스가 이지스 기업가치로 1조1000억원 수준을 제시한 만큼, 새 원매자가 거래에 뛰어들려면 이에 준하는 가격을 부담해야 했던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지스 매각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조원대 대형 운용사 딜로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힐하우스는 본입찰 이후 추가 경쟁을 거쳐 인수가를 1조1000억원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고, 이 가격을 기반으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흥국생명은 1조500억원, 한화생명은 9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힐하우스와 매도자 측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은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변경 승인 리스크와 계약금 처리 문제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통상 M&A에서는 거래금액의 10% 안팎을 계약금으로 거는 경우가 많은데, 이지스 거래 규모를 고려하면 계약금만 1000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 힐하우스 입장에서는 당국 승인이 불발될 경우 이 계약금을 모두 잃을 가능성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풀이된다.

힐하우스가 제시한 1조1000억원이 실제로 거래 종결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가격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힐하우스의 가격이 초기 경쟁에서 우선협상자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가격'에 가까웠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사 이후 국민연금과의 갈등, 주요 운용자산 이탈 가능성, 대주주 승인 리스크 등이 부각되면서 당초 제시한 가격과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과의 갈등은 이지스의 운용자산(AUM)과 운용보수 기반이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힐하우스의 중국계 논란은 거래 종결 가능성과 계약금 리스크를 키웠다.

가격 두고 평행선…매도자 협상력↓

업계에서는 매도자 측이 1조원 안팎의 매도가격 하한선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지스는 창업자 유가족과 재무적투자자 등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힐하우스가 1조1000억원 수준의 가격을 한 차례 제시한 이상, 주주대표 측이 그보다 크게 낮은 가격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흥국생명과의 갈등도 가격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배경이다. 흥국생명은 힐하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며 모건스탠리 등 매각주관사와 최대주주 손화자씨, 주주대표 김애미씨 등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만약 힐하우스와의 거래가 기존보다 낮은 가격으로 재조정될 경우, 앞선 입찰 절차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가격을 낮춰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과 기존 입찰 과정의 정당성을 방어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셈이다.

조갑주 대표의 복귀도 매각 과정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맥락으로 읽힌다. 조 대표는 과거 이지스 성장 과정에 깊이 관여한 핵심 인물로, 출자자(LP) 네트워크와 내부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로 평가된다. 국민연금 등 주요 LP와의 관계를 수습하고, 매각 장기화로 회사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소방수'인 셈이다. 조 대표의 복귀 자체가 이지스 매각이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잠재 매수자들도 매도자 측의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힐하우스의 우선협상자 지위는 사실상 약해졌지만, 마땅한 경쟁자도 보이지 않는다. 칼라일처럼 전략적 관심을 보인 글로벌 PEF도 가격 부담을 이유로 물러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1조원대 가격을 다시 받아줄 원매자가 제한적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IB 업계 관계자는 "이는 매도자 측의 협상력을 약화하는 요인"이라며 "새 원매자를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될 수 있지만, 1조원 이상의 가격을 고수하는 한 매각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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