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정책 집중도 높아야 인플레이션 유의미한 감소"
24개국 중앙은행·ECB 연설문 9802건 분석
한국은행·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중앙은행이 물가 및 금융안정 등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수록 인플레이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최근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화두인 금융포용, 기후변화, 지급결제 등 기존 역할 범위에서 벗어난 주제들을 다루면 정책 집중도가 떨어져 물가 안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다.
강현주·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1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한미재무학회·한국금융연구원과 공동 개최한 '대전환기의 금융과 기업: 기술혁신부터 중앙은행의 역할까지' 심포지엄 발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강 연구원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넘어 금융안정, 기후변화대응, 디지털화폐, 금융포용 등 다양한 과제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억제 실패의 원인으로 중앙은행이 광의의 정부 기관처럼 행동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기준금리라는 단일수단과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다양한 목표를 동시에 조화시키는 고전적인 딜레마에 놓여있다"고 연구 이유를 설명했다.
강 연구원과 노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정책집중도를 구분하기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중앙은행 연설문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온 24개국 중앙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 연설문 9802건(2009년~2024년 6월)을 대상으로 했다. 우선 표제어를 추출하고 특정 문서의 특정 단어 노출 빈도 등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금융포용, 기후변화, 지역별 경제 등 9개 중분류와 25개의 세부 주제가 식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금융안정 논의 비중이 47%까지 증가했으나 2024년에는 18.9%로 감소했다. 2017년부터는 기후위기(2021년 23.1%), 지급결제(2021년 14.1%) 등 신규 주제로 논의가 급증해 2021년에는 관련 발언이 확대됐다.
중앙은행별로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나타났다. 미국 연준의 경우 2020∼2022년 금융포용 논의 비중이 25.6%에 달해 타 중앙은행보다도 높았고, 유럽연합(EU)의 친환경 정책 추진 시기와 맞물린 2021년 ECB에서 기후변화 논의 비중은 Fed의 2배가량인 29.5%에 달했다.
두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정책적 관심사가 경제 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통화정책 영역을 넘어 다양한 정책 과제로 역할이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정책 메시지가 여러 주제를 다루는 분산형일 때보다 핵심적인 역할 몇 가지만 다루는 집중형으로 변하면 5~10분기 내 인플레이션이 감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분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약 0.31%포인트 감소했다.
노·강 연구원은 "정부가 구조개혁과 같이 어려운 결정을 회피하고 중앙은행에 과도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며 "다른 정책 주체들이 각자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해 중앙은행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개혁 논의에 참여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다"며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면서도 핵심 임무인 물가 안정에 대한 명확한 우선순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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