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저평가 뚫고 불기둥…LG의 시간이 왔다 [스페셜리포트]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6. 6.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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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CNS가 덱스메이트 휴머노이드 로봇을 산업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트레이닝시키는 모습. (LG 제공)
LG그룹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반도체 랠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철저히 소외당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미래 산업’이 없다며 시장에서 박한 평가를 받아 코스피 질주에도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만년 저평가’ 가전주 굴레에 묶인 LG전자를 비롯해 전기차 캐즘에 시달리는 LG에너지솔루션, 중국발 저가 디스플레이 공세에 내몰린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린 탓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날개로 달고 시장 주도주로 발돋움해 주가 불기둥이 솟구쳤다. 핵심 계열사 LG전자의 경우 로봇 핵심 공급망을 선점한 ‘피지컬 AI 인프라 기업’으로 재조명받는 모습이다. AI 반도체 기판 호황에 로봇 사업 호재를 등에 업은 LG이노텍은 어느새 황제주로 우뚝 섰고, LG CNS 주가도 로봇전환(RX, Robot Transformation) 플랫폼 기대감으로 치솟았다. LG그룹의 환골탈태 비결을 들여다본다.

LG그룹 계열사 주가 날개

전자·CNS·이노텍 주가 ‘불기둥’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전자 주가는 5월 한 달간 107.95% 뛰었다. LG CNS 주가도 같은 기간 75.08% 올랐다. 3월까지만 해도 20만~30만원대에서 머무르던 LG이노텍 주가는 순식간에 뛰어오르며 5월 29일 종가 기준 145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3개월간 주가 상승률이 411.58%에 달해 불기둥을 뿜었다. LG그룹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TIGER LG그룹플러스’ 역시 6월 1일 기준 지난해 말 대비 118% 상승했다.

LG 계열사 주가가 치솟은 것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LG그룹 경영진과 만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 덕분이다. 지난해 10월 방한 당시 일명 ‘깐부 회동’ 여파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가가 치솟았듯, 이번에는 LG그룹과 엔비디아의 협력 수혜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황 CEO는 6월 1~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연례 AI 콘퍼런스 ‘GTC 타이베이 2026’ 관련 일정을 마친 뒤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 이후 7개월 만의 방한이다.

재계에서는 황 CEO와 구광모 LG그룹 회장 회동이 단순한 만남에 그치지 않고, 그룹 전반의 ‘AI 밸류체인’을 엔비디아 생태계와 묶는 전략적 동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한 LG 계열사 간 끈끈한 연대, 이른바 ‘원LG’ 전략이다. 로봇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들을 계열사 간 수직 계열화해 내부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관련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포부다.

LG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 두뇌부터 로봇의 센서, 관절, 배터리 등 핵심 구동 부품까지 아우르는 기술, 제조 역량을 가진 기업으로 꼽힌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비전언어모델(VLM) 등 소프트웨어까지 수직 계열화가 가능하다. 특히 LG는 가전 생태계에서 확보되는 고객의 가사 생활 데이터와 전 세계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제조 데이터를 피지컬 AI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 포인트다. LG전자, 이노텍, CNS 등 계열사 3인방이 로봇 사업을 이끌고, LG AI연구원이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EXAONE)’ 기반의 로봇 두뇌 개발을 맡으며 AI 로봇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구조다.

계열사별로 보면 LG전자는 이미 엔비디아와 탄탄한 기술적 협력 관계를 구축한 상태다. LG전자가 지난 1월 CES 2026을 통해 선보인 홈 로봇 ‘클로이드(CLOiD)’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셋 ‘젯슨 토르’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엔비디아의 로봇 플랫폼 ‘아이작’으로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훈련한다.

LG전자는 가전 사업에서 쌓아온 모터 기술력을 토대로 ‘액추에이터’ 사업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액추에이터는 동력원인 모터와 물리적 출력을 조절하는 감속기, 제어기, 센서 등을 결합한 구동 장치로 로봇의 손가락과 팔다리 등 관절을 정확하게 움직이게 한다. LG전자는 CES 2026에서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LG 액추에이터 악시움’을 처음 공개했다.

