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쿠팡 역대 최대 과징금에 “한미 통상 갈등 불씨”

한국 정부가 쿠팡에 역대 최대 규모인 6249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영미권 주요 외신들이 이를 긴급 보도하며 한미 통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을 주목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전날 제11회 전체회의를 열고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에 총 6249억2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지난해 8월 SK텔레콤에 부과됐던 1347억9100만 원의 4배가 넘는 금액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법 위반 내용은 개인정보 유출, 타사 온라인 활동기록 무단 수집, 경찰청 출입기자단 개인정보 무단 수집 등이다.

송경희 개인정보위 위원장은 “쿠팡 유출 사고의 경우 사고 발생 직전 3개년도 평균 매출 약 30조원을 기준으로 봤다”고 밝히며, 위반행위의 중대성과 피해 규모, 위반 기간, 조사 협조 여부, 피해 회복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과징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 ‘한국의 아마존 쿠팡이 사상 최대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제재를 보도했다.
FT는 쿠팡을 하버드대 졸업생인 한국계 미국인 김범석 대표가 2010년 설립한 기업으로 소개하며,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아 활성 회원 2500만명을 보유했다”고 전했다. 또 “빠른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앞세워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한국에서 고용 규모가 큰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쿠팡은 매출 대부분을 한국에서 올리지만 법적으로는 미국 기업이다. 본사가 미국 델라웨어주에 등록돼 있고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는 만큼, 미국 정계와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의 조사와 제재를 예의주시해온 배경이다.
FT는 이번 과징금 처분이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FT는 “미국 정부가 외국 정부의 규제 조치를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미국 기업을 규제할 때 직면하게 되는 통상 리스크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짚었다.

프랑스 AFP통신은 6249억원이라는 제재 규모가 쿠팡의 지난해 영업이익(7211억원)에 육박한다고 분석하며, 수개월에 걸친 개인정보 유출 조사 끝에 나온 이번 결정이 한미 고위급 안보 회담의 기류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단순한 기업 보안 사고를 넘어 한미 관계의 부담 요인으로 커졌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다는 점, 김범석 쿠팡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 미국 의회 일부가 한국 정부의 조사와 제재를 문제 삼았다는 점을 짚으며 이번 사안의 외교적 민감성을 부각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사고가 고도화된 해킹 기술보다 기본적인 보안 관리 부실에서 비롯됐다는 개인정보위의 판단에 주목했다. 전직 직원이 퇴사 이후에도 인증키를 보유한 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었던 점을 주요 원인으로 소개하며, 쿠팡이 수개월 동안 이상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액시오스는 쿠팡 투자자들의 법적 대응 움직임을 집중 조명했다. 실리콘밸리 투자사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한 중재 절차를 추진하며 한국 정부의 대응이 쿠팡을 차별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쿠팡 투자자들은 미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 정부의 규제가 불공정하다며 ‘미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했다 철회한 바 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미국 정부가 조사하고 필요하면 보복 조치까지 검토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청원은 취하됐지만, 미국 재계와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의 규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통상 문제가 아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한 국내 법 집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인정보위는 쿠팡이 기본적인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고 이용자 온라인 활동기록을 법적 근거 없이 수집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쿠팡 측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작년 데이터 유출 사태와 관련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와 명확한 사실관계에 근거한 설명이 개인정보위의 결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의결서를 받는 대로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는 한국 정부의 법 집행과 미국 정부의 자국 테크 기업 보호주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한미 통상 관계의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구동성으로 짚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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