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다, 그 환희의 눈물…손흥민, 오늘 네 번째 월드컵

11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 기자회견장.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34·LAFC)의 얼굴은 유난히 햇볕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태양과 가까운 고지대 적응 훈련의 흔적이다. 네 번째 월드컵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같은 조 멕시코와 체코 기자들은 그를 “손날두”라고 불렀다. 손흥민과 그의 우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를 합친 별명이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도 북중미 월드컵의 레전드로 호날두,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손흥민을 꼽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이자 아시아 최고 선수라는 평가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정작 손흥민은 “그런 별명을 듣기에는 아직 창피한 것 같다”며 소년처럼 쑥스럽게 웃었다.

이번 대회에서 그를 따라다니는 단어는 ‘마지막’이다. 득점왕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서른넷에 맞는 네 번째 월드컵. 국내외 매체들은 ‘라스트 댄스’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손흥민은 선을 그었다. “제가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단정지어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얘기하는 건 자유지만, 제가 결정해서 선택하겠다.” 욕심만은 아니다. 호날두는 41세, 메시는 39세에 여섯 번째 월드컵에 나섰다. 손흥민은 “월드컵은 꿈꾸는 아이가 되는 무대다. 첫 번째든, 네 번째든, 여섯 번째든 월드컵에 나가는 내 마음은 늘 같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1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11일 오후 8시) 체코와 조별리그 A조 1차전을 치른다. 과달라하라는 해발 1561m, 강원도 오대산 높이와 비슷한 고지대다.
손흥민 “대표팀, 캄 다운시켜야 할 정도로 열정적…꽃 피우겠다”
공기가 희박해 공이 평지보다 빨리, 멀리 날아가고 몸 회복도 더디다. 손흥민은 이 변수를 미리 지웠다.
지난달 해발 2680m 멕시코 톨루카에서 북중미 챔피언스컵 경기를 뛰었다. 백두산만큼 높은 곳이다. “운 좋게도 월드컵에 오기 전에 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경기를 해 봤다”고 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고지대 축구를 몸으로 먼저 겪은 셈이다.
그가 10년간 뛴 토트넘을 떠나 미국 무대를 택한 이유 중엔 이번 월드컵이 있었다. 개최국에서 뛰며 시차와 이동, 기후에 미리 적응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대표팀도 미국 사전캠프부터 16일간 고지대 적응 훈련을 했다.

그의 훈련 이야기에는 아버지가 빠지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나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처럼 손웅정씨도 엄격한 스승이었다. 친형 손흥윤씨가 기자에게 들려준 일화다.
“흥민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조기축구에 따라갔어요. 옆에서 둘이 3~4시간 동안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올리는 리프팅을 했죠. 2만2000개. 그 숫자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실밥이 보일 정도로 직각으로 차야 했고, 공이 돌아도 안 됐어요. 공만 보다 보니 나중엔 평평한 땅이 울퉁불퉁하게 보일 정도였죠.”

월드컵에서 그는 자주 울었다. 2014년 브라질에선 노랑머리로 염색한 명랑한 막내였다. 조별리그 탈락 후 울었다. 2018년 러시아에서는 당시 세계랭킹 1위 독일을 이기고도 짐을 싸며 울었다. 2022년 카타르에서는 안와골절 수술 자국 위에 검은 안면 마스크를 쓰고 뛰었다. 포르투갈전에서 70m를 질주해 황희찬의 결승골을 도왔고, 16강이 확정되자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만 기쁨의 눈물이었다.


대회를 하루 앞둔 손흥민의 말에는 비장함 대신 단단함이 있었다. “대표팀 분위기는 ‘캄 다운(진정)’시켜야 할 정도로 열정적이에요. 저는 당장 내일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 오늘이 가장 중요합니다. 월드컵은 매 경기가 인생을 걸 정도로 중요해요. 가진 것 이상을 해낼게요.”
손흥민은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서른넷 베테랑은 네 번째 월드컵에서 어떤 눈물을 흘릴까.
과달라하라=박린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용산 이전 신의 한 수” 욕 먹어도…유현준의 ‘광화문 소신’ | 중앙일보
- 박정희 “이제 그만합시다”…서거 며칠 전 MB에 온 ‘천운’ | 중앙일보
- “일베 금지법? 순교자만 양산” 홀로코스트 생존자 딸의 경고 | 중앙일보
- 꽁꽁 묶어 때리고, 옷 벗겨 조리돌림…‘불가촉천민’ 충격 군중재판 | 중앙일보
- 성매매 민원 터졌던 ‘박카스 할머니’…인천 만월산에 다시 떴다? | 중앙일보
- “여기 미쳤어, 오자마자 소맥 4잔을”…숨진 女소방관 카톡엔 | 중앙일보
- “일진 다 끌고와”…여교사도 참교육한 엄마의 ‘학폭 복수’ | 중앙일보
- 악몽 된 제주 수학여행…만취 50대 남성, 여고생들에 다가가 벌인 짓 | 중앙일보
- 박지성이 내놓은 체코전 전략 “후반 25분 ‘이 선수’ 투입하라” | 중앙일보
- [단독] “국제사회, 코로나 교훈 잊어…에볼라 확산은 그 대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