LG전자가 액추에이터 사업에 뛰어든 것은 로봇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며 덩달아 부품 수요도 급증한 영향이 크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로봇 시장이 2050년 5조달러(약 739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로봇 한 대에 액추에이터가 많게는 수십 개 들어가는데, 액추에이터는 로봇 제조 원가에서 40~50%를 차지할 만큼 원가 비중이 높다.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개화하면 액추에이터가 극심한 공급 부족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연간 4000만대 넘는 모터를 자체 생산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 기술력을 보유한 LG전자가 일단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평가다. 로봇이 얼마나 정교하고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는 액추에이터 모터가 결정짓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HS로보틱스연구소’까지 신설해 로봇 사업에 힘을 실었다. 전사에 흩어져 있던 홈 로봇 관련 역량을 HS사업본부로 결집해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로봇 관련 업체 투자도 힘쓰는 중이다. LG전자는 로봇 개발 업체 ‘로보티즈’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산업용 로봇 제조 업체 ‘로보스타’ 경영권을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서비스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 경영권을 확보했다. 베어로보틱스는 식당, 호텔 등에서 활용되는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이를 통해 피지컬 AI 관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 LG전자 포부다.

이종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LG전자는 오랜 기간 축적한 액추에이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엔비디아, 구글 등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로봇 생태계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며 “독보적인 가전 생태계에서 확보되는 소비자들의 가사 생활 데이터, 그룹사 간의 시너지는 LG만의 강점”이라고 진단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피지컬 AI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아비나브 굽타 스킬드AI 공동 창업자와 휴머노이드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 (LG 제공)
LG전자, 피지컬 AI 파트너로

‘AI 기판 수혜’ LG이노텍 황제주 등극

또 다른 계열사 LG이노텍 주가도 어느새 100만원을 넘어 황제주에 올라섰다. 지난 5월 26일 주가가 사상 처음 100만원을 돌파해 106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후에도 주가가 오름세를 이어가며 200만원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다. LG이노텍 주가가 날개를 단 것은 AI 반도체 기판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덕분이다. 최근 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기판 수요가 급증하는 분위기다. LG이노텍은 반도체 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에서 강점을 보인다.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불리는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성능 반도체와 메인 기판을 연결하는 고부가가치 소재다. 기존 기판보다 신호 손실을 줄이며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PC)에 주로 쓰이던 FC-BGA는 AI 서버, 가속기 시장이 커지며 최근 수요가 급증했다. 엔비디아, AMD를 비롯해 구글과 브로드컴, 아마존 등 자체 AI 반도체를 만드는 글로벌 빅테크들도 반도체 기판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덕분에 FC-BGA 공급 부족이 심화돼 LG이노텍 존재감이 커졌다. KB증권에 따르면 올 2분기 LG이노텍의 기판 생산라인 가동률은 100%에 달한다.

증권가에서는 LG이노텍의 기판 사업이 단순한 하드웨어 부품 공급을 넘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유사한 수주형 사업 모델로 진화하는 점에 주목한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글로벌 빅테크 업체들이 선수금을 통한 신규 설비 투자 지원을 LG이노텍에 제시하는 한편 장기공급계약(LTA)도 논의 중”이라며 “메모리 반도체와 유사하게 AI 기판 공급 부족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LG이노텍은 로봇 사업도 키우는 중이다. 지난해 5월 글로벌 로보틱스 업체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로봇용 부품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LG이노텍의 광학 센싱 기술력이 파트너십 체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 협약에 따라 양 사는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비전 센싱 시스템’을 공동 개발한다. LG이노텍은 보스턴다이내믹스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차세대 모델에 장착될 ‘비전 센싱 모듈’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비전 센싱 모듈에서 인식된 시각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덕분에 LG이노텍은 영업이익 ‘1조 클럽’ 진입을 눈앞에 뒀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이노텍 영업이익은 지난해 6650억원에서 올해 1조900억원으로 64%가량 급증할 전망이다.

LG그룹 시스템 통합(SI) 회사인 LG CNS 주가도 연일 들썩인다. AI 광풍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넘어 산업 현장과 피지컬 AI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LG CNS는 그룹 산업 현장 데이터를 무기로 피지컬 AI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다.

