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제사회, 코로나 교훈 잊어…에볼라 확산은 그 대가”

전민구 2026. 6.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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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클라크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가비) 이사회 의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 감염병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것보다 발생하기 전에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
헬렌 클라크(76)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가비) 이사회 의장은 최근 아프리카에서 확산 중인 분디부조(Bundibugyo)형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을 두고 “국제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의 교훈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같이 말했다.

뉴질랜드 총리 출신인 그는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 전 이미 수 주 동안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었고 사망자 발생 이후에도 3주가 지나서야 첫 확진 사례가 확인됐다”며 “조기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훨씬 적은 비용과 자원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 특별간담회 참석차 방한한 그를 지난 4일 만났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적십자사 직원들이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기 전 병원을 소독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분디부조형 에볼라 바이러스는 현재 승인된 백신이 없는 변종이다. 국제사회는 확산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만 누적 확진자가 550명에 달한다. 그중 101명이 사망했다. 우간다에서는 19명이 확진(2명 사망) 판정을 받았다. 개발도상국의 백신 접근성 확대와 감염병 예방을 지원하기 위해 2000년 설립된 가비는 이번 에볼라 사태에 대응해 5000만 달러(약 761억원) 규모의 긴급 대응 기금을 조성했다. 향후 백신이 개발될 경우 그중 4000만 달러(약 609억원)를 백신 확보와 보급에 우선 투입할 계획이다.

클라크 의장은 이번 사태가 팬데믹 대응 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그는 “팬데믹 대비 기금은 지금까지 한 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다”며 “감시 체계와 연구개발(R&D), 조기 탐지 역량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최근 국제 원조 감소로 현장 대응 역량이 약화되면서 바이러스 탐지와 대응이 더 늦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9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의료진이 에볼라 바이러스 피해자의 관을 옮기고 있. EPA=연합뉴스

Q : 최근 가비는 5000만 달러 규모의 긴급 지원을 결정했다.
A :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Q : 이번 에볼라 사태를 통해 드러난 국제사회의 감염병 대응 체계의 가장 큰 취약점은 무엇인가.
A : 감염병 유행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팬데믹 대응 자금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감시·대응 체계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전 세계가 감염병에 대비하기에는 필요한 수준의 재원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Q : 각국이 최근 대외 원조를 축소하고 있어 향후 감염병 발생 시 국제사회의 대응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 : 전 세계적으로 원조 예산이 줄면서 보건 현장의 자원도 축소됐다. 그 결과 예방보다 사후 대응에 의존하게 됐고, 더 많은 비용과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사전에 투자했다면 쓰지 않아도 됐을 자원이다. 이제는 투자 대비 효율을 따져보아야 한다. 다만 최근에는 이번 에볼라 사태로 인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다시 행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15억8000만 달러(약 2조4074억원) 규모의 지원을 중단했던 미국이 최근 가비와의 협력 재개 방침을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인 신호다.

클라크 의장은 지난 4일 “한국은 백신 연구개발과 제조, 공급망, 물류 혁신 역량을 모두 갖춘 국가”라며 “세계 보건 분야에서 앞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한국은 2010년 아시아 최초로 가비 공여국에 합류한 이후 꾸준히 기여를 확대해왔다. 올해 기준 14위 공여국이다.한국 백신 기업들은 가비 조달 백신의 약 10%를 공급하는 4위 공급국으로, 가비는 지난해 약 1억4000만 달러(약 2133억원)에 달하는 한국산 백신을 구매했다. 클라크 의장은 한국과의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Q : 한국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이 현재 세계 보건 분야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라면.
A : 한국은 단순한 공여국을 넘어 세계 보건 분야의 핵심 파트너다. 재정적 기여는 물론 백신 R&D와 생산 역량을 갖춘 혁신 허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비는 한국을 다양한 보건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 백신 기업의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 앞으로 한국이 세계 보건 분야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Q : 이런 역량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보나.
A : 한국 국민은 스스로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태어난 195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였는데 당시 전쟁의 폐허와 빈곤에 시달리던 한국은 오늘날 세계적인 고소득 국가로 성장했다. 한국의 발전 경험은 전 세계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한국이 이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투자 덕분이었다. 보건과 교육 등 다양한 분야 전반에 꾸준히 투자한 결과다. 이는 오늘날 세계에 전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 헬렌 클라크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

클라크 의장이 지난달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WHA)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클라크 의장은 보건 및 국제개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 리더다. 뉴질랜드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로 3연임에 성공한 그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총리를 지내며 경제·사회 개혁과 복지정책 확대를 이끌었다.

그는 1981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보건부 장관 등 요직을 거치며 정책 경험을 쌓았다. 총리 재임 시절에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및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며 주목을 받았다.

총리 퇴임 후인 2009년에는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에 취임해 2017년까지 두 차례 임기를 수행했다. 여성 최초의 UNDP 수장으로서 빈곤 퇴치와 기후변화, 성평등, 보건 등 의제에서 목소리를 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국제 보건 거버넌스 강화를 강조해왔다. 올해부터는 세계백신면역연합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백신 접근성 확대와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이끌고 있다. 그는 “보건 안보는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며 “선제적인 감시와 탐지 그리고 사후 대응 역량까지 전반적인 준비 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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