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연기 인생 접고 틱톡 DJ로? ‘똑순이’ 김민희의 근황 [송원섭의 와칭]

송원섭 2026. 6. 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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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동안인 '똑순이' 김민희. 사진 이끌림 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 연예계에는 김민희가 참 많습니다. 한때 스크린의 여왕 1순위였던 ‘화차 김민희(44)'가 있고, 역시 아역 출신으로 사랑받은 '방울이 김민희(50)'가 있죠. 그래도 김민희라는 이름의 원조라면, 아무래도 1980년대부터 활동한 '똑순이 김민희(54)'를 꼽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감초 역할의 배우로 활동했지만 ‘똑순이’라는 아역 시절의 별칭을 달고 다녔던 김민희는 몇해 전 트로트 가수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했죠. 그리고 최근에는 틱톡 라이브의 인기 DJ로 대중과 직접 만나고 있습니다.

데뷔 40년을 넘는 활동 기간, 번아웃과 인생에 대한 회의를 극복하고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았다는 김민희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화려함 속의 고통, 어린 시절


‘달동네’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1980년 10월에서 1981년 9월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일일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당대의 톱스타 노주현과 장미희였지만, 이 드라마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김민희였습니다. 추송웅-서승현 부부의 딸 똑순이 역을 맡은 김민희는 당시 8세. 많은 시청자는 김민희의 재롱을 보기 위해 저녁 시간 TV 앞에 모였습니다.

드라마 한 편으로 김민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연예인이 되었습니다.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에서는 한진희-정윤희 커플의 아들(!)로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죠. 가장 바쁜 광고 모델이면서,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MC로도 활약했습니다. 조용필, 서세원 등 당대의 최고 인기 연예인들과 함께 무대에 섰고, ‘똑순이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은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순위에 올랐습니다.

천재 아역 시절의 김민희

대중에게 김민희의 어린 시절은 귀여우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그야말로 ‘똑소리 나는’ 천재 아역으로 남겨져 있지만 정작 본인에게 그 시절은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한창 인기 절정일 때 정치 지망생이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막대한 빚이 남겨졌고, 10세의 나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던 거죠.

“아동복 모델을 했기 때문에 옷장마다 협찬받은 옷이 꽉꽉 차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종일 일을 하고 집에 왔는데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많은 돈을 벌었지만, 버는 족족 빚의 이자로 나가고 정작 가족은 생활비가 없어 쪼들리고 있었던 겁니다. 어렸지만 그런 사정이 뻔히 짐작되다 보니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차에서 자고, 차에서 밥을 먹으며 일을 했고, 어쩌다 학교에 가도 또래 아이들과는 어울리기가 힘들었죠.


“나는 어른이 되긴 된 걸까”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어요. 다 커서는 이런 얘기도 했죠. ‘엄마 그때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나한테 일을 많이 시켰어?’ 엄마도 할 말이 없는지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좀 못하지 그랬니. 네가 너무 잘해서찾는 데가 너무 많았잖아.’ 그래도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어요.”

아역 시절의 여파는 사춘기를 지나서도 남았습니다. 청소년이 되었는데도 대중은 여전히 ‘똑순이’ 이미지를 기대했던 거죠. “제대로 성장기를 겪지 못했던 거예요. 저는 서른 넘어서까지 엄마가 사주는 옷만 입었어요. 마흔 가까이 가서야 ‘내 옷은 내가 알아서 입을 거야’라고 반항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20대, 30대, 40대를 거치면서 김민희는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연기자로 배역은 계속 들어왔지만,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가 점점 회의가 느껴졌죠. 특유의 목소리와 앳된 얼굴 때문에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기도 어렵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단체 생활에도 점점 회의가 느껴졌죠. 그러던 김민희에게 찾아온 변화의 계기는 가수 최백호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트로트 가수로 변신, 무대에 서서 새로운 자신을 찾았다는 김민희. 사진 이끌림 엔터테인먼트


최백호와의 인연, 새로운 인생


2006년, 김민희는 KBS 라디오를 함께 진행하며 인연을 맺은 최백호에게 조심스레 ‘노래를 해 보고 싶다’는 조언을 구했습니다. 당시 동석했던 지인은 “배우로 훌륭한 커리어가 있는데 왜 굳이 노래를 하겠다는 거냐”며 만류했는데, 최백호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보내주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최백호 선생님이 그렇게 대단한 분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자 ‘그건 엄청난 영광’이라며 흥분하더라고요. 아,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 주시는구나' 하고 깨닫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시작해 어느덧 데뷔 9년 차. 그동안 김민희는 '낯선 여자', '갈기갈기', '비 내리는 밤', '축제로구나' 등 많은 곡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해 왔습니다. 가수 활동을 시작한 뒤로 연기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버렸죠. 특히 눈앞에서 바로 환호해 주는 팬들과의 만남은 40년 경력의 연예인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지방 축제나 행사장에 가면 여전히 아기로 기억하며 볼을 만져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있어요.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제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 그분들이 사랑해 주셨기에 평생을 벌어 먹고살 수 있었더라고요. 이제는 그분들과 추억을 공유하는 연예인이 된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세대가 다른 팬들과의 만남은 김민희의 삶에 새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사진 이끌림 엔터테인먼트


틱톡 라이브, 마침내 찾은 자유


최근 김민희는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을 통해 라이브 DJ로 변신했습니다. 직접 디제잉을 하며 7080 시절의 롤러스케이트장 음악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을 선곡합니다. 고정 팬들은 700여명. 인기 스트리머들에 비하면 턱없는 숫자지만 김민희에겐 소중한 팬들입니다.

틱톡 라이브에는 시청자들이 후원금을 '쏘는' 수익 창출 시스템이 있지만, 김민희는 팬들에게 지갑을 열도록 강요하는 문화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의외로 청소년들이 많은데, 선물을 많이 쏘면 혼내요. 이건 너무 지나치다고 엄마 마음으로 말리죠." 틱톡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을 개척교회에 기부하기로 한 약속을 200일 넘게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돈을 좀 벌게 된다면 학대당하고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는 그룹홈이나, 희소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기관을 거치지 않고 일대일로 직접 후원하고 싶어요."

이제야 '똑순이'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김민희. 사진 이끌림 엔터테인먼트

억압됐던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에 김민희는 뷰티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딸 서지우 씨를 철저한 '방목형'으로 키웠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딸의 성적표조차 보지 않았다는 그녀는 딸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며 대견함을 느낍니다. 최근엔 딸과 함께 롤러스케이트 영상을 찍으며 상부상조를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살기로 했다"는 김민희는 이제서야 평생 힘겹게 따라다니던 '똑순이'의 꼬리표를 떼고, 온전한 자유를 찾은 듯 보였습니다. 더는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김민희의 인생 2막을 응원하게 됩니다.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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