LG CNS는 최근 로봇 학습부터 통합 제어까지 아우르는 로봇전환(RX) 플랫폼 ‘피지컬웍스’를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AI가 학습 데이터를 자동 생성하고 인간 영상까지 데이터화해 로봇 현장 투입기간을 수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하는 개념이다. 전자, 배터리, 물류, 조선 등 20여개 고객사와 개념검증(PoC)을 하는 중이다.

LG AI연구원은 초거대 언어 모델 ‘엑사원’ 기반의 로봇 두뇌 개발을 맡았다. 엑사원은 버티컬 AI와 피지컬 AI를 아우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지난 1월 국가대표 AI 프로젝트 1차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기록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2차 평가를 앞두고 AI 모델 개발 역량이 다시 부각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미국 스탠퍼드대 사람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출시된 주목할 만한 AI 모델 수에서 미국(50개), 중국(30개)에 이어 5개로 세계 3위에 올랐다. 한국의 주목할 만한 5개 AI 모델 가운데 4개가 LG AI연구원의 모델로 선정돼 LG의 AI 역량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을 기반으로 LG전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협력해 한국형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케이팩스(KAPEX)’를 개발 중이다.

LG그룹 ‘아픈 손가락’도 많아

화학·생활건강 전망 불투명

LG그룹이 재계에서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LG화학, 생활건강 등 ‘아픈 손가락’도 적잖다.

LG화학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LG화학의 1분기 영업손실은 497억원에 달했다. 분위기 반전이 절실하지만 석유화학 사업 구조조정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롯데케미칼 주도의 대산 1호 프로젝트(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와 여수 1호 프로젝트(롯데케미칼-여천NCC)는 정부 주도 아래 한창 추진 중인데, 여수 2호 프로젝트(LG화학-GS칼텍스)는 지지부진한 양상이다. LG화학과 GS칼텍스는 최근 합작 대상 설비의 자산가치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GS칼텍스는 정유-석화 수직 계열화를 구축해 통합 필요성이 크지 않은 데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 셰브론이 지분 50%를 보유해 의사결정이 신속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LG생활건강도 그룹 내 애물단지 계열사로 손꼽힌다. LG생활건강은 한때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전통의 화장품 강자로 불려왔다. 하지만 에이피알, 구다이글로벌 등 신흥 뷰티 기업이 급부상하며 경쟁에서 점차 뒤처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창사 이래 첫 영업적자(727억원 손실)까지 냈다. 뷰티 사업 핵심 브랜드인 ‘더후’ 매출이 부진한 데다, 중국 시장 침체와 면세 부문 구조조정으로 실적이 악화됐다.

덩달아 주가도 급락했다. 2021년 당시 170만원까지 치솟았던 LG생활건강 주가는 최근 25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이해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가 상승 부담으로 LG생활건강 생활용품, 음료 등 주요 사업 부문 영업이익 부진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진투자증권은 LG생활건강 목표주가를 기존 31만원에서 29만원으로 낮췄다.

시장에선 AI, 로봇 사업 기대감에 LG 계열사 주가가 날개를 달았지만 정작 핵심 사업은 불안하다고 우려한다. LG전자 가전은 이미 사양 산업으로 전락한 데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한참 밀렸다. 백색가전 판매량은 중국 하이얼이 선두를 달린 지 오래다.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하이얼은 지난해 기준으로 18년 연속 냉장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세탁기 판매량은 17년 연속 1위다. 2021년까지만 해도 LG전자 TV·생활가전 부문 영업이익은 3조3221억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5284억원으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7.5%에서 1.2%로 떨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전기차 배터리), LG유플러스(통신) 등 덩치 큰 계열사들 역시 뚜렷한 성장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LG그룹 매출은 수년째 정체된 상태다. LG그룹 전체 매출(상장사 합산 연결 기준)은 2023년 189조9000억원에서 2024년 192조4000억원, 지난해 190조5000억원으로 190조원 안팎에 머무른다. 전체 영업이익은 2023년 6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재계에선 LG그룹이 과거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한 것처럼 비핵심 사업부를 과감히 매각하고, 신성장 사업 인수 전략으로 그룹 포트폴리오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익명을 요구한 A대 교수는 “LG 계열사 주가가 반짝 상승했지만 젠슨 황 방한 효과일 뿐 그룹 사업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미래 신사업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재계 4위 자리에서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3호(2026.06.10~06.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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