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에 남아 말대꾸했을 사람, 우석균

우지안 2026. 6. 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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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우석균 선생의 딸 지안씨의 추도식 답사]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 모여주신 분들께

지난 8일 고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의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 대표의 딸 지안씨가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의 추도사에 대한 답사로 낭독한 글을 오마이뉴스에도 싣습니다. <편집자말>

[우지안 기자]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 이희훈
안녕하세요, 저는 우석균 선생님의 첫째 딸 우지안입니다. 오늘 아빠를 기억하기 위해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에서 많은 분들이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분이었는지 말씀하실 것 같아서, 저는 아빠가 웃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웃는 것을 좋아하고, 웃기는 것은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빠는 놀리는 걸 특히 좋아했습니다. 말실수라도 하면 절대 놓치지 않고 잽싸게 말꼬리를 잡으며 놀리곤 했습니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분들도 그렇게 성가시게 놀렸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꼬치꼬치 놀리는데, 알고 보니 제가 어렸을때 엄마 아빠가 개그우먼으로 키우려고 훈련을 시켰대요. 어른들한테 말대꾸를 하면 혼을 내는 대신에 잘한다 잘한다 또 해봐라 했다고 합니다.

아까 입관식에서 아빠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몸 위에 다라니경을 덮어주셨어요. 저승에서 7개의 심판을 잘 통과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7개나 되는 심판을 우리 아빠가 통과할 수 있을까요? 걱정되는 마음에 제가 관에 "심판 조심해"라고 썼더니 동생 수안이가 "말대꾸하지 마"라고 댓글을 덧붙이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아는 저희 아빠는 저승에서도 지배 계급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대꾸를 할 겁니다. 아마 벌써 저승 곳곳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고 혁명을 도모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빈소에 혼자 서서 아빠 사진을 보면서 자꾸 물어보게 됐습니다. 아빠, 어디 갔어? 여기에 나만 두고 어디 갔어? 전부 다르게 울고 있는 수백 개의 얼굴이 아빠를 찾고 있는데, 나랑 여기 있어 줘야지.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라 아빠 자리잖아.

아빠는 강해질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우리 집에는 없었습니다. 대신 싸우느라 바빴습니다. 거리 곳곳 투쟁 현장은 안 간 곳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한미FTA·광우병에 관해 백분토론에 나갔을 때, 저는 티브이에 나온 아빠가 자랑스러워서 디시인사이드에 "저희 아빠 토론 잘했나요?"라는 글을 올릴 정도로 어렸습니다. 댓글에 다들 잘했다고 해주더라고요. 아빠에게 직접 커밍아웃하기도 전에 아빠가 쓴 동성애자와 HIV 감염인, 에이즈 환자를 향한 낙인에 관한 신문 칼럼을 읽고 위로받기도 했습니다.

아빠를 기억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눈물 흘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습니다. 아빠는 정말 안 간 곳이 없구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갔구나. 내 옆에 있는 대신 이 많은 사람들 옆에 있었구나.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저에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아빠는 연약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강해질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빠가 참여한 운동을 나열하자면 오늘 하루를 다 써도 다 말할 수 없겠지요. 아빠가 용기를 나눈 사람은 셀 수도 없습니다. 아빠는 혼자 잘나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또 여기 계신 한명 한명, 또 오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하나뿐인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느라 아빠는 바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건강도 챙기기 어려울 만큼 바빴습니다.

저도 아빠를 엄청 놀렸습니다. 언젠가 제 애인을 보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노력하다가 "지정 성별 남성으로 패싱되는 머리 짧은 분" 이라고 했을 때, 하나도 안 웃긴 농담 하고 웃어주길 바랄 때 등등…

아빠는 울기도 잘했습니다. 영화 <윤희에게>가 너무 아름다워서 울고, "조개껍질 묶어" 하는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소설 <토지>의 사랑 이야기가 슬퍼서 울었습니다.

아빠랑 저는 남 욕도 많이 하고 비밀 얘기를 하면서 낄낄댔습니다. 아빠가 자기가 죽어도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게 있는데… 여기서 말하면 정말 싫어하겠죠?

아빠는 화도 잘 냈습니다. 버럭버럭 얼굴이 빨개져서 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도 안 되잖아"라고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왜냐면 매일매일 사람들이 다치고 죽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는 지금 무엇을 해야 옳은지가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빠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빠는 자기 한 몸 챙기기보다 지금 무엇을 해야 옳은지, 비겁하지 않은지가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좀만 더 일찍 검진을 했다면, 건강을 챙겼다면, 어땠다면 저땠다면 후회를 많이 했지만, 저는 이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빠는 끝까지 아빠답게 살았기 때문에 아빠답게 죽은 겁니다. 그래서 아무도 후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는 여기 계신 분들 덕분에 매일 밤을 나고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아빠는 아플 때도 가끔은 불운하게 나빠지고 가끔은 기적처럼 좋아지면서 씩씩하게 싸웠습니다. 아빠는 꽤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아빠를 만나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저도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라서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우석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석균이라는 사람이 믿었던, 언제나 잃지 않으려고 했던 아름다운 마음, 용기, 투쟁을 우리는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아빠를 영영 보지 못하지만 영영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아빠를 기억하며 울고 있는 수백 개의 얼굴 속에서, 말도 안 되는 농담 속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을 위해 흘리는 눈물 속에서, 투쟁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아빠를 발견할 것입니다.

계엄이 터졌던 날, 국회로 가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가족 대표로 가니까 너는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가부장제의 수호자냐는 말대꾸를 했습니다. 그렇게 농담을 하고 우리는 국회 앞에서 만났습니다.

아빠는 이제 없지만 아빠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워하고 새로이 반겨주세요. 우석균 선생님께 사랑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6.6.8. 우지안

(* 제목은 아빠가 가장 좋아했던 SF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참고했습니다. 작중 흡사 유토피아로 그려지는 가상의 도시 '오멜라스'는 도시의 나머지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단 한 명의 아이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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