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서 일본 기자에게 건넨 답변의 뜻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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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답변하는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이 대통령의 답은 "하지 않겠다"가 아니었다. 먼저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일본이 기대한 답과 멀지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국민 정서상 현재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뭔 소리야'라고 생각한다"는 표현도 나왔다. 이어 그는 주먹질을 당한 사람이 가해자와 친하게 지낼 수는 있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완전한 협력까지 하기는 어렵다는 비유를 들었다.
일본 언론은 곧장 반응했다. FNN은 이 대통령이 자위대와 한국군 사이의 물품·용역 상호 제공 협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지지통신 계열 보도는 이 대통령이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국민 감정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이런 보도가 불편하게 읽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 여론의 반응이 거칠다고 해서 한국이 다시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처럼 쉬운 비유로 갈등의 뿌리를 드러낸 것은 이후 협력의 조건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기자회견의 새로움은 바로 그 악순환을 어렵지 않은 말로 끊으려 했다는 데 있다. "주먹질 맞고도 손잡으려니"라는 비유는 외교 문서의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의 언어다. 역사학 논문을 읽지 않은 사람도, 안보 협정문을 열어보지 않은 사람도 이 말의 감각은 안다. 맞은 기억이 남아 있는데 가해자가 '이제 급하니 같이 뛰자'고만 말하면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다. 먼저 '그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손잡기 전의 예의다.
그렇다고 과거에만 머물자는 뜻도 아니다.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가 있어도 다른 분야의 협력까지 모두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였다. 이미 5월 19일 안동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공급망, 에너지, 인적 교류, 전자사기 공동대응, 북한 문제, 한미일 협력까지 폭넓게 논의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유해 DNA 감정 절차에 착수하기로 한 것도 작은 진전이다. 그러니 이번 답변은 협력 거부가 아니라 협력의 순서를 묻는 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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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5월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2026.5.19 |
| ⓒ 연합뉴스 |
ACSA는 다르다. 군수지원협정은 물자를 움직인다. 연료가 오가고, 식량과 의료 지원이 논의되고, 수송과 정비의 통로가 열린다. 협정의 문장은 행정 절차처럼 보이지만, 국민이 느끼는 그림은 훨씬 구체적이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의 항만과 공항, 후방 지원 체계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가. 한국군은 일본의 군수망과 어디까지 연결될 것인가. 이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주권과 기억의 문제다.
물론 일본과 미국이 제기하는 실용의 근거도 무시할 수 없다. 로이터는 5월 말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한일 국방장관이 군수지원협정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양국 국민의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고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위기 때 연료와 식량, 탄약을 서로 조달할 수 있다면 작전 속도가 빨라진다는 설명은 안보 전문가들에게 익숙하다. 일본 외무성이 필리핀과의 ACSA를 설명할 때도 물품·용역의 상호 제공과 정산 절차를 통해 협력을 원활하게 한다는 틀을 강조한다.
문제는 제도전환의 무게다. 정보 협력에서 군수 협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협력의 단계가 바뀌는 일이다. 처음에는 훈련과 재난, 수색구조 같은 낮은 단계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관행이 생기면 다음 요구가 따라온다. 유사시 지원, 탄약 범위, 후방기지 활용, 자위대 활동 범위가 차례로 논의될 수 있다. 한번 만든 제도는 되돌리기 어렵다.
화해는 속도전이 아니다. 오래된 상처를 빨리 덮는다고 새살이 빨리 돋지 않는다. 특히 가해와 피해의 기억이 비대칭일 때, "이제 그만하자"는 말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압박으로 들린다. 일본이 정말 한국과 손잡고 싶다면, 한국 시민이 왜 군수지원협정 앞에서 멈칫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사과 요구를 국내 정치용 반일 감정으로만 처리하면, 일본은 같은 벽에 다시 부딪힌다.
2012년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 한일 지소미아와 ACSA 논의는 서명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밀실 추진 논란과 국민 설득 부족이 터지면서 무산됐다. 미국 스팀슨센터는 당시 한국 정부가 비공개로 협정을 밀어붙였고, 서명 예정일 직전 국내 반발이 커지며 여러 고위 당국자가 사과하거나 물러났다고 정리했다. 안보 협력은 조용히 처리하면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절차를 줄인 만큼 불신이 커졌고, 협력은 더 오래 멈췄다.
2019년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위기도 같은 교훈을 남겼다.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관리 강화를 안보상의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한국에서는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검토로 맞섰고, 로이터는 무역 갈등과 역사 분쟁이 북한 안보 협력까지 흔들었다고 보도했다. 경제 문제와 안보 문제가 서로 불을 붙인 것이다. 신뢰가 얇은데 제도만 두껍게 쌓으면, 위기 때 제도는 방패가 아니라 불씨가 된다.
ACSA가 바로 그런 시험대다. 협정을 체결하면 한일 군사협력은 정보 교환을 넘어 물자와 용역의 연결망으로 이동한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협약이 아니라 안보 협력의 제도전환이다. 이 문턱을 넘을 때 국민적 동의가 비어 있으면, 다음 정부가 오거나 외교 갈등이 생길 때 다시 흔들린다. 이미 2012년과 2019년에 경험한 일이다.
한일관계는 이미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공급망도, 에너지도, 북한 문제도, 고령화와 지방소멸 같은 사회문제도 어느 한쪽만으로 풀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음 과제는 속도가 아니라 바닥이다. 얼마나 빨리 협정을 맺느냐보다, 어떤 신뢰 위에서 협정을 논의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제 일본이 답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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