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국과 조선’: 바른 두 국가관계를 향해

2026. 6. 1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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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26년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헌법이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대한민국과 북한의 성격과 관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논란의 주된 근거는 과도한 이념주의, 그리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지난 3월 22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북한은 이 회의에서 영토 조항을 신설하는 등 헌법을 개정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의 헌법 제2조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말한다. 영역·영토·영해·영공 조항이 처음 들어간 것이다.

「 북한의 헌법은 명백한 ‘두 외국론’
‘두 국가론’으로 인정해선 안 돼
평화공존 위한 국가성 인정 필수
그러나 통일 가능성 봉쇄는 금물

1948년 제정 시점부터 이전 헌법까지는 영역과 영토조항이 없었다. 제헌 당시 북한은 서울을 수도라고 규정하여 대한민국의 존재와 국가성을 전면 부인하였다.(제103조). 내용과 순서를 보면 당시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제4조)과의 정면 대응이었다.

1972년 7·4공동성명 이후 북한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통일조항을 삽입하였다. 수도의 이동에 따른 변화였다. 분단의 헌법상의 공식화와 한국 존재의 ‘사실상의’ 수용, 그리고 ‘헌법상의’ 통일 추구의 천명이었다.

한국 역시 7·4공동성명 이후 1972년 헌법에 처음으로 통일조항을 넣었다. 물론 통일 조항은 문면 자체로는 헌법모순이거나, 헌법 적용상 우선의 원칙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헌법상 한반도 전체가 영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통일 조항은 헌법규범(영토조항)과 실제현실(북한의 존재) 사이의 불가피한 타협이었다.

북한은 이후 수도조항과 통일조항을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통일 관련 조항을 전면 삭제하는 동시에 영토조항을 삽입한 것이다. ‘수도 서울’(1948)에서 ‘수도 평양+통일 추구’(1972)를 거쳐 ‘수도 평양+영토 삽입+통일 조항 완전 삭제’(2026)로 변전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헌법은 ‘두 국가론’과는 완전 다르다. 관계도 없다. 특히 이를 우리의 정부 기관과 사회에서 두 ‘국가’론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다. 한국은 물론 독일·중국·아일랜드의 복수 사례를 들더라도 전혀 두 국가론이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헌법상 한국을 중국 및 러시아와 같은 ‘외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외국’일 뿐이다. ‘수도 서울과 무력 통일’, ‘수도 평양과 조국 통일’ 정책을 연결하던 과거와는 정반대다.

북한의 이러한 ‘두 외국론’은 ‘두 국가론’으로 수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한국이, 7·4공동성명과 헌법상 통일 조항 삽입 이후 한국과 북한의 평화공존을 위해 추구해온 ‘유엔 동시 가입’에 대해서도 그들은 ‘영구분단’이라며 격렬히 비난·반대했었다. 그러던 북한은 한국을 아예 외국으로 간주한다. 물론 그들은 한민족조차 두 개의 민족으로 완전 분리한 바 있다.

한반도에서 바른 두 국가론은, 한국과 북한이 평화공존을 위해 상호 국가성과 주권성을 인정한 위에 서로 적대·간섭·충돌하지 않는 원칙과 정책을 말한다. 동시에 통일의제 역시 평화 우선의 원칙 아래 미래로의 유예이지 영구 폐기가 아니다. 즉 두 국가론은 미래 통일을 상정한 국가 대 국가 공존의 특수관계를 말한다. 상호 국가성을 부인하는 쌍방의 단독대표론·유일정부론은 물론, 국가와 평화 대신 민족과 통일에 기반한 민족통일론·조국통일론을 넘어서는 동시에 두 외국론 역시 거부하는 현실주의다.

1991년 9월 17일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직후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상옥(왼쪽) 외무장관과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 중앙포토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과 북한의 위상과 관계에 대해 당위와 현실, 한국 헌법과 국제법의 정면 충돌을 경험한 한국 정부는 7·4공동성명(1972년)과 유엔 동시 가입(1973년)을 진행하면서, 이 둘의 결합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한국과 북한의 상호 인정, 평화 공존과 통일 추구, 그러나 북한에 대한 국제법상 국가성(외국) 부인을 말한다.

그 절묘한 결합은 ‘두 국가’라는 용어의 사용 및 공식 천명 여부에 관계 없이, 이후 한국의 북한에 대한 근본 원칙과 자세로 작용해왔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포함한 한국과 북한의 각종 합의 역시 그러하였다. 1991년 한국의 유엔 동시 가입 추진이 국제법상 두 국가 추구, 두 외국 접근으로 비판받지 않은 이유다.

박정희-노태우 시기를 이어받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기도 동일하였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한국과 북한에 대해, 최고 지도자가 아닌 시절 ‘국가’와 ‘공화국’ 용어를 반복 사용한다.

한국전쟁 및 냉전 해체 직후, 국제기구와 강대국들의 문건과 정책을 보면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한국의 국내적 국제적 권리와 우선권을 부인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큰 충돌을 감수하더라도 한국은 이를 결코 수용할 수 없었다.(공식적으로 두 국가론을 추구한 독일 역시 완전 동일하였다.)

한국과 북한은 상호 국가성과 주권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또 모두 유엔 회원국도 맞다. 그러나 둘은 결코 서로 외국일 수는 없다. 미래의 통일마저 오늘 막아서는 안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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