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갇혀 삼시세끼 기내식…5개월만에 한국 땅 밟은 난민 사연
인천공항에서 삼시 세끼 기내식을 먹으며 지낸 중앙아프리카 출신 부부가 5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앞으로 진행될 심사에서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한국에서 취업 활동도 가능해진다.

중앙아프리카 출신 은보코(가명) 부부는 지난 8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정식 입국했다. 지난 1월 한국에 온 지 5개월 만이다. 은보코는 본국에서 투표 참관인으로 활동하다 야당 후보에 대한 취소표(무효표)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선거 조작 현장을 목격하고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군인들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수색하거나 납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본인도 구타를 당하는 등 공포를 겪어 조국을 떠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입국 단계에서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측이 “난민 인정 신청 사유가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난민 심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하면서 공항 환승(면세) 구역 출국대기실에 발이 묶였다. 난민법상 난민 인정을 받으려면 ‘난민 심사 절차’에 회부돼 심사를 받아야 한다. ‘난민 신청자’ 지위를 얻게 되면 입국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불회부되면 입국이 불허된다. 이런 외국인 중 일부는 ‘공항 난민’이 된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7일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의 협조를 받아 공항 장기대기자들과 이들이 머무는 출국대기실을 취재할 당시 은보코는 공항에 살림을 꾸린 상태였다. 공항에서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283번 탑승게이트 인근 실외 정원을 배회하며 하루를 보냈다. 출국대기실에서 지내며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되는 기내식을 하루 세끼 먹었다.
5개월 만에 난민 심사 길 열려
그러던 중 지난달 29일 법원이 은보코 부부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난민 심사를 받을 길이 열렸다. 재판부는 “원고 진술 중 일관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긴 하다”면서도 “대통령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 개정 등에 반대하다 미행·도청을 당했고, 살인 등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주요사실은 일관적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본국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등 상당한 경제적 기반이 있는 원고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한국 땅을 밟게 된 은보코 부부를 8일 인천공항 인근에서 만났다. 초여름 날씨였는데도 1월에 입고 온 두꺼운 외투를 그대로 걸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한국에 입국하면 2주 동안 머물며 난민 신청 등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입국이 거부되면서 호텔비 86만원가량을 날렸다. 이후 장기간 이어진 공황 생활로 가져온 돈이 바닥나 수중에는 7만원만 남은 상황이었다.
부부는 난민 단체 등의 지원으로 공항 근처 작은 비즈니스호텔로 이동한 뒤 남은 돈으로 불닭볶음면과 김밥을 구매해 공항 밖에서의 첫 끼니를 해결했다. 은보코는 “본국에서는 정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억압했다”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지도 못하고 급하게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항 밖으로 나오니 도시가 매우 깨끗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만난 공항 직원들도 매우 친절했고,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며 “이렇게까지 도와주신 한국당국에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은보코 부부는 외국인 등록을 마치는 대로 당분간 인천 영종도에 있는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지낼 예정이다. 정식 난민으로 인정되면 한국에서 취업이 가능하지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면 본국이나 제3국으로 송환된다.
법무부, 출국대기소 공항 외부 설치 고려
인천공항에는 은보코같은 공항 난민 6명이 여전히 체류하고 있다. 출국대기실에서 체류하다 난민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국제적 갈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다중밀집시설인 공항에서 외국인들이 장기간 지내는 것도 정부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일이다. 법무부는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공항 밖에 출국대기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출국대기실은 단기 체류자를 위해 설치된 장소로, 소송을 진행하는 장기 대기자들의 생활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소송 제기자나 노약자·영유아 동반자를 인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항 보안구역 밖에 별도의 출국대기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변민철·곽주영 기자 byun.min